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취를 넘어 마음의 향기로
강둑길을 걷다 보면 종종 낯선 마을 사람들과 그들의 반려견을 마주치곤 한다. 반려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코를 땅에 바짝 붙이고 킁킁거리며 무언가를 탐색하는 그들의 모습은 자못 진지하기까지 하다. 주인들의 말에 따르면 이는 사냥 본능을 간직한 수렵견의 습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란다. 비록 사람 곁에서 사료를 먹고 살아가나 코끝으로 세상을 읽어내고 존재를 확인하는 그 원초적인 행위는 포기할 수 없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호기심의 화살이 종종 나에게로 향한다는 점이다. 개들은 내 곁으로 달려와 한참 동안 냄새를 맡는다. 특히 아내와 함께 걸을 때면 유독 내 주변을 맴돌며 끙끙거린다. 아마도 내 몸에서 묻어나는 인생의 흔적들이 개들의 후각에는 꽤 복잡한 서사로 읽히는 모양이다. 내가 곤혹스러운 기색을 보이면 주인은 부랴부랴 목줄을 당기며 사과하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 ‘냄새’라는 것이 한 존재를 얼마나 정직하게 드러내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흔히 노년이 되면 신진대사가 활발하지 못해 노폐물 배출이 늦어지고, ‘노넨알데하이드’라는 물질이 생성되면서 특유의 체취가 강해진다고 한다. 여기에 나는 현재 여러 종류의 지병을 앓으며 매일 다양한 약을 복용하고 있으니, 그 약 기운이 몸 안에서 섞여 타인보다 한층 더 짙고 씁쓸한 냄새를 풍기는지도 모르겠다. 냄새는 단순히 위생의 문제를 넘어, 지금 내 몸의 기운이 어디쯤 머물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인 셈이다.
결국 이 냄새는 숨길 수 없는 존재의 성적표와 같다. 지수로 놀러 온 손주들이 방 안으로 들어서며 “할아버지 방에서는 냄새나!”라고 천진하게 외칠 때나, 아내가 운동 뒤의 내 구취를 지적하며 얼른 씻고 쉬라고 권할 때면 나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자각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풍기는 이런 냄새들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발생하는 악취는 타인을 대하기 망설여지게 만들고, 스스로를 더욱 위축시킨다. 오죽하면 태양왕 루이 14세조차 지독한 구취로 악명이 높았겠는가. 그의 정부가 냄새를 가리려 뿌린 향수에 왕이 진저리를 쳤다는 일화는, 인위적인 향이 육신의 냄새를 완전히 덮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나는 루이 14세처럼 위대한 인물도 아니요, 타인에게 불편함을 줄 권력도 없다. 그러니 아내의 조언대로 정갈하게 몸을 씻고, 옷을 깨끗이 갈아입으며, 필요하다면 향수의 도움이라도 받는 것이 이웃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몸에서 나는 냄새를 단속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마음의 냄새’를 가꾸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사람에게는 체취 말고도 저마다의 ‘심취(心臭)’가 있다. 심술이 가득한 사람에게서는 뾰족한 심통의 냄새가 나고,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에게서는 포근한 평안의 냄새가 난다. 몸에서 나는 냄새는 씻어내거나 향수로 가릴 수 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냄새는 그 사람의 눈빛, 말투, 걸음걸이에 스며들어 결코 감출 수가 없다.
만약 내 마음의 향기가 충분히 깊고 그윽하다면, 세월이 흘러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몸의 쇠락한 냄새쯤은 조금 상쇄될 수 있지 않을까. 육신의 악취마저 뛰어넘는 인격의 향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향수가 아닐까 싶다. 노년의 아름다움은 주름 없는 피부가 아니라, 그 주름 사이사이에서 배어 나오는 은은한 삶의 향기에서 완성되는 법이다.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냄새’로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라 ‘향기’로 추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침저녁으로 선들선들 부는 바람의 냄새, 혹은 잘 마른 낙엽 위에 내려앉는 햇볕의 냄새처럼 맑고 근사한 향기를 지닌 사람 말이다. 그리하여 훗날 누군가 문득 바람 끝에 실려온 좋은 향기를 맡았을 때, “아, 그분 참 좋은 향기가 났었지”라며 나를 그리워해 준다면 그보다 더한 성공은 없을 것 같다.
산책길에서 만난 개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결국 ‘존재의 냄새’였다. 나는 오늘도 내 몸의 청결을 살피는 동시에 마음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내 안의 우울과 고집을 씻어내고, 그 자리에 타인을 향한 환대와 너그러움을 채워 넣으려 노력한다. 내일의 산책길에서는 부디 그 영특한 견공들이 나의 냄새가 아닌, 나의 향기를 맡고 꼬리를 흔들어주길 기대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