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첫 의무는 사는 것”

by 정용우

나는 거의 매일 밤 잠을 설친다. 오래 자리 잡은 지병, 이명(메니에르씨병의 한 특징) 때문이다. 처음 찾아왔던 6년 전엔 깊은 잠을 잊고 살았다. 귀를 파고드는 소리는 밤마다 나를 깨우고 심장까지 흔들었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내가 찾은 방법이 영화 감상이었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이에 할애했다. 지쳐서라도 쓰러지듯 잠들어 보자는 심정이었다.


이 병과 싸우는 동안 가족들도 힘을 보탰다. 딸은 왓챠와 쿠팡플레이를, 아들은 넷플릭스와 웨이브를 개설해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이명의 고통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적응력도 생겼지만, 여전히 어느 날은 한 판 씨름을 벌인다. 그럴 때면 예전처럼 한밤중 영화 감상에 돌입한다. 그렇게 하여 지금까지 1,646편의 영화를 보았다. 고통에서 벗어나 보려는 몸부림의 흔적! 이렇게 많은 편수의 영화를 감상하다 보니 이젠 위에서 열거한 채널들에서는 더 이상 내 취향에 맞는 영화를 골라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나에게 최근 고전 영화를 시청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또 다른 위안이 되어 준다. 필링박스(네이버 TV)다. 예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았던 작품들을 번역해 꾸준히 올려준다. 무료라는 점도 고맙다. 흑백 영화가 많아 한 편 감상하는 데도 인내를 요한다. 하지만 그 특유의 느린 호흡이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힌다. 오래된 영화는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묵직한 위로를 품고 있어, 밤의 공허함을 잠시 메워주곤 한다.


며칠 전 이곳에서 ‘버드맨 오브 알카트라즈’를 시청했다. 1962년에 제작된 흑백영화다. 영화 말미에 주인공 로버트 스트라우드가 남긴 말이 아직도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생명의 첫 의무는 사는 것”


생의 대부분을 감옥 독방에서 보냈지만, 독서와 사유를 통해 마지막엔 도(道)에 이른 듯한 남자의 말이었다. 나는 이 문장이 흔들리는 이들의 삶을 붙잡아주길 기대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 고독사 관련 기사를 읽었다. 생명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사회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병들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몇 번 넘나든 경험이 있기에 그들의 마음 한 조각쯤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절박하게 말하고 싶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보려는 시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지난해 50~60대 남성의 고독사 비율은 전체의 53.9%였다. 더 안타까운 건 2023년 고독사 중 극단적 선택이 14.1%였고, 그중 20대가 59.5%, 30대가 43.4%나 되었다는 사실이다. 청년층의 고독사는 취업 실패나 실직과 관련이 크다고 한다. 생계를 버티지 못해 세상을 등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죽음은 더 이상 개인의 나약함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이미 사회적 재난의 단계에 와 있다. 구조적 결함과 빈약한 안전망이 누군가의 생을 조용히 밀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고독사를 막기 위해서는 연령대별 대책과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경제적 위기의 청년에게는 지속 가능한 일자리와 심리적 돌봄이, 중장년층에게는 고립을 막는 사회적 연결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정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이 소리 없이 무너지는 장면에 너무 익숙해진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고독사라는 비극을 줄이는 힘은 공동체의 시선,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작은 마음에서 나온다.


영화 속 스트라우드는 끝내 자유를 얻지 못했지만 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독방에서도 새 한 마리와 책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었고, 마지막에 이 고귀한 문장을 남겼다.

“생명의 첫 의무는 사는 것”


나 또한 병고의 밤마다 이 말을 되뇌며 버틴다. 귀에서는 여전히 소리가 울리지만, 살아내겠다는 의지가 그 소리를 조금씩 밀어낸다. 완전한 해소가 아니라,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문장이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마음에 작은 불씨라도 되기를 바란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삶이 나를 몰아세워도, 한 발 내딛는 그 행위가 생명에게 주어진 첫 의무일지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의 숨결이 오늘도 조용히 꺼져가고 있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살아달라고. 삶을 다시 붙잡아 달라고. 생명의 첫 의무는, 그래도 사는 것이라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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