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래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1973년 봄, 나는 그냥 공짜로 대학을 다닐 수 있다는 선배님들의 말만 믿고 무작정 상경을 했다. 선배님들 말씀은 어느 대학교에서 법과대학을 키우기 위해 특별장학생을 모집하는데, 만약 장학생이 되면 기숙사는 물론이고 4년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까지 대준다는 것이었다.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서울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나는 법과대학에 합격은 하였지만 특별장학생은 되지 못했다.
어쨌든 이렇게 나의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때 진주 시골에서 올라온 내게 대학교 캠퍼스 분위기는 무척 인상적이었으며 학교 교문만 드나들어도 나의 꿈은 그냥 실현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들뜬 기분에 학교의 이곳저곳도 돌아보았다. 그때의 한 사건이 지금도 뚜렷이 기억난다. 나는 대학 내 자연박물관을 돌아보다가 희귀한 한 동물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머리가 두 개 달린 한 마리의 뱀’이었다. 이 뱀은 중동 어느 나라 왕족이 그 대학교 총장에게 기증한 것이라는 해설과 함께... 어찌나 신기하던지 한참의 세월이 지나도 그 기억은 생생했다.
그러고서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먹고 살기 위해 그리고 조그만 꿈을 실현시켜 보기 위해 발버둥 쳤던 오랜 세월의 흐름... 삶은 지나친 욕심 때문에 멍들고 꿈은 현실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결국 남은 것이라면 여러 해 동안 병마와 싸워 건진 몸뚱이 하나.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니 예수님을 따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벗 삼아 나를 추슬러 보기로 했다. 온통 모순투성이인 나의 삶이긴 하나 그래도 이 분들과 함께하는 삶이라면 앞으로 내가 좀 나아지리라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도와 묵상 그리고 성경과 불경을 읽는 시간을 갖고 일과 후 저녁 시간에는 주로 평화방송과 불교방송 TV를 시청하고는 잠자리에 드는 그런 일정을 지켜 나가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일정을 영위해 나가는 나의 삶의 과정에서 커다란 깨우침을 주는 설법 하나를 접하게 되었다. 어느 날인가 불교방송 TV를 보는데 무진장 스님이라는 분께서 앞에서 언급한 ‘머리가 두개 달린 한 마리의 뱀’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한 머리가 다른 머리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너 놈 다른 머리야 혼나봐라’하면서 상한 음식을 일부러 먹었단다. 그 한 머리는 상한 음식을 먹은 후 그 상한 음식으로 인해 다른 머리가 배 아파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 하늘을 날듯 했고... 그런데 아뿔사! 다른 머리의 배가 아파야 할 텐데, 내 배가 아픈 것이 아닌가! 그 한 머리는 다른 머리와 함께 ‘한 배’를 갖고 있음을 간과했던 것이었다. 다른 머리 배가 바로 내 머리 배인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였다.
나는 무진장 스님의 이 설법을 듣고 오랜 어둠에서 벗어나는 듯한 희열과 함께 오랫동안 내 몸속에 응어리처럼 남아 있던 무언가가 갑자기 풀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와 나를 너무 심하게 구별 짓지 말아라. 우리는 하나다! 너는 나와 다르니 우리는 각자 따로 놀자고 하지 말아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인 것을! 네 갈 길 따로 있고 내 갈 길 따로 있다 하지 말아라. 우리는 한 몸이며 한 배다! 한 배를 탄 우리끼리 누가 옳으니 그르니 다투어 봐야 서로 상처만 입힐 뿐이다. 이런 말씀이었다.
이 이야기는 현 세상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정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야라는 두 개의 머리가 서로를 향해 비난과 공격을 멈추지 않으니, 정작 한 몸인 국민들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배 안에서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갈등과 분열로는 누구도 멀리 가지 못한다는 것을, 정치권이 먼저 깨달아야 할 때다.
정치 세계를 벗어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혹시 서로 간의 가슴 한켠에 조금이라도 미움과 증오의 앙금이 남아 있다면, 우리 모두 한 공동체요 한 몸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면서 그 앙금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우리가 설정해 놓은 멋진 목표를 위해 힘차게 달려 나갈 일이다. 우리들 중 너와 나는 하나의 배(腹)를 가진 각각의 머리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와 타인을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한 몸처럼 여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나의 아픔은 너의 아픔이고, 너의 기쁨은 곧 나의 기쁨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지금보다 훨씬 따뜻해질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