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떠난 밤, 자기 계발

빼갈보단 중국어

by 바그다드Cafe

오늘은 아내님과 아드님께서 처가에 가셨습니다. 1박 2일 일정의 외박이시고, 저는 퇴근 후 홀로 집에 남게 되었습니다. 아내님께서는 집을 떠나기 전, 장엄하게 성은을 내리셨습니다.


“오늘 저녁엔 뭐 하든 알아서 해요. 술을 마시든, 술을 마시고 신도림역에서 춤을 추든 말든.”


(아, 아내와 싸운 건 절대 아닙니다. 싸워서 처가로 간 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렇다고 과거에 술 취해서 신도림역에서 춤을 추지도 않았습니다.)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제 머릿속에서 '해방의 종'이 울렸습니다. 야, 이건 거의 미니 추석 아닌가요. 갑자기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이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오래되고 재미난 친구를 불러 치맥(치킨+맥주)을 할까?


회사에서 웃기다고 소문난 후배를 꼬셔 회쏘(회+소주)를 할까?


마음 맞는 협력업체 웃긴 부장님께 연락해 중빼(중국요리+빼갈) 한 판을 벌일까?


이 모든 조합은 그 자체로 행복한 시나리오였습니다. 게다가 다음 날은 제 직속상사께서 출장을 가시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술자리에 대한 유혹은 절정이었고, 불수의 자유는 달콤했으며, ‘오늘 밤만큼은 나를 풀어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속삭임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자."


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집에 와서, 먼저 거실 청소를 했습니다. 테이블 위 먼지를 닦고, 아드님 장난감을 정리하고, 물걸레질까지 했습니다. 아내님이 보셨다면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을 장면이죠. (인생 40개월이 훅 넘은 아드님도 감동했을 겁니다.)


다음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간헐적 단식을 떠올렸습니다. 자정까지 4시간 남았지만, '지금은 안 된다'는 다짐을 하며 닫았습니다. 그리곤 중국어 복습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배운 단어는 “매우 바쁘다(很忙)”와 “계획이 있다(有安排)”입니다. 괜히 제 일정을 중국어로 표현해 보면서 뿌듯해졌습니다.

네,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결국 다음과 같은 루틴을 실행했습니다.

- 청소 (아내님이 감동받을 각)
- 간헐적 단식 유지 (건강은 이길 수 없는 대세)
- 중국어 단어 복습 (니하오 그 이상의 대화를 위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직장인에게 자기 계발이란, 결국 ‘오늘 저녁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우리는 늘 ‘언젠가’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시간 생기면 공부해야지.’


‘언젠가 기회가 오면 나도 해봐야지.’


그런데 그 ‘언젠가’는 이상하리만치 오지 않습니다. 반면에 ‘오늘’은 언제나 제 발로 찾아옵니다. 문제는, 오늘을 매번 헛되이 보내는 우리의 습관입니다.


고대 철학자 세네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짧지 않다. 우리가 낭비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낸다면, 그 하루가 쌓여 결국 ‘인생’이 됩니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야말로, 가장 실용적인 철학이라고 믿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완벽하게 실천하는 건 아닙니다. 매일밤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 일은… 매번 어렵습니다. 치킨 냄새는 죄가 없고, 빼갈은 자꾸만 저를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중국술을 엄청 좋아합니다.)


하지만 술을 덜 마시면 건강해지고, 일찍 자면 내일 컨디션이 달라지며, 언어를 조금씩 익히면 언젠가는 통역 없이 대화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누가 더 똑똑하냐가 아니라, 누가 더 ‘잠깐의 쾌락’을 참을 수 있느냐가 결국 승부를 가른다.

세상엔 수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치킨, 맥주, 회, 소주, 빼갈, 야식, 유튜브, 넷플릭스… 그 모든 걸 뿌리치는 건 솔직히 너무 어렵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 “오늘만 참자”라는 결심이 반복되면, 그게 결국 내일을 바꿉니다.


오늘 아내가 떠난 밤, 저는 그 자유를 잠깐의 술자리 대신,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투자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내일, 깨끗해진 거실을 보고 흐뭇해할 아내의 표정을 상상하며, 이 투자가 꽤나 수익률 좋은 선택이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해 주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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