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앉고 싶어 안달이 나더이다

by 정용우

배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옛글의 한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배움은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 같아서 힘써 나아가지 않으면 뒤로 밀리고, 마음은 초원을 달리는 말과 같아서 한번 놓으면 거둬들이기가 쉽지 않다(學如逆水行舟 不進則退 心似平原走馬 易放難收)”는 말이다. 참으로 지독하고도 정직한 비유다. 우리는 잠시만 노를 놓아도 시대의 조류에 밀려나고, 잠시만 방심해도 공들여 쌓은 내면의 질서를 잃어버린다. 모르는 것을 날마다 조금씩 알아가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지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거친 세파 속에서 내 삶이라는 배를 원하는 방향으로 전진시키기 위한 필사적인 항해술이다. 날마다 배우는 끈기와 수시로 연습하는 성실, 나는 이 두 기둥을 합쳐 ‘호학(好學)’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 호학의 행위가 완성되는 성소(聖所)는 언제나 나의 책상이었다.


나의 생애 대부분은 책상 앞에서 이루어졌다. 대학교수가 된 이후 나에게 주어진 독립 연구실은 단순한 직무 공간 그 이상의 의미였다. 그곳은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격리된 섬이었고, 오로지 진리와 나만이 마주하는 고결한 광장이었다. 그 연구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면 나의 존재 자체가 축복받고 있다는 충만함이 차오르곤 했다. 정년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온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의 공부방은 작고 단출하여 잠을 청하는 침대와 책을 보관하는 서가, 그리고 몇 가지 가구가 전부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나의 깊은 애착이 깃든 책상이 놓여 있다. 이 낡은 책상 앞에 앉아 공부에 몰두할 때, 나는 기묘한 시간의 전이를 경험한다. 그 순간 시간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직선의 궤적을 벗어나,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고요하고 영원한 순환의 바다에 머무는 듯한 평온을 선사한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온전한 자유를 누린다.


중국 송나라의 문인 구양수는 ‘시필(試筆)’에서 명창정궤(明窓淨几)를 노래했다. ‘볕 드는 창 아래 놓인 정갈한 책상’이라는 뜻이다. 조선의 선비들 역시 이 구절을 마음에 품고 자신만의 공부방을 가꾸었다. 따스한 햇살이 비스듬히 스며드는 창가, 먼지 하나 없이 닦인 매끄러운 나무 책상. 그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맑은 샘물에 씻긴 듯 상쾌해진다. 책상은 이처럼 자신을 대면하게 하는 거울과 같다. 세상으로 향해 있던 눈을 스스로에게 돌리게 하고, 무언가를 보고 읽고 쓰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주체성의 상징이 된다. 그래서 독립된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이라면 반드시 자신만의 책상을 가져야 한다고 나는 믿어 왔다.


하지만 순탄하던 나의 공부 일상에 예기치 않은 균열이 생긴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담낭에 염증이 생겨 급히 수술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담낭 절제술 후 병원에서 보낸 일주일, 그리고 퇴원 후에도 몇 주간 침대에 누워 소일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병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책상 앞에 앉는 일조차, 건강이라는 지지대 없이는 불가능한 ‘특권’이었음을 말이다. 책상 앞에 앉지 못하는 시간 동안 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가슴을 태웠다. 하지만 이 강제된 멈춤은 역설적으로 나에게 더 큰 가르침을 주었다. 늘 곁에 있어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책상의 존재감과, 그 앞에 앉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일상의 소중함을 몸의 고통을 통해 절실히 배운 것이다.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시간만큼 인간의 진기(眞氣)는 쌓인다. 입을 다물고 몰두하면 내면의 기운은 흩어지지 않고 응축되며, 공부방 문을 닫아걸고 책상과 마주하면 밖으로 나돌던 정신이 수습된다. 안을 비우고 밖을 덜어내는 과정을 통해 사람이 차분해지고 내면이 충실해지니, 책상 하나가 주는 이로움이 이토록 지대하다. 이제 회복의 끝이 보인다. 머지않아 나는 다시 그 정갈한 책상 앞으로 돌아가 앉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책상을 뜨겁게 사랑하겠노라고. 그곳에 앉아 끊임없이 읽고 쓰며, 그 과정에 깊은 사유와 성찰의 무늬를 새겨 넣을 것이다. 그리고 삶이 간절함으로 차오를 때면 그 책상 위에 손을 모으고 정성 어린 기도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책상은 세상의 풍랑 속에서도 밀려나지 않게 해주는 닻이며, 고삐 풀린 마음을 다잡는 고삐다. 다시 책상 앞에 앉을 그날, 나는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으로 귀환하게 될 것이다. 볕 드는 창가, 나의 책상이 벌써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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