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MZ냐?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마음속에 “최악의 상사 월드컵”이 있습니다. 마이크로 매니저형, 공만 가로채기형, 일은 안 하고 회식만 챙기기형…
라인업이 워낙 화려하다 보니 매번 우승자가 달라집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한때는 “회의 때마다 말을 갈아타는 상사”가 1위였고,
또 어떤 때는 “본인 업무는 없으면서 ‘우리 팀이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상사”가 최악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저의 개인 월드컵 결승전을 단숨에 뚫고 올라온 새로운 챔피언이 있습니다. 바로 고객사 앞에서 부하를 비꼬는 상사입니다.
얼마 전 고객사와 식사 자리가 있었습니다. 이런 자리는 보통 서로 좋은 인상 주려고 노력합니다. 저도 최대한 웃으며 음식 맛있다고 추임새 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상사님이 느닷없이 제 쪽을 힐끗 보며 이런 말을 던졌습니다.
“얘는 회사보다 가족이 더 중요한 친구예요. MZ도 아닌데, 괜히 MZ처럼 굴려고 그래요.”
…네? 갑자기요?
고객사 담당자는 어색하게 미소 지었고, 저는...
MZ도 아닌데 MZ처럼? 그럼 저는 어디쯤 걸쳐 있는 걸까요? 구 MZ? 짝퉁 MZ? 아니면 “가족이 중요하면 그냥 퇴사하라”는 돌려 까기? 게다가 사실과도 전혀 달랐습니다.
저는 늘 가족 행사보다 회사 일에 끌려 다녔던 쪽이거든요. 그런데 그 순간, 고객사 앞에서 저는 단숨에 가족 최우선주의자 = 회사 소홀한 문제 직원으로 낙인찍혀 버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별별 해석을 다 해봤습니다. 도대체 상사님의 심리는 무엇일까? 제가 묻고 제가 답했습니다.
- “나는 부하를 냉정하게 평가할 줄 아는 관리자다”라는 이미지 메이킹?
- 고객사 앞에서 농담 좀 치면서 분위기 띄우려다 폭망한 케이스?
- 아니면 그냥… 질투?
사실 뭐가 됐든 상관없습니다. 고객사에게 중요한 건 제 상사의 개그 의도가 아니라, 그 순간 전달된 메시지니까요. 결국 저는 “가족이 회사보다 중요한 직원”으로 찍혔고, 그 이미지는 말로 변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물론 상사가 부하를 혼낼 수는 있습니다. 보고서를 엉망으로 냈다든가, 고객사 미팅 준비를 안 했다면요.
하지만 그건 내부에서, 문 닫고 해야 할 일입니다. 외부 자리에서는 팀을 감싸주는 게 기본 매너 아닐까요?
아무리 속으로는 “저 인간 또 삐끗했네” 하고 있어도,
고객 앞에서는 “우리 직원 덕분에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게 상식 아닐까요?
드라마 미생의 오 차장이 말했듯이, “내 새끼는 내가 지킨다.” 상사라면 적어도 고객사 앞에서만큼은 이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그게 리더십의 기본이고, 최소한 체면의 예의이니까요.
저는 이번 일을 통해 알았습니다. 진짜 최악의 상사는,
꼭 성격이 까칠하거나 업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외부 앞에서 제 사람을 가볍게 만드는 상사,
그게 바로 최악입니다.
언젠가 저도 누군가의 상사가 되겠죠. 그때만큼은 적어도 고객사 앞에서 직원 흠집 내는 ‘개그 본능’은 꾹 참을 겁니다. 사람은 웃길 수 있지만, 부하를 팔아 웃기는 건 삼류 개그니까요.
직장인은 누구나 저마다의 ‘최악의 상사 유형’을 경험합니다. 어떤 이는 ‘출근 안 하면서 전화만 하는 상사’를 꼽고, 어떤 이는 ‘부장님 카톡 읽씹’이 제일 힘들다고 말하겠죠.
하지만 저의 최신 버전 원픽은 이겁니다.
“고객사 앞에서 부하를 비꼬는 상사.”
웃으면서 말했겠지만, 그 농담 한마디에 직원은 망신을 당하고 회사 신뢰도 함께 깎입니다. 그걸 모른 채 “내가 분위기 좀 띄웠지?” 하고 흡족해하는 상사야말로,
정말 직장인의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 존재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