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인간으로 되돌릴 때, 나도 인간이 된다

by 정용우

우리는 모두 선과 악이 촘촘히 엮인 존재들이다. 마치 밀도가 다른 두 액체가 한 그릇 안에서 층을 이루며 포개져 있듯, 인간의 내면에는 신성(神性)과 마성(魔性)이 공존한다.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소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에서 언급되었듯, 악의 씨앗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척박한 땅에서 무성하게 싹을 틔운다. 반면 선을 지향하는 삶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연약함에 대한 고백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위험한 키워드는 단연 ‘악마화(Demonization)’다. 이는 단순한 비판이나 정책적 반대를 넘어, 상대를 ‘절대악’으로 낙인찍는 행위다. 누군가를 악마로 규정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대화나 설득의 파트너가 아니다. 오직 박멸하고 제거해야 할 짐승이자 괴물이 된다.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토론과 공존은 실종되고, 그 자리는 사법적 단죄를 부르짖는 선동과 증오의 전장(戰場)으로 변질된다.


역설적이게도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악행은 스스로가 악과 싸우고 있다고 굳게 믿는 이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허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법조차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며 ‘사특한 말’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모습은, 오늘의 정치 현실에서도 낯설지 않다. 남의 악을 공격함으로써 나의 악을 가리려는 이 가련한 투쟁은 결국 우리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이러한 악마화 현상은 최근 더욱 심화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사회적 불안과 생계의 위기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분노의 불길을 지폈고, SNS의 알고리즘은 그 불길에 확증편향이라는 기름을 붓는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기술적 환경은 악마화를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반복되고 중독적인 사회 구조로 고착화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그 순간, 내 안의 악 또한 가장 빠른 속도로 자라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니체는 일찍이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상대를 괴물이라 손가락질하며 휘두르는 칼날이 결국 나 자신을 괴물의 형상으로 빚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공자는 일찍이 "자신의 악함을 공격하고 남의 악함을 공격하지 않으면 사특함이 닦여나간다(攻其惡, 無攻人之惡)"고 가르쳤다. 진정한 도덕적 회복은 타인의 들보를 찾기 전에 나의 티끌을 먼저 직면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주기도문의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간구 또한 마찬가지다. 이는 나를 저 사악한 무리로부터 보호해달라는 배타적 요청이 아니다. 내 안에 도사린 증오의 유혹, 상대를 괴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내 안의 악마성으로부터 나를 건져달라는 처절한 고백이다.


2025년의 끝자락,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시대적 사명은 명확하다. 이제는 광기 어린 '상대 악마화'를 멈추어야 한다. 상대를 인간의 자리로 되돌려 놓을 때, 비로소 나 또한 온전한 인간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의 실재를 직시하되 그것을 사랑과 성찰로 맞설 수 있는 힘, 그 연약하지만 단단한 도덕적 실천만이 우리를 진정한 공존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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