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면서부터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잘되지 않았고, 속은 늘 더부룩했다. 하루 이틀이면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한 복통이 찾아왔다.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의 복통과는 분명히 달랐다. 배 속 어딘가에서 경고음을 울리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불길한 예감에 바로 주치의를 찾았고, 초음파 영상을 본 의사는 잠시 망설임도 없이 “큰 병원으로 가보셔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즉시 진주 제일병원으로 향했다. 검진 결과는 담낭염이었다. 쓸개에 염증이 심해 수술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담즙을 만들어내는 기관은 쓸개가 아니라 간이기 때문에 담낭을 제거해도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말도 함께였다. 간에서 하루 약 900㎖씩 만들어지는 담즙은 평소에는 담낭에 저장되었다가, 지방이 포함된 음식물이 십이지장에 도착하면 장으로 흘러들어가 소화를 돕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생긴 찌꺼기가 뭉쳐 굳어지면 담석이 된다. 특히 콜레스테롤이 많아질수록 간은 이를 혈액에서 추출해 담즙 속에 쌓아두고, 그것이 작은 결정이 되어 쓸개 바닥에 가라앉는다. 그렇게 모이고 모여 돌이 된다.
퇴원하는 날, 담당 의사는 담낭에서 꺼낸 담석 사진을 보여주었다. 두 세 개쯤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사진 속에는 열 개 남짓한 돌들이 또렷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작은 돌들이 그렇게 큰 고통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실감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내 몸의 일부를 떼어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말 그대로 ‘쓸개 빠진 놈’이 되었구나.
어릴 적 우리는 종종 ‘쓸개 빠진 놈’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쓸개는 담력(膽力)이라는 말에서 보듯, 용기와 줏대, 결단을 상징하는 기관으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쓸개가 빠졌다는 표현은 자존심도 기개도 없이 남에게 지나치게 굽히는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이 되었다. 이 말 속에는 과거 한국 사회가 얼마나 기개와 체면, 버팀을 중시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흥미롭게도 쓸개는 ‘쓰다’에서 비롯된 순우리말이다. 쓴맛은 고통과 낭패를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맛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쓸개는 결단과 용기의 은유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담낭을 제거했다고 해서 사람의 담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막 마친 몸으로 이 표현을 떠올리니 마음 한구석이 괜히 씁쓸해졌다. 비유라는 걸 알면서도, 몸의 상실은 생각보다 감정에 깊게 스며들었다.
이제 나는 쓸개 없이 살아가야 한다. 담낭이 없다고 해서 삶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 수는 없다. 식습관을 조절해야 하고, 한 번에 과도한 지방을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잠시 멈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전처럼 무작정 버티거나 참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리듬을 살피며 조율해 가는 삶이 필요해졌다. 규칙적인 식사, 적당한 운동, 충분한 휴식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쓸개 하나 잃은 대신, 내 몸 전체를 더 세심하게 돌보는 법을 배우게 된 셈이다.
동시에 마음의 쓸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쓸개 빠진 놈’이라는 말처럼, 자존심과 기개를 잃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용기는 아닐 것이다. 무작정 버티는 것도 기개는 아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분명히 아는 것, 그 경계를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지켜내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담력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물러설 줄 알고, 때로는 말해야 할 순간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 남에게 맞추느라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 연습, 불필요한 죄책감 없이 거절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쓸개는 빠졌지만, 판단력과 존엄까지 빠져서는 안 된다. 몸이 아팠던 경험은 나에게 무모한 용기보다 지속 가능한 용기를 가르쳐 주었다. 부서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용기, 나를 지키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는 배짱. 어쩌면 진짜 담력은 쓰디쓴 고통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쓸개 빠진 놈’이다. 하지만 그 말에 휘둘리며 살고 싶지는 않다. 쓸개가 없어도 삶은 이어지고, 기개는 다른 방식으로 자라날 수 있다. 몸을 돌보며 마음을 단련하는 일, 그 꾸준한 반복 속에서 남은 생애를 그럭저럭이 아니라 제법 단단하게 살아가고 싶다. 쓸개 대신 경험을 품은 지혜로운 사람으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