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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Jul 31. 2024

직장인 와인 에티켓 고민

와인에는 치즈를, 아니 곱창을, 아니 니가 지금 땡기는 거.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연도는 2011년.


나에게 사회생활이라 함은 적법한 세금 내고, 4대 보험 가입을 하고 나서부터이다. 그러니 나의 사회생활은 2011년부터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처음 사회생활, 즉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 비해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는 핫하디 핫한 산업과는 거리가 먼, 전통의 산업을 추구했다. 가령, 해외 건설 노동자로 달러를 벌어서 나라에 은혜를 갚자(이명박 대통령의 영향이 컸다. 지금은 후회한다), 종합 상사(미생이 인기 있기 전부터 007 가방 이미지가 너무 좋았다), 제조업(그러다 보니 내가 갈 곳은 제조업 밖에 없더라.. 지금도 제조업 노동자) 등등 그래서 요모양 요꼴이다. 왜 요모양 요꼴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글을 읽어보시길. 나는 그를 알지만 그는 나를 모르는 동갑내기이자 같은 대학 동기인 어느 카카오 계열사의 임원을 생각하며. (결론은 운칠기삼이라는 얘기다)


https://brunch.co.kr/@humorist/43


이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다시 돌아가자. 핫한 산업은 멀리하고 전통적인 산업만 쫓았지만, 그리고 IT와 거리가 먼 경력을 추구했던 나지만 확실히 AI는 많은 변화를 야기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내가 잘 써먹는, 그 영어 메일 작성 기술. 10년 전 회사에서 영어 메일 작성 기술만 있어도 박수를 받을만했다. 지금은? 영어 메일 작성 기술만 있으면 박수받고 떠나야 한다. 그만큼 AI가 완벽하게 영어 메일을 쓸 수 있다. 영어에 자신 없어도 상대방 영어 이메일을 GPT에게 가져다주면 한글 해석과 영어 답장까지 2초 만에 해결해 준다. 웬만한 김대리 최과장 정차장보다 낫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변화도 다이내믹하다. 특히, 주종의 다변화는 애주가인 나조차도 혀를 내두른다. 쏘주도 그렇고, 맥주고 그렇다. 예전에는 경상도 C원 서울 참이슬 이었는데, 지금은 서울에서도 횟집이나 흑돼지집을 가면 어렵지 않게 한라산을 마실 수 있다. (역시 흰 살 생선회에는 한라산이지. 기분 탓인가?) 그리고 맥주는 또 얼마나 종류가 많은지. 에일. 라거. 조선맥주. 광화문맥주. 제주맥주. 연남동맥주. 너라는 맥. 등등.


소주와 맥주는 어느 정도 적응이 가능하다. 가령, 나는 참이슬과 테라만 마셔도 된다. 일명, 테슬라 조합. 배터리 업계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만 마셔도 무시받지 않는다. 오히려 회사에 충성심 있다고 좋아한다. 그렇더라도 하이트진로나 OB맥주에서 알아주지는 않더라. (내가 마신 테슬라만 얼만데... 거짓말 아주 조금 보태서 내가 마신 테슬라 병만 팔아도 진짜 테슬라 한 대 살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와인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와인에 대한 문턱이 낮아진 것이다. 와인이 등장하든 문턱이 닳아 없어지든 문제 되지 않는다. 아니, 애주가로서 오히려 환영할 만하다. 선택지는 다양할수록 좋은 거니깐.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달이 차면 기우는 법, 구름뒤엔 태양이 있는 법, 쓰레기 차를 피하면 똥차를 만나는 법(?) 나는 와인의 변질을 꼬집고 싶다. 쉽게 얘기해서 와인에 대해 '젠체'하는 문화를 비틀고 싶다. 유독 와인에 대해서는 '젠체'하는 문화가 심한 것 같고, 관련해서 먹꼰대*가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나이를 떠나 젊은애들도 있다. 일명 와인먹꼰 Jr. 유독 와인에만 많은 것 같다.


* "먹꼰대"는 음식을 먹을 때나 음식 취향에 대해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 사람을 말한다. 예를 들어, 특정한 음식 먹는 방법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자신의 취향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의 선택을 무시하는 행동을 한다. 이런 태도는 보통 비판적인 맥락에서 사용된다. (출처: 챗GPT 4o 유료버전)


그래. 백번 양보해서 와인에 먹꼰대가 많을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와인 먹꼰대는 피곤하다.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면 피곤이 더 몰려 올 것이다.


응당 화이트는 해산물과 레드는 고기류가 맞지.


응당 화이트는 약간 차갑게(칠링 온도가 중요하지), 레드는 적당히.


응당 코르크는 천천히 당겨야지. 그리고 코르크 냄새를 맡아보고 상했는지 판단해야지.


응당 와인을 먼저 잔에 조금 따라 색을 보고, 잔을 가볍게 돌려 향을 맡아야지. 일명, 스월링!! 스월링은 돌아가는 각도가 생명!!


응당 소량을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하며, 와인의 맛과 향을 즐겨야지.


응당 와인 잔은 스템(잔대)을 잡아야지. 잔 몸통을 잡으면 손의 열로 인해 와인의 온도가 올라갈 수 있으니!



그리고, 종류는 어찌나 많던지, 지역에 따라 포도나무 품종에 따라...


생각해 보니, '젠체'하기 딱 좋은 술이다. 종류도 많고, 지켜야 할 예절도 많으니. 그러다 보니, 윗사람이 와인에 관심이 많고 예절을 따진다는 고민과 제보가 속속 잇따른다. (아! 여기서 잠깐, 와인을 순수하게 취미로 즐기는 분들을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내가 지금 이 지면을 통해 까는 사람은, 알량한 지식으로 '젠체'하며 상대방을 무시하고 분위기를 피곤하게 만드는 직장인 빌런만을 뜻한다)


그런 고민과 제보를 받으면 내가 해주는 얘기가 있다.


내 전전직장 대표이사 사장 S씨에 관한 얘기다. 내 ExEx직장은 종합상사다. 그러다 보니 해외 손님과 비즈니스가 많고, 자연스레 밥자리 술자리도 많았다. S씨는 30년 넘게 오직 종합상사에만 다닌 뽕에 취해 살던 인물이었다. 종합상사계의 인간문화재라고나 할까? (물론, 내가 모르는 훌륭한 일을 많이 하셨겠지. 그래서 높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셨겠지)


S씨는 평소에도 의전 및 치면치례에 몹시 공을 들였던 인물이었다. 특히, 와인 '젠체'에 대해서는 진심이었다. 가령, 중요한 손님이 온다고 하면 화이트의 칠링 온도까지도 알려 주던 인물이었다. 이 글의 모티브의 절반은 S씨의 지분이 있다. 나머지 절반은... 바로... 우리 회사... 그만....


그 S씨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우연히 어떤 회식에 말단으로 내가 참석했을 때 S씨가 한 말이다.

그때도 와인을 마셨다. 와인을 마시면서 S씨가,

"이 와인 XXX(나는 와인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가 내가 프랑스 차관 YYY(나는 프랑스인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와 함께 저녁 마실 때 마신 와인이거든. 그때 내가 그 YYY 차관한테 물어봤지. 화이트를 먼저 마시는지, 레드를 먼저 마시는지."


(S씨는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뜸을 들인다. 그리고 묻는다) "그래서 그 YYY 차관이 머라고 답했는 줄 아나?"


옆에 있던 전무쯤 되는 양반이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사장님. 프랑스 사람은 와인에 조외가 깊으니 어떤 대답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S씨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프랑스 차관이라고 하니깐, 와인에 조외가 깊은 줄 알았지. 그런데 대답은 '너 마시고 싶은대로, 니 기분대로 마시라' 이거야."



그때 나는 무릎을 세 번 쳤다. 무릎이 아플 정도로. 그렇다. 와인도 그냥 내가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시면 된다. 이후로 나는 편한 자리에서는 와인을 맥주잔에 마신다. 와인잔은 깨질까봐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 어떤 가게는 안주가 많아 와인잔이 차지할 공간이 부담스럽다. 나는 전형적인 안주파이기 때문에 안주가 술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S씨는 프랑스 차관이 던진 교훈을 무시하고 여전히 스월링 각도가 어떻고, 칠링 온도는 몇 도가 저떻고 하고 있단다.


프랑스 차관이 프랑스어로 그 때 한 말은, Comme tu veux, comme tu te sens. (너가 원하는 대로, 너 기분대로) 정도 되지 않았을까. 이런 와인 상표가 나오면 잘 팔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S. 나는 주를 살짝 찌그러진 막걸리잔(양은으로 만들어지고, 노르스름한 빛깔을 내는 그거)콸콸콸 따르고 두 번에 나눠 마시는 사람이 그렇게 멋있더라. 그리고 안주는 신김치와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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