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시선과 비껴 선 정치인의 말

by 정용우

인간이라는 존재가 맺는 관계의 지형은 복잡하고 역동적입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방식, 즉 '인식의 지평'이 저마다 다르다는 근본적인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같은 사실을 마주하더라도, 개인의 경험과 가치관이라는 고유한 프레임을 통해 여과되면서 그 의미는 천차만별로 분화됩니다. 예컨대, 한쪽의 진심 어린 '걱정'이 화자에게는 '배려'일지라도, 청자의 주관적 맥락에서는 자율성을 침해하는 '잔소리'나 '개입'으로 즉각 변환됩니다. 말이라는 기호는 하나일지라도, 그 의미와 가치는 둘 이상으로 갈라지는 해석학적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마음속 감정의 결은 개인의 주관적 내면 풍경에 따라 다르게 직조된다는 이야기.


이러한 인식의 다면성은 공적 영역, 특히 정치 영역에서 증폭되면서 종종 신뢰의 위기를 초래합니다. 정치인이 뱉는 언어는 단순한 개인의 의견 피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가치와 시스템의 작동 원칙에 대한 태도를 대변하며, 곧바로 대중의 삶과 감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중의 시선으로 볼 때, 정치인의 말은 사적 언어의 허용 범위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공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한마디의 발언이 국민 정서를 아우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오해와 공분을 일으켜 정치적 불신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우기도 합니다. 그 무게만큼이나 정치인의 언어는 신중함과 명확함, 그리고 시대정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받습니다.


최근 불거진 김남국 전 대통령실 비서관의 인사 청탁 논란 사건은 이러한 공적 언어의 책임과 인식의 괴리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문진석 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에게 '훈식이형이랑 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내용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사안의 핵심은 개인적인 '형, 누나' 호칭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은 지위를 이용한 부적절한 '인사 청탁' 시도이며, 공직의 추천 과정이 사적인 친분과 거래로 오염될 수 있다는 국민적 우려에 대한 것입니다. 국민은 투명성과 공정성이라는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에 분노합니다.


이 중차대한 논란에 대해 박지원 의원이 내놓은 진단은 국민의 인식 각도와 크게 비껴 서 있었습니다. 박 의원은 김 전 비서관이 논란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데 대해 "부적절한 처신에 책임진 김남국의 모습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언급했습니다.


국민 일각에서는 이 발언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핵심은 청탁인데, 핵심을 직시한 이야기는 없고 사퇴에 대한 '칭찬'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났다"는 지적입니다. 민주당의 원로 중의 원로인 박 의원의 발언이 오히려 논란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청탁이라는 제도적 투명성 문제를 개인의 '사퇴'라는 행위로 치환하여 칭찬함으로써, 마치 문제가 해소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 현상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은 문제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근원적인 재발 방지 약속입니다. 그러나 공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영역의 감정인 '위로'나 '칭찬'을 내놓는 행위는 정치인의 공감 능력 부재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격려는 충분히 사적인 전화를 통해 전달해도 무방했을 것입니다. 공적 영역에서의 발언은 개인적 친소 관계를 넘어 공동체의 규범에 대한 명확한 태도를 보여줘야 합니다.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어 국민에게 '짜증나는 일'로 받아들여지기 쉬운 요즘, 정치인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그만큼 정치인의 한마디 말은 국민 통합의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공정'과 '투명'이라는 원칙에 대한 확고한 입장 표명입니다. 이 시대의 정치적 품격은 화려한 수사나 고매한 학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읽어내는 공감 능력과 정의의 핵심을 꿰뚫는 용기 있는 진단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의 실존적 각도가 미묘하게 비껴 서 있듯이, 정치인 역시 국민의 정서와 '비껴 있는 각도'를 인정하고, 그 각도를 국민의 시선으로 맞추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국민의 분노와 짜증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에 합당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야말로 책임 있는 정치인의 기본 책무입니다. 이러한 국민 정서를 읽어내지 못하고, 여전히 사적인 정이나 계파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듯한 발언을 공적으로 내놓는다면, 국민은 그 말을 상스러운 말로 '개소리' 취급하기 십상입니다. 정치인의 품격은 바로 이처럼 국민의 아픔과 분노의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날카롭고 책임감 있는 언어에서 시작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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