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고(病苦)로 깊어진 인생 동반자

by 정용우

인연의 시작은 숫자 두 개로 선명하게 기억된다. 중학교 3학년 교실, 나란히 붙어 있던 19번과 20번. 나와 하동근 교수는 그렇게 한 책상에 어깨를 맞대고 앉아 꿈 많던 소년기를 보냈다. 한 사람은 진주로, 한 사람은 부산으로 고교 진학을 하며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으나,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낡은 책상 위로 흐르던 그 시절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각자의 삶이 깊어질수록 연락은 뜸해졌고, 서로가 세상의 풍파를 견뎌내느라 바빴던 중년의 세월은 손등의 검버섯처럼 어느새 속절없이 내려앉았다.


그러다 우리가 다시 마주한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였다. 그러나 그 재회는 여느 모임처럼 마냥 유쾌하거나 떠들썩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젊은 날의 호기가 아닌 '병의 흔적'을 먼저 읽어내야 했다. 나는 당뇨 합병증으로 폐렴과 폐결핵을 앓으며 힘겨운 치료를 이어가고 있었고, 그는 갑상선암 수술 후 몸을 추스르며 요양 중이었다.


당시 나는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을 매듭짓고 막 부동산 컨설턴트로 발을 뗐을 때였고, 그는 MBC 보도본부 기자로서 현장을 누비던 때였다. 앞만 보고 달리던 두 남자가 결국 잠시 멈춰 선 곳은 차가운 병원 문턱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마주 앉은 그날의 공기는 반가우면서도 참으로 씁쓸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모진 '아픔'은 우리를 다시 끈끈하게 묶어주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처지는 예전의 19번과 20번을 다시 한 자리로 불러 모았고,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재기의 의지를 다졌다.


다행히 병마는 잠시 물러갔고, 우리는 다시 주어진 삶의 소임에 매진할 수 있었다. 나는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로서 부동산학부를 일구는 데 정성을 쏟았으며, 다섯 권의 전공 서적을 집필하며 학자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그 역시 MBC 보도국 국장을 거쳐 iMBC 사장으로 재임하며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키는 등 경영자로서 무거운 책임을 다했고, 이후 동국대학교 교단에 서서 후학들을 길러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화려한 성공이라기보다, 병마에 지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치열한 재기의 기록들이었다. 우리는 마치 허락된 시간을 덤으로 얻은 사람처럼, 남들보다 더 성실하게 일상을 채워 나갔다.


그러나 은퇴 후 고향인 지수와 원지로 돌아온 우리에게 삶은 다시 한번 '병'이라는 까다로운 시험지를 내밀었다. 나에게는 난청과 이명, 극심한 어지럼증을 동반한 메니에르씨병이 찾아와 평온하던 삶의 질을 뒤흔들었고, 그에게는 전립선암이라는 복병과 폐차를 해야 할 만큼 큰 교통사고가 겹쳐 다시 긴 투병의 시간을 보내게 했다. "왜 또 우리인가"라는 탄식이 터져 나올 법도 했으나, 우리는 예전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몸 상태가 허락하는 대로 자주 만나 맛기행을 떠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우리네 삶의 결을 더듬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지팡이가 되어주었다.


최근 내가 담낭 수술을 위해 다시 병원 신세를 졌을 때, 동창 단톡방에 올린 나의 글에 그가 즉각 보내온 답글은 큰 울림이 되었다. 그 위로를 주고받으며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중학교 시절 같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한 동문(同門)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병고(病苦)'라는 더 깊고 준엄한 스승을 함께 모신 인생의 동학(同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성인들의 지혜가 담긴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는 가슴을 치는 구절이 나온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기 쉽나니.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육신이 건강할 때는 무엇이든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교만이 눈을 가려 타인의 아픔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한계를 잊게 된다. 그러나 몸이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병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러니 나와 그는 큰 스승 한 분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과 진배없다. 병고라는 스승은 우리에게 욕심을 내려놓는 법과,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더 따뜻하게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나의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우리는 다시 고향의 흙길 위에서 만날 것이다. 지수와 원지, 그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좁혀진 우리의 마음 거리를 확인하며, 다시 한번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동문수학'을 이어갈 것이다. 묘한 인연의 굴레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19번과 20번이다. 다만 이제는 성적표를 비교하는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안부를 챙기며 아름답게 저물어가는 인생의 참된 동행자들이다. 병고로 인해 더욱 깊어진 이 인연이, 남은 생의 가장 귀한 양약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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