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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후질수록

1인분이 늘어간다

by 바그다드Cafe

얼마 전, 유현준 대표님이 출연한 유튜브 영상을 봤습니다. 그분은 ‘유현준앤파트너스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며, 여러 방송에서도 활약 중인 건축가입니다. 영상에서는 건축 이야기뿐 아니라, ‘직원 관리’에 대한 생각도 언급됐는데요. 그중 한 마디가 유난히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어떤 회사에 1인분만 하려는 직원이 많다면, 그건 대표가 후져서 그래요."


정말 신박했습니다. 직장생활 15년 만에 이런 말을 공식 석상에서 당당히 하는 대표를 처음 봤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대표 밑이라면 한 번쯤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단 건축업이 아니어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업종을 초월해서 통하니까요.


“1인분만 하겠습니다”의 심리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말(혹은 마음)을 품게 됩니다.


"저는 제 할 일만 할게요. 괜히 나서봤자 손해더라고요."


"요즘은 딱 1인분만 해도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우리는 ‘1인분’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저 냉소적인 직장인의 생존전략쯤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 말은 단순한 게 아닙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바뀌지 않는 상황을 겪으면, 사람은 점점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처음에는 잘해보려고 애쓰던 사람이, 점점 열정을 잃고 ‘어차피 안 돼’라는 생각에 익숙해지게 되는 겁니다. 이 이론을 직장에 대입하면 이렇게 됩니다.


- 아이디어를 내봤자 채택되지 않는다.

- 일찍 해도, 야근 해도, 칭찬도 없고 보상도 없다.

- 승진은 실력보다 눈치와 인맥이 좌우된다.


이런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결국 직원은 ‘1인분도 넘기면 손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슬슬 자리 지키기 모드에 들어가고, ‘워라밸 추구’라는 이름의 심리적 후퇴가 시작됩니다.


리더의 태도가 직원을 만든다


유현준 대표님의 말은 여기서 핵심을 찌릅니다.


"직원이 1인분만 하려는 이유? 그건 리더인 내가 후져서 그렇다."


조직에서 리더의 무기력은 아래로 내려갑니다. 반대로, 리더의 명확한 기준과 열정은 위로 전달됩니다. 직장인들이 종종 하는 말 중 하나가


“우리 팀장은 책임은 안 지고 지시만 한다.”


“우리 본부장은 피드백은 없고 사후보고만 요구한다.”


“대표님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간섭만 한다.”


이런 말을 자주 듣는 조직일수록, 그 안에서 ‘1인분 전략’은 퍼져나갑니다. 왜냐하면, 더 해봤자 ‘일만 더 생기고, 감정만 상하고, 보상은 없다’는 경험이 쌓이기 때문입니다. 즉, 회사가 후지면 직원은 생존모드로 돌아섭니다. 반대로, 회사가 괜찮다면 직원은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반대로, 2인분 하게 만드는 회사도 있다


이쯤에서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근데 정말 자발적으로 1.5인분, 2인분씩 하게 되는 회사도 있나요?”


있습니다.


제가 실제로 경험한 팀이 그랬습니다. 상사는 실무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고, 피드백이 빠르며, 문제 발생 시 책임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팀원들도 말없이 서로 돕고, 자기 일 외에 하나라도 더 챙기려 했습니다. 이걸 심리학자 에이미 애드먼슨(Amy Edmondson)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팀 내에서 자유롭게 질문하거나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일수록 팀원들의 참여도, 혁신, 성과가 올라간다.”


‘안전하다’는 느낌은 사람을 움직이게 합니다. 눈치를 보기보다, 신뢰를 기반으로 시도할 수 있게 해 주죠.


“나부터 1인분을 하고 있는가?”


이쯤에서 저도 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는 지금 정말 1인분을 하고 있는가?”


“혹시 내가 자꾸 1인분에 머무르려는 건, 그만큼 이 조직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아울러, 거꾸로도 생각해 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2인분 하고 싶은 팀원’이 되고 있을까?”


“내가 리더라면, 직원들이 더 하게 만드는 사람일까, 덜 하게 만드는 사람일까?”


결론: 1인분이 늘어나는 조직에선, 무엇이 먼저 바뀌어야 할까?


회사가 후질수록, 1인분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누군가 해야될 일을 내가 맡게 됩니다. 어느 날 부턴가 나의 책임이 늘어나고 1.3인분, 어느 날은 1.7인분. 그러다 어느 순간, 회사를 짊어지고 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단순히 내 책임이라고 자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대신, 이렇게 되물어보면 어떨까요?


“이 조직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가? 무기력하게 만드는가?”


만약 후자라면, 회사를 바꾸든, 부서를 바꾸든, 내 태도를 바꾸든— 무언가는 바뀌어야 할 타이밍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직장은 결국, 하루 8시간, 인생의 대부분을 쓰는 공간이니까요. 그 공간에서 1인분이 계속 늘어나고, 나에게만 책임이 전가된다면 누군가는 반성해야 합니다. 꼭 직원이 아니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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