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앞뒀거나 막 새 생명을 안은 부모가 특히 신경 쓰는 일 중 하나가 ‘이름 짓기’다. 어디 부모뿐이겠는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까지 온 가족과 지인이 관심을 쏟는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살아갈 방향과 바람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짓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다양해졌다. 생년월일을 들고 작명소를 찾기도 하고, 스마트폰 작명 앱을 통해 손쉽게 후보를 고르기도 한다. 절에서 지어온 이름과 소아과 대기실에서 들은 인기 이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도 하고, 혹시라도 놀림거리가 되지 않을까 예상 별명을 따져보기도 한다. 모두 이름이 가지는 힘을 알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제자가 월간지에 실린 자신의 수필을 보내왔다. 제목은 ‘이름의 효과’. 외손자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겪은 단상을 담담히 풀어낸 글이었다. 성명학에 신경 썼던 제자의 바람과, 그런 의미를 다소 무시하는 딸의 단호한 반응이 엇갈리며 작은 서운함을 남겼다고 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이름이란 결국 기대와 염원의 다른 표현’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이름에 담긴 뜻은 언젠가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씨앗이다. 결국 이름이란 삶이 따라야 할 어떤 방향을 선명하게 제시해 주는 나침반인지도 모른다. 이름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이름이란 그 자체로 아름다워도, 그 이름을 욕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이름은 아무 죄가 없다. 오직, 그 이름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이만이 있을 뿐이다.
성철 스님은 “실제로 재물병과 여자병은 결심만 단단히 하면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름을 날리면 이름병에 걸리고, 이름병에 걸리면 남들이 다 칭찬해주니, 그럴수록 이름병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것이다.”라고 했다.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며 덫에 걸리는 사람들, 이름값보다 이름 크기에 집착하는 이들, 우리는 그런 병증을 정치와 언론, 사회 구석구석에서 너무도 자주 마주친다.
어떤 국회의원은 자신이 읽어보지도 않은 법안에 서명하고, 어떤 교수는 제자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얹는다. 고문이나 자문위원이 무슨 단체인지도 모른 채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언론은 편파 보도에 자기 이름을 걸면서 그것을 ‘특종’이라 여긴다. 건강한 이름이 드문 시대다.
공자는 “이름을 바로잡는 것이 정치의 첫걸음”이라 했다. 정명(正名), 곧 이름과 실상이 부합해야 한다는 말이다.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각자의 이름에 걸맞은 태도를 지켜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제도나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름과 실상이 다르면 그것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서민을 위한 대책’이라 해놓고 실제로는 재벌에게만 유리한 법안을 만들거나 ‘개혁’이란 이름 아래 자기 당파의 이익만 챙긴다면 그것은 거짓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름은 국민과의 약속이자 책임의 표지판이다. 실상이 따르지 않으면 곧 신뢰를 잃고, 신뢰를 잃은 이름은 결국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만다.
‘이름을 건다’는 말이 있다. 이름을 걸면 애쓰게 된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당당해지기 위해서다. 작은 일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게 되고, 그런 노력이 쌓여 결국 ‘이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묻게 된다. 당신은 지금, 이름을 걸고 일하고 있는가? 물론 이름을 걸고도 실패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실패에는 후회가 남지 않는다. 애초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고, “아직 실력이 모자라니 더 애써 보자.”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독려할 수 있게 된다. 실패가 쌓이면 실력도 쌓이고, 실력은 결국 이름값을 만든다.
이름은 남이 지어주지만, 그 이름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다. 어떤 이는 ‘빛처럼 살아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갖고도 어둠 속에서 숨어 살고, 어떤 이는 ‘별처럼 빛나라’는 이름과 상관없이 조용히 타인을 비추는 삶을 살아간다. 이름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부모가 심어준 뜻과 바람을 진짜 자기 삶으로 키워내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몫이다. 묵묵히 자신의 이름을 지켜낸 이들—불의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았던 기자,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을 지킨 판사, 이름 없이 조용히 제자들을 길러낸 교사"—그들의 이름은 남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지 않아도 조용히 빛난다. 이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건, 그렇게 하루하루 자신의 태도와 선택으로 이름을 완성해 가는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