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개구리의 경고

by 정용우

경칩이 지나면 마을 논밭에는 어디서 숨어 있었는지 모를 개구리들이 일제히 울음소리를 내며 솟아오른다. 아직 경칩 전인 겨울이라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역설적이게도 내 머릿속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개구리 두 마리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다. 이 개구리는 생태계의 일원이 아니라, 중국의 기술굴기(技術崛起)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상징하는 비유적 실체다.


나는 그동안 수십 차례나 중국 땅을 밟았다. 강산이 두 번, 세 번 변하는 시간 동안 현장을 누비며 목격한 중국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과거의 국가가 아니었다. 20~30년 전의 낙후된 이미지만을 기억하며 중국을 얕잡아보는 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깊은 우려를 느낀다. 그 우려의 끝에는 동양의 고전적 비유인 ‘정저지와(井底之蛙)’와 서구의 경영학적 우화인 ‘냄비 속 개구리’가 나란히 놓여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우물 안의 개구리, 즉 정저지와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자신이 보는 둥근 하늘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으며 좁은 우물 안에서 왕 노릇을 한다. 하지만 우물 밖의 세상은 개구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광활하고 역동적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이런 개구리의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과거 우리가 중국에 기술을 전수해주던 시절의 기억에 갇혀, 지금 그들이 이룩한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우주항공, 전기차 분야의 압도적인 성과를 애써 외면한다. "중국 제품은 저렴하기만 한 짝퉁"이라는 비아냥은 이제 위험한 자기위안에 불과하다.


실제로 중국은 이미 자본과 자원, 그리고 거대한 인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기술의 표준을 새로 쓰고 있다. 우리가 우물 안에서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는 사이, 중국은 우물 밖 광활한 대지로 나가 세계 경제의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은 전략적 부재를 넘어 국가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를 망각한 개구리에게 기다리는 것은 차가운 도태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오만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안주하는 태도다. 내 뇌리를 스치는 또 다른 개구리는 서서히 가열되는 냄비 속에 앉아 있다. 물은 따뜻하고 안락하다. 갑자기 뜨거워진다면 본능적으로 튀어 오르겠지만, 온도는 미세하게, 아주 서서히 올라간다. 개구리는 기분 좋은 온기에 취해 자신이 삶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결국 파국을 맞이한다. 이 비유는 현재 대한민국 산업계와 국가 경쟁력이 처한 ‘익숙함의 함정’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우리가 반도체, 조선, 디스플레이 등 주력 산업에서 누려온 우위가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는 사이, 중국의 추격은 마치 냄비 속의 온도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 턱밑까지 차올랐다.


변화에 둔감한 태도와 위기의식의 상실은 기업과 국가를 무능하게 만든다. "아직은 괜찮겠지", "우리에겐 노하우가 있으니까"라는 안일함은 탈출의 골든타임을 앗아간다. 중국의 기술굴기는 단순한 경제적 성장이 아니라, 우리 생존의 근간을 위협하는 온도의 변화다. 지금 이 따뜻함이 곧 끓는점이 될 수 있다는 공포를 가져야만 냄비 밖으로 도약할 근육을 키울 수 있다.


결국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중국을 향한 맹목적인 무시가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이다. 감정적인 대응만으로는 아무런 해결책도 찾을 수 없다. 중국을 이기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계산된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들은 이미 우리보다 많은 자본을 투입하고, 핵심 인재를 배출하며, 넓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자원과 자본, 인력을 모두 갖춘 거대 국가를 상대하며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져 있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초격차 기술의 확보와 유연한 전략적 사고다. 우물 벽을 허물고 나와 더 넓은 세상을 직시하는 용기, 그리고 냄비 속의 온도를 감지하고 과감하게 체질 개선을 시도하는 결단력이 시급하다. 수십 차례의 중국행을 통해 내가 본 것은 거대한 용의 승천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마주하는 것은 그 용을 보지 못하는, 혹은 보지 않으려는 개구리들의 침묵이다. 나의 이런 걱정이 한낱 기우(杞憂)로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역사는 늘 경고를 무시한 자들에게 가혹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두 마리 개구리의 우화는 더 이상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가 써 내려가야 할 생존의 지침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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