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없이 맞이하는 노년의 평안

by 정용우

일전에 서울에 사는 지인 한 분이 이곳 지수를 방문했다. 경영학 박사인 그는 부산에서 열리는 세미나 참석 차 왔다가 우리 집에 들른 것이다. 마침 아내가 대전 딸네 집으로 가 있어 부재중이었기에, 우리 둘은 이곳에서 6 km쯤 떨어진 반성 돼지국밥집을 찾았다. 국밥 한 그릇을 사이에 두고 근황을 주고받던 중, 그는 내 시골 생활이 어떤지 물었다. 나는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고, 적은 연금으로 사는 형편이지만 빚이 없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노년에 빚이 없으면 그게 가장 큰 복이지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양이든 서양이든 그건 똑같아요.”라며 미소 지었다.


그는 이어 플라톤의 《국가론》 이야기를 꺼냈다. 그 첫머리에 나이든 한 철학자가 친구에게 “늙으면 무엇이 가장 편하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돈을 벌 욕심도, 빚 걱정도 없어 마음이 편하다.” 나는 “정말 그런 구절이 있단 말인가?” 하며 반신반의했는데, 며칠 뒤 그는 실제로 그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왔다. 철학자의 입을 통해 들으니 더욱 실감이 났다.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서 ‘빚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마음의 평안을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젊을 때는 빚이 에너지일 수도 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학자금을 마련하고, 미래를 설계한다. 하지만 그 빚이 나이 들어서도 남아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년 이후의 삶은 ‘수입의 감소’가 아니라 ‘불확실성의 증대’가 더 큰 문제다. 이때 빚은 그 불확실성을 배가시키는 짐이 된다. 노년에 짊어지고 갈 빚이 없어야 마음이 편하다. 그것은 단순히 금전적 안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자유와 자존을 지키는 일이다.


그렇다면 노년에 진정한 자유와 자존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결국 젊을 때의 '투자 습관'이 그 열쇠를 쥐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의 투자 패턴을 보면, ‘안정적 자산’보다는 ‘한탕 투자’에 익숙하다. 한 번의 급등으로 인생이 달라졌다는 누군가의 성공담이 사회 곳곳을 떠돈다. 정부도, 언론도, 금융기관도 그런 분위기를 부추긴다. 심지어 최근에는 고위 관료가 레버리지 투자를 권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예컨대, 국내 일부 금융기관 고위 관계자가 공개석상에서 “코스피 5000 시대도 가능하다”, “빚을 내서라도 주식시장에 참여해야 한다”는 식의 언급을 했다는 보도들이 있었다. 이런 말이 대중에게는 마치 정부 혹은 금융 권유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투자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돈을 벌었다는 몇몇 사람의 영웅담에 취해 무리하게 빚을 내면, 다수는 결국 손실의 고통을 떠안게 된다. 문제는 그 손실을 개인의 실패로만 돌리기 어렵다는 데 있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빚투(빚내 투자)’ 분위기를 조성하는 중이라면, 개인의 판단은 쉽게 흐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Bloomberg 보도에 따르면, 한국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다(영끌)’ 혹은 ‘빚을 내서 투자한다(빚투)’는 경향이 5년 전 대비 약 3배로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또한 고위험 상품인 레버리지 ETF 등에 개인 자금이 집중되는 현상도 드러났다. 이런 투자 방식의 위험성은 상당하다. 예컨대 레버리지 ETF는 기초지수가 횡보하거나 하락할 경우, 일반 지수 추종형보다 성과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처럼 노후를 대비한 투자는 단기간 수익보다는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단기간에 오를 것이라는 확신만으로 빚을 내는 것은 위험한 도박과 다를 바 없다. 고위 공직자들이 ‘레버리지 투자’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는 것도 경솔하다. 정부가 개인의 빚을 책임질 수 없다면, 그런 발언은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노년의 편안한 삶은 근검에서 비롯된다. 큰 부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이 평생을 정리하며 맞이하는 마지막 품격이다. 내가 사는 시골집의 잔디밭도 빚 없이 직접 가꿔온 결과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거기에는 마음의 평화가 깃들어 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어느 노철학자가 말했듯, 나이 들어 더 이상 빚에 시달리지 않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출발점이다. 젊을 때의 한탕주의를 경계하고, 꾸준함 속에 안정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노년의 평안은 거창한 부나 명예가 아니라, 빚 없는 마음의 여유 속에서 피어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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