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의 정답은 없지만 방향은 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멈춰서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지금 이 길이 맞는 걸까?”
“내가 선택한 이 일, 과연 정답일까?”
저역시도 처음에는 그런 고민이 ‘불안’처럼 느껴졌습니다. 남들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것 같은데, 혼자만 뒤처지는 기분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들 방향을 알고 움직이는 것 같은데, 나만 길을 잃은 듯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직장생활 15년 만에 생각이 약간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커리어란,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 가는 게임이 아니라 수많은 시도와 선택 끝에,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가는 여정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2.5번의 이직을 통해 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대기업에서 12년, 중소기업에서 3년, 총 15년입니다. 언뜻 보면 단단한 커리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는 무수히 많은 갈림길과 흔들림이 있었습니다.
때론 대기업의 시스템에 숨막혀 하기도 했고, 때론 중소기업의 책임감에 눌려 벽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이직을 결정할 때마다, 무언가를 얻는다는 기대보다, 무언가를 놓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돌이켜보면, 여전히 그 선택들 하나하나가 옳았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때마다 스스로의 방향에 대해 고민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커리어를 ‘정답 찾기’로 오해합니다.
어느 회사가 더 좋은가,
어느 부서가 유망한가,
어떤 스펙이 커리어에 유리한가.
이런 질문은 마치 수학 문제처럼 정답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 직장 생활은 시험지가 아니라, 자신만의 문장을 써 내려가는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상황, 사람, 우연, 감정, 타이밍 속에서 자신만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치 앞을 알아채기 힘든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여기서 저는 한 철학자의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본질이 아니라 선택으로 정의된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태어날 때 어떤 고정된 본질이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내리는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 간다고 봤습니다. 즉, 인간의 본질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자의 ‘존재’와 ‘선택’에 의해 끊임없이 만들어진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커리어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좋은 직장’, ‘괜찮은 스펙’, ‘안정적인 커리어’라는 말은 있지만, 그게 진짜 나에게 의미 있는 삶인지는 결국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순간에만 알 수 있습니다. 덧붙여 커리어의 정답은 없다는 말과도 동일합니다. 그저 각자의 선택이 쌓여서 그 사람만의 방향이 될 뿐입니다.
저 역시 한동안은 '정답'을 좇았습니다. 대기업의 안정성, 연봉, 직급, 조직 내 평판.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갖추는 것이 곧 커리어의 성공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답을 맞힌다고 해서 삶이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15년 직장생활을 통해 이제야 제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다르다는 걸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눈치가 빠른 사람입니다. 조직의 공기를 읽고, 리더가 원하는 방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자료와 말을 준비하는 일은 꽤 잘합니다. 그게 저의 ‘기술’이자 생존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제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더 자유로운 환경,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곳에서 훨씬 더 몰입하고, 더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건 정답이라기보다는, 저라는 사람의 방향이었습니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더 자주 합니다. 내가 더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오래 버티기 위해, 더 오래 즐기기 위해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
직장 생활과 일이, 1~2년이 아니라 10년, 20년, 때로는 평생을 걸쳐 이어지는 여정이라면 그 길의 방향이 내 마음과 너무 다르지 않아야 버틸 수 있고, 성장할 있으며, 때로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이직을 앞두고 있거나, 새로운 선택을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남들이 정해주는 방향이 아니라,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담긴 방향. 그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은 비록 늦을 수도 있고, 돌아갈 수도 있지만 후회는 적고, 의미는 더 값질 것입니다.
커리어는 결코 시험이 아닙니다. 틀리면 감점되고, 맞히면 점수가 올라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매일 조금씩 써 내려가는 자기만의 자서전, 혹은 철학 있는 여행기에 가깝습니다.
길을 돌고, 멈추고, 때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 여정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다면 그건 누구보다 훌륭한 커리어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