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고 했다. 이 서늘하고도 준엄한 경구는 장소와 상황을 가리지 않는 선비의 결기를 담고 있다. 나의 일상 또한 그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시골집에서의 내 하루는 대부분 책상 앞에서의 고요한 침잠으로 채워진다. 하루 중 잠자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 그리고 운동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대부분 책상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유와 성찰의 그물을 던지는 일. 때로 삶의 절실함이 차오를 때면 나직이 기도를 올리는 그 평온한 일상이 내 존재의 증명이었다.
그러나 생애 첫 수술과 입원은 이 단단했던 일상을 단숨에 박탈해 버렸다. 전신마취의 어둠을 뚫고 돌아온 병실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낯선 육체였다. 며칠간 침대에 묶여 천장만 바라보는 시간은 고통보다 지루함이, 지루함보다 지적 갈증이 더 컸다. 사나흘이 지나자 입안에 가시가 돋기 시작했다. 책이 그리웠다. 나는 아내에게 서재 특정 위치를 일러주며 책 한 권을 가져다달라 부탁했다. 회복에 방해가 될까 걱정하던 아내도 나의 간절함을 읽었는지 묵묵히 책 한 권을 손에 쥐여주었다.
내가 주문한 책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노자 이야기』였다. 730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이 책은 내게 단순한 도서가 아니라 영혼의 반려다. 병원 침대에 붙은 좁은 식사대 위에 책을 올려두고 읽어야 하니 심혈을 기울인 정독은 무리였다. 그래서 오히려 성경처럼 눈에 익고 손때 묻은 책이 필요했다. 얼마나 애독했던지 책등은 갈라지고 파본이 될 지경이었지만, 그 너덜너덜함 속에 내 사유의 흔적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만의 ‘독서 색인 목록’을 A4 용지 7장 분량으로 만들어두었다. 그 목록을 펼치면 내가 다시 읽고 싶은 지혜의 문장들이 즉각 나를 반긴다. 부담 없이 독서의 즐거움에 빠져들 수 있는 나만의 지도인 셈이다.
이번 병상 독서에서 내가 가장 먼저 소환한 키워드는 ‘부활’이었다. 수술대 위에서 마취제가 혈관을 타고 흐를 때, 의식이 암전되는 그 서늘한 경험은 죽음의 예행연습과 다름없었다. 그 어둠을 뚫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생명이 단지 연장된 것이 아니라 새롭게 부여받은 것이라 느꼈다. 그래서 장일순 선생과 이현주 목사가 나누는 ‘부활’에 관한 대화에 유독 눈길이 머물렀다.
책 속에서 장일순 선생은 일침을 가한다. 부활이란 세속의 삶이 크게 한 번 죽고 주님을 따라갈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인데, 오늘날의 신앙은 이를 너무 쉽사리 교리로 처리해버려 삶의 성실함을 잃게 한다고 말이다. 이에 이현주 목사는 한술 더 떠 뼈아픈 성찰을 더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부활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몸소 부활을 ‘살아냈다’는 것이다. 죽음의 공포를 떨쳐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 맨몸으로 거리에 나선 그들의 삶 자체가 부활이었기에, 그들의 증언은 힘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부활은 ‘그의 부활’일 뿐 ‘나의 부활’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이 문장 앞에서 나는 다시 자신을 가다듬는다. 환자복을 입고 거치대에 몸을 의지한 채, 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스테파노야, 너는 이번에 죽었다가 살아났으니 이제부터는 죽은 자의 부활 이야기보다는, 경험하면서 하는 부활, 즉 산자의 부활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느냐?”
어제의 나, 세속의 욕망과 타성에 젖어 있던 ‘나’라는 존재가 병상의 고통 속에서 한 번 크게 죽고, 다시 일어선 오늘부터 전혀 다른 삶의 태도로 세상을 마주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부활의 의미였다. 의식의 사라짐까지 맛보았던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이 생생한 자각은, 책 속의 글귀를 넘어 내 혈관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나는 이제 회복 후 나아갈 나머지 삶을 생각한다. 나는 여생을 살면서 전보다 더 깊은 사유를 할 것이며, 더 뜨거운 기도를 올릴 것이다. 이번에 얻은 ‘건강’이라는 훈장 위에 ‘부활’이라는 더 큰 무늬를 새겨 넣고 싶다. 남의 입을 빌려 말하는 부활이 아니라, 내 발걸음과 내 숨소리로 증명하는 부활. 그것이 내 남은 생의 과업이 될 것이다.
창가에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니, 내 안에서 무언가 새롭게 싹트는 기분이 든다. 이제 나는 산 자의 부활 이야기를 쓰기 위해, 다시 펜을 잡고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갈 준비를 한다. 나, 스테파노의 진짜 삶은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