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작가님의 <마지막 마음이 들리는 공중전화>를 읽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죽음(대부분 자살)으로 인해, 남겨진 이들을 위로하는 현실 같은 동화이다.
1장부터 마음을 울렸고, 1장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1장의 제목은 <낙인 금지>로 어느 평범한 직장인의 평범하지 않은 자살에 관한 얘기다.
책 속에서 자살한 이는 강주열(36세) 씨로, 아내와 두 살 된 아들이 있는 가장이자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어떤 사고와 강주열 씨의 실수가 있었고, 조직에서는 그런 강주열 씨를 배제시키고 퇴사를 강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회사에서의 힘듦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강주열 씨는 본인이 거주하는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며, 생을 마감한다.
이수연 작가님은 소설에 동화 같은 장치(죽기 전 마지막 목소리가 들리는)를 썼지만, 나는 안다. 소설은 작가님께서 현실에서 직접 보고 듣고 한 사실에 기반한 내용이라는 것을. 그래서 비슷한 연배이자 세 살 된 아이의 아빠로서, 강주열 씨를 읽으며 너무 마음이 아팠다.
가끔씩 나는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읽었는지 어떻게 느꼈는지 독서 후기를 찾아본다. <마지막 마음이 들리는 공중전화>도 다른 사람의 후기를 찾아보았다. 대부분 감동적이었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고, 다른 이들의 죽음을 읽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간다는 평도 많았다. 아마도 작가님이 이러한 평을 읽어본다면 뿌듯하셨으리라. 왜냐하면 작가님이 죽음 얘기를 통해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결국, 남겨진 이들에게 다시 살아가는 희망을 주고자 함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1장 <낙인 금지>의 강주열 씨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함과 동시에 남겨진 아내를 응원하는 글이 많았다. 하지만 종종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나? 아이와 아내를 남겨두고 꼭 자살을 해야만 했나?라고 묻는 후기도 보였다.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분명히 다른 길이 있을 텐데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안타까움과 의문이 동시에 들어서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주열 씨를 안타까워 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는가?
나는 강주열 씨가 (매우 안타깝지만)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환경,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사람의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기 때문이다.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면 앞이 캄캄해진다. 그리고 다른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확신할 수 있냐고? 내가 그랬으니깐. 최근까지도 내가 그랬으니깐 감히 말할 수 있다.
내 얘기를 조금 하자면,
딱 2년 전, S대기업을 그만두고 호기롭게 지금의 중견기업으로 이직했다. 아내는 이직을 반대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특히 S대기업이 제공하는 복지 중에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어린이 집을 서울 한복판에서제공하는 게 있었다. 아내와 나는 그때 100일 정도 된 우리 아이 Hoya를, 첫 생일까지만 아내가 육아 휴직을 활용해 전담하기로 했다. 그리고 생일이 지나면 어린이 집에 보내고, 아내는 복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나의 무책임한 이직으로 계획의 많은 부분이 어긋나 버렸다. 지금이야 나도 어린이 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에, 만약 지금 상태로 그때 이직 제안이 있었더라면 나는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2년 전 나는 육아에 무지했고, 철이 없었다. 어린이 집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동동거렸던 아내에게 아직도 미안하다. (실제로 첫 번째 어린이 집은, 문제가 있어 2달 만에 다른 어린이 집을 구했다. 겨우 2살 3살 말 못 하는 아가들에게 어린이 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때 나는 몰랐다)
지금 회사는 경남인 창원에 본사를 두고 있었는데, 2년 반 전에 서울 강서구에 영업 사무소를 처음 설립했다. 거기에 내가 출근한 것이다.
처음 출근 했을 때, 임원인상무님 한 분과 부장님 한 분,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있었다. 우리 세 명을 제외한 모든 조직은 창원에 있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떨어진 차이를 극복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 대해, 주위에서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라는 색안경을 끼고 나를 대했다. 무엇보다 제일 힘든 것은 일이었다. 영업 사무소가 처음 생기긴 했지만 본사의 기대는 컸고, 많은 일들이 떨어졌다.
예를 들어, 미국에 공장 구매하기(참고로 그전까지 나는 미국 땅을 밟은 적이 없었다), 원가 절감, 대외 영업, 해외 법인 설립, 전략 구매 업무 등등 한 가지도 어려운 일이 나에게 전부 떨어졌다. 죽고 싶었다. 아무리 일을 해도 다 할 수가 없었고 그저 막막한 일 들이었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또 도망갈 순 없었다. S대기업을 호기롭게그만둔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당시의 나는 도망갈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30년이 넘은 복도식 아파트인데, 새벽에 출근하기 위해(본사 공장의 시간에 맞춰, 8시까지 출근해야 하므로, 집에서 6시 30분에는 나와야 했다) 문을 열면 바로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12층에서 바로 바닥도 보였다. 퇴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끝없는 하늘과 바닥을 보았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하늘이 바로 보이면 어떤 때는 낭만적이지만, 어떤 때는 많이 힘들다.
내가 2년 동안 지금 회사를 다니며 시간을 반추해 보니,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일까? 끝끝내 지금 회사에 적응한 일? 미국에서 공장을 성공적으로 산 일? 원가를 절감한 일? 전략을 기가 막히게 세운일? 영업을 잘한 일? 아니다. 내가 잘한 일은 2년간 매일 새벽에 현관문을 열고 하늘을 본 일이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출근했고, 3폭(폭염, 폭우, 폭설) 속에서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은 것이 가장 자랑스럽다. 그렇게 2년간 버틴 나를 토닥여 준다.
매일 새벽 출근을 위해 현관문을 열면 하늘이 보인다.
이런 내가, 지금 힘들어하는 직장인에게 작은 위로의 말을 드리고 싶다. 물론, 나보다 훨씬 힘든 상황에서 훨씬 슬기롭게 극복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이런 위로를 할 자격이 있나 걱정되기도 하지만, 조심스레 <마지막 마음이 들리는 공중전화>의 강주열 씨를 생각하며 용기를 내본다.
1. 우선은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 바그람으로 파병을 갔었다. 좁은 부대 안에서 최소 6개월을 지내며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었다. 부대를 벗어나면 탈레반과 (한국군이 포함된) 다국적 연합군과의 전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물론, 한국군의 지위는 전투병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전쟁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직접 전투를 치르는 미군은 전투에서 뿐만 아니라 부대 안에서도 꽤 많은 병사가 자살했다. 그때 나의 중대장이 부대원들에게 했던 충고가 있다.
“상황이 녹록지 않으면, 생각을 단순하게 해라. 너무 멀리 보지 마라. 파병이 끝나면 생기는 돈*이라든지, 경력이라든지, 하다 못해 휴가만 생각해라.”
의외로 저 말이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힘들 때면 의식적으로 지금 이 일, 오늘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너무 많은 상념들이 나를 괴롭힐 때 특히 유용한 것 같다.
*나의 파병 목적은 첫 번째가 돈이었다. 파병을 가면 위험수당과 생명 수당을 지급했는데, 병사들도 한 달에 200만 원 가까이 받았다. 그때 한국 군대에 있을 때 월급이 6만 원 정도였는데, 무려 30배가 많았다. 나는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목숨을 걸 만큼, 돈이 필요했다. 대학교를 내 힘으로 졸업해야 했기 때문이다.
2. 스스로에게 작은 보상을 아끼지 마라.
내 책상에는 잡다구리 한 것들이 많다. 키보드라든지, 마우스라든지, 피겨라든지, 무선 이어폰이라든지. 어떤 힘든 일을 지났을 때 스스로에게 하는 보상 차원의 것들도 많다. 내가 좋아하는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께서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나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소소한 행복의 빈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무실에서든, 집에서든.
내 사무실 자리 풍경. 작고 귀여운 것들과 잡동사니가 뒤섞여 있다. 누구는 정신없다고 하나, 이 정신없음에서 나는 위로를 받는다.
3. 현대의학의 힘을 빌리는 것에 너무 부담감을 갖지 말자.
의외로 우리 주위에는 현대의학에 기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건 내 담당 의사 선생님이 해 준 말)
4. (바쁘다바쁜 현대 사회이지만) 예술에 대해서도 그리고 예술가의 삶에 대해서도 가끔 관심을 가져보자.
이 글의 표지는 ChatGPT 유료 버전인 4o가 그려줬다(물론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도 받았다)
많이는 없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내 구독자님들 중에는 내가 표지로 사용하는 그림이 좋다고 가끔씩 칭찬해 준다.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 똥손 잼뱅이지만 그림에는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ChatGPT 4o를 시켜서 많은 그림을 대신 그리게 하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글의 표지 그림은 구스타파 클림트 화풍과 고민하는 직장인 등을 프롬프트에 넣어서 완성한 그림이다.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묘하게 위로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 자체도 훌륭하고 위로가 되지만 예술가들의 인생 얘기가 나는 더 재밌다. 스스로 귀를 자른 반고흐, 시력을 잃어가는 도중에도 수련 연작을 완성한 모네 등등.
우리나라의 예술가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길 추천한다. 일부로 외로움을 친구삼은 천경자 화가님, 불행했지만 끝까지 예술혼을 불태운 이중섭 화가님, 자유로운 영혼 장욱진 화가님, 빨갱이로 몰린 이응노 화가님… 등등. 그림에서도 위로가 되지만 그분들의 인생 자체가 나에게는 더 큰 위로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의사인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저 문장을 조금 비틀고자 한다. '예술가의 삶은, 짧은 인생에 위로가 된다.'
5. 정말 꼰대 같은 말이라 조심스럽지만, 내가 요즘 우리 팀원들에게 쓰는 말이다. '지옥을 다녀오니, 지옥에서 살아남으니, 별로 두려운 게 없어.'
한 번쯤 끝까지 견디면 또 반대급부로 조금 강해지더라. 그러면 인생의 다음 스테이지가 조금은 편하더라. 그렇다고 절대 무리하게 견디라는 얘기는 아니니 흘려 들어도 된다.
6. 가끔씩 바그다드Cafe의 직장인 고민 상담소에서 위로받기. (홍보글 맞습니다)
아직 브런치 운영 초반이라 댓글이 많이 없지만, 그래도 몇몇 K직장인께서는 공감과 위로를 얻어 가는 것 같다. 감사합니다.
7. 본인을 믿자.
우리 아이 Hoya는 현재 인생 32개월 차다. 가끔씩 나의 기대치나 예상치를 뛰어넘을 때가 있다.
예컨대, 며칠 전에 내가 사주겠다고 얼렁뚱땅 넘긴 어떤 장난감을 며칠 동안 기억하고 있다가 마트 근처를 지나갈 때 사달라고 조르는 식이다. 아직 어눌한 발음으로...
"아빠가... 또미... 사.. 다 했어(아빠가 토미카 사준다고 약속했어)"
Hoya를 보며, 그런 생각을 들었다. 인간은 어쩌면 남들이 보는 것보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강하고 놀라운 존재가 아닐까라고.
Hoya가 이번에 기억력 투혼을 발휘하며 쟁취한 토미카(시리즈 중 147번). 토미카 시리즈가 150번이 넘는 것 같던데... 왠지 Hoya는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마지막 마음이 들리는 공중전화>의 강주열 씨 죽기 전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아무튼, K직장인 화이팅!
연아야 미안해. 이연이의 웃는 모습을 끝까지 보고 싶었어. 너와 이연이의 웃음 모두 지켜주고 싶었어. 이연이가 커가는 걸 보고 우리에게서 독립하는 그런 날까지 상상하기도 했지. 그런데 나는 이렇게 자꾸 떠나버리려 하네. 너무 괴로워서…… 지금 내가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있잖아, 도망가면 된다는 거 알아. 도망갈 수도 있겠지. 그런데 차마 그렇게 되지가 않아. 도망갈 수 없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더 괴로워.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죽는 것이 더 편안할 것 같아서. 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네. 차라리 나 떠나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그건 어쩌면 너와 이연이를 위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부족한 내가 살아서 힘들게 할 바에야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는 게 이연이에게도 좋을지 몰라. 이연이, 아직 어리니까. 가족 하나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는 남편이라 미안해. 아빠라 미안해. 더, 좋은 사람 만나. 더, 행복해야 해. 내가 없는 게 가족을 위해 나은 일일 거야……. 지금까지 믿어줘서, 가족이 되어주어서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