신입사원은 생각보다 멋진 자리입니다.
"팀장님, 신입에게 해줄 말 없나요?"
"팀장님이 신입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종종 후배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면 잠시 말문이 막힙니다. 돌이켜보면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아서요. 제가 신입사원이던 시절, 40대면 회사에서 거의 전설 아니면, 곧 불려 갈 사람 둘 중 하나였는데, 지금의 저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그냥 월요일이면 금요일을 생각하며 버티고, 금요일이면 다음 주 월요일 보고를 걱정하는 평범한 40대 직장인입니다.
예전엔 '꿀팁'이랍시고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선배들이 조금 부담스러웠는데요, 어느새 제가 그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 글엔 조금의 꼰대력과, 진심 어린 응원이 반반 섞여 있습니다. 혹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면 '그래도 나름 애쓴다'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1. 회의는 발표보다 표정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신입사원이 회의실에 들어가면 흔히 두 가지 모습을 보입니다. 너무 긴장해서 조용히 있다가 끝나는 경우, 혹은 분위기를 바꾸겠다며 갑자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로 시작하는 경우죠. 두 가지 모두 추천드리기 어렵습니다.
신입 시절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말'보다 '표정'입니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고개를 끄덕이는지, 누가 핵심을 짚고 넘어가는지, 누가 말은 많은데 영향력은 없는지를 눈으로 익히는 게 먼저입니다. 진심 어린 리액션 하나가 발표 10분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하거든요.
"왜 아무 말도 안 해요?"라고 묻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 친구가 왜 이 부분에 집중했을까?"라는 인상을 남기는 게 더 중요합니다. 회의는 토론장이기도 하지만, 팀워크 리허설의 장이기도 합니다.
2. 이메일은 업무의 국어시험입니다
업무 메일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이 보입니다. 메일 제목, 수신자 배열, 문장 구성, 심지어 '감사합니다'가 몇 번 등장하는지까지요. 신입사원에게는 이 모든 것이 일종의 자기소개서입니다. '일은 아직 몰라도 커뮤니케이션은 되겠네'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모티콘, 느낌표, 줄임말은 조심해서 써 주세요. 특히 상사에게 보내는 메일에서 "넵^^", "완료했습니다~!" 같은 표현은 잘못 쓰면 진심이 가벼워 보일 수 있습니다. 메일은 내용 전달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대에 대한 예의의 형태이기도 하니까요.
메일 하나하나에 너무 긴장하지는 마시되, 보내기 전에 한번 더 읽는 습관. 그게 쌓이면 '일 잘하는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3. 피드백은 공격이 아니라 관심입니다
업무를 하다 보면 칭찬보다는 지적을 먼저 듣게 됩니다. 처음엔 조금 서운할 수 있습니다. '이걸 이렇게까지 말해야 하나' 싶은 순간도 생깁니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피드백은 대부분 공격이 아니라 관심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조용히 실수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하는 건, 좋은 게 아니라 슬픈 일입니다. 기대가 없다는 뜻이니까요. 어떤 피드백이건, 내 이름을 붙여 부르며 말해주는 사람은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 피드백이 전부 맞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말했을까?'를 한 번쯤 생각해 보면, 그 속에서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피드백은 메모해 두고 소화하는 습관. 오래 일할수록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
4. 경험은 놀아서 쌓이는 게 아닙니다
'요즘 친구들은 경험이 중요하다고 해서 여행을 많이 가더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한 때는 그랬습니다. 돈을 벌어서 동남아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많이도 다녔죠. 물론 그것도 좋은 경험입니다. 그런데 개그맨 박명수 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행은 경험이 아니다. 그냥 논 거다. 진짜 경험은 일을 하면서 쌓는 것이다."
저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진짜 경험은 프로젝트가 망했을 때 나오는 팀장의 표정, 갑작스러운 클레임에 대응하는 고객 대응 방식, 야근 중 터진 컴퓨터 오류 앞에서의 침착함 같은 것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일한 사람만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놀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잘 놀아야 잘 일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경험을 핑계 삼아 쉬는 시간을 정당화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경험은 편한 자리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조금은 불편하고, 부담되고, 긴장되는 그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마치며 – 신입사원은 생각보다 멋진 자리입니다
신입사원이라는 자리는 때로 작아 보이지만, 사실은 회사 안에서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누구나 한 번은 거쳐가지만, 누구나 잘 보내지는 않습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5년 뒤, 10년 뒤의 커리어가 달라집니다.
때로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싶은 순간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성장의 시작입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의 혼란은 무능이 아니라, 진지함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오늘도 실수하셨나요? 괜찮습니다. 실수는 뺄셈이 아니라, 더하기입니다. 중요한 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게 '경험'이고, 그게 '프로'입니다.
저도 여전히 실수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더 빠르게 복구하고, 덜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게 경력이고, 그게 어른이라는 증거 아닐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신입사원 여러분. 때로는 꼰대 같겠지만, 이 말만큼은 꼭 믿어주세요.
당신은 생각보다 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