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일흔셋, 고희(古稀)를 넘긴 이 시점에 나는 생애 처음으로 수술대라는 낯선 도마 위에 올랐다. 평생 이런저런 잔병치레야 없었겠냐마는, 나름의 관리 덕분인지 아니면 하늘이 도운 운 덕분인지, 지금까지는 칼을 대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은 피해 오며 살았다. 병고에 시달릴 때마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없지 않았으나, 의사의 집도하에 온전히 내 몸을 맡겨본 적은 없었으니 나름대로 건강관리에 성공한 인생이라 자위하며 살아온 터였다.
수술실에 들어서며 전신 마취를 준비하던 그 짧은 순간, 기분은 묘했다. 차가운 공기와 무기질적인 기계 소음 속에서 의사가 나직하게 말했다. “마취 들어갑니다.” 그 말에 “네”라고 짧게 대답한 것이 내 마지막 의식이었다. 단 한 마디의 대답과 함께 나의 세상은 캄캄한 암전 속으로 사라졌다. 의식의 소멸, 그것은 죽음의 예행연습과도 같은 서늘한 경험이었다.
정신이 돌아온 곳은 하얀 천장이 보이는 병실이었다. “환자분이 잠들면 안 됩니다. 계속 흔들고 말을 거세요.” 아내에게 당부하는 의사의 목소리가 멀리서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마취의 늪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이었을까, 아니면 무너진 육체에 대한 서러움이었을까. 아내는 그 눈물을 닦아주며 내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고 마주한 나의 몰골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였다. 수술 부위는 두툼한 가제로 덮여 있었고, 내 곁에는 영양제와 항생제가 주렁주렁 매달린 거치대가 마치 감시자처럼 서 있었다. 방광에는 고무호스가 끼워져 소변을 받아내고 있었고, 옆구리에 뚫린 구멍으로는 붉은 피가 호스를 타고 흘러나왔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그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기계와 선으로 연결된 하나의 ‘물체’가 된 듯한 기분에 참담함이 밀려왔다.
나이가 있고 당뇨라는 기저질환까지 앓고 있다 보니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그 기괴한 거치대와 한 몸이 되어 지내야 했다.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고통인데, 의사는 무심하게도 자꾸 나를 다그쳤다. “복도에 나가서 걸으세요. 그래야 가스가 빠지고 장기가 제 자리를 잡습니다.” 다시 살기 위해서는 그 가혹한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거치대를 지팡이 삼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간 병원 복도는 흡사 ‘연옥(煉獄)’의 풍경과도 같았다. 식사 후 시간대면 링거대를 앞세운 환자들로 복도는 ‘교통 체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들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노년 세대였다. 나는 그나마 혼자 걸을 수 있었지만, 중환자들은 가족의 부축을 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을 힘겹게 내딛고 있었다.
그곳에서 마주친 얼굴들에선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고통과 지루함, 그리고 삶에 대한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나는 그 표정들.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해 타인의 손을 빌려야 하고, 배설조차 기계에 의존해야 하는 그 아수라장이 바로 지옥이었다. 병원 복도를 걷는 그 행렬은 마치 삶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끈을 놓지 않으려는 고독한 투쟁의 현장이었다.
병실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지인들이 카카오톡으로 보내온 건강 정보들이 예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평소엔 그저 흔한 안부 인사나 잔소리로 여겼던 문구들이 가슴에 날카롭게 박혔다. 특히 ‘건강이 최고의 훈장!’이라는 문구는 마치 나를 향한 준엄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세상에서 아무리 높은 명예를 얻고,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았다 한들, 병원 복도에서 링거대를 밀고 다니는 이 초라한 행렬 속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병이라는 것은 아무리 철저히 관리해도 예고 없이 찾아오곤 한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시련을 통해 깨달은 것은, 평소의 세심한 주의와 관리가 그 확률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무너진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회복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칠십 평생 수술대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것은 운도 있었겠지만, 그나마 내 몸을 아꼈던 지난날의 보살핌 덕분이었으리라.
이제 나는 퇴원을 앞두고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병고로 경험한 그 ‘지옥’의 풍경을 잊지 않으려 한다. 다시는 그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지 않도록, 예전보다 더 치열하고 정성스럽게 내 몸을 돌볼 것이다. 내 가슴에 달 수 있는 가장 빛나는 훈장은 권력도, 명예도 아닌 바로 ‘건강’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명확히 안다. 남은 인생, 나는 나의 소중한 육체라는 훈장을 잘 닦고 보존하며, 병원 복도의 무거운 걸음이 아닌 대지의 가벼운 발걸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건강은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매일의 성실함으로 얻어낸,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고귀한 ‘훈장’이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