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아내가 대전에 사는 딸아이네 집을 방문했다가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를 글로 써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공유한 적이 있다. 아픈 손주를 돌보러 간 할머니를 ‘봉’으로 삼아, 엄마 없는 틈을 타 평소 꿈꾸던 ‘아이스크림 박스’를 쟁취해낸 손주들의 영악하고도 귀여운 전술에 관한 이야기였다. 필자는 그 글에서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엄마가 없고 할머니가 약속을 한’ 그 짧은 순간을 절호의 호기(好機)로 포착해낸 점을 주목하며, 우리 노년의 삶도 이처럼 주변의 변화에 촉각을 세워 ‘작은 호기’들을 붙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 지인이 사려 깊은 답장을 보내왔다. “호기를 놓치지 않도록 매번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사는 것도 좋은 삶이 되지 않겠느냐”는 요지였다. 지인의 반론은 타당했다. 사실 매 순간을 감사함으로 채울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신이 내린 축복이며, 그런 자족(自足)의 상태야말로 인생의 가장 높은 경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그 답장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과연 보통 사람인 우리에게 ‘감사’와 ‘호기’는 서로 배척해야만 하는 가치일까.
성인(聖人)이 아닌 우리네 범인들에게, 아무런 변화 없는 일상 속에서 무조건적인 감사만을 수행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오히려 일상의 흐름을 예민하게 읽어내고,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들 ‘기회’를 능동적으로 찾아낼 때, 비로소 진정한 감사의 소재도 풍성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주변에는 ‘세상의 결’을 읽어내어 삶의 활력을 찾은 이들이 적지 않다.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은 아내와 사별한 후 홀로 지내며 적적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신세를 한탄하거나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기만 하지 않았다. 그는 다가올 미래 산업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했고,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예견했다. 남들이 주저할 때 그는 반도체 산업의 가능성을 호기라고 확신했고, 그 믿음을 실행에 옮겼다(하이닉스에 적극 투자).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그 수익으로 연인과 함께 13일간의 지중해 주변 국가 여행을 다녀왔다. 그가 여행지에서 보낸 환한 미소의 사진들은 단순히 돈을 벌었다는 자랑이 아니라,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생의 활력이었다.
조금 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례일 수도 있으나, 최근 세간의 화제가 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경우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경제적 토대가 삶의 질과 사회적 영향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임을 일찍이 간파했다. 특히 법원 경매라는 특수한 시장에 관심을 집중하며 ‘호기’를 기다렸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그는 9,200만 원에 매입한 도로 부지가 재개발 시 수십 배의 보상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꿰뚫어 보았고, 경매를 통해 알짜 상가를 확보하는 등 치밀한 행보를 보였다. 공직자로서의 도덕적 적절성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적어도 자본주의 시장의 흐름 속에서 기회의 문이 언제 열리는지를 포착해낸 그 안목만큼은 ‘준비된 자’의 그것이었다.
동양의 고전에서 맹자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 했다. 일정한 생산적 기반이 없으면 마음을 다스리는 일 또한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부를 축적하라는 탐욕의 권유가 아니다. 인간의 고결한 정신과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경제적 토대와 삶의 에너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냉철한 통찰이다.
우리가 호기를 찾기 위해 세상의 흐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은 무심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새로운 문을 열고 닫는다.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우리는 일상의 안일함에 빠져 이 문의 존재를 잊기 쉽다. "그저 이대로가 좋다"는 식의 체념 섞인 감사는 자칫 삶을 정체시키고 생기를 잃게 만들 위험이 있다.
진정한 의미의 감사하는 삶이란, 어쩌면 손녀딸이 아이스크림 박스를 가득 채우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던 그 생생한 의욕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고, 나에게 찾아온 우연한 행운을 필연적인 기쁨으로 바꾸어놓는 주도적인 태도 말이다. 그렇게 확보한 ‘작은 승리’들이 모여 우리 삶의 항산(恒産)이 되고, 그 항산 위에서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평온한 항심(恒心)이 꽃피는 법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인에게 건넸던 제안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자족의 미덕은 갖추되, 눈은 늘 깨어 세상을 향해야 한다.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재치 있게 우리 앞에 놓인 호기를 붙잡아야 한다. 아이스크림 박스를 가득 채운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처럼, 우리도 삶의 기회들을 하나둘 채워갈 때 비로소 후회 없는 노년의 페이지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