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선택한 두 달 반의 이별 수업

by 정용우

매년 추석 무렵, 나는 벌초를 핑계로 조용히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온다. 잔디를 깎고 마른 낙엽을 치우며 홀로 머무는 그 시간은, 일 년 중 가장 내면 깊은 곳의 기억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할아버지의 마지막 두 달 반, 그 죽어가심의 시간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 생생히 살아 있다.


내가 할아버지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은 스물아홉의 가을이었다. 그해, 밤꽃 향기가 짙게 감돌던 초여름 어느 날, 당시 여든이셨던 할머니가 유방암 진단을 받으셨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할아버지는 가족을 모두 불러 모았다. “친구들은 다 떠났고, 나도 오래 살았다. 살 만큼 살았다. 너희 할머니가 병을 얻어 고통받기 시작했으니, 내가 먼저 삶을 마감하여 남겨질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 할아버지는 담담하게 말씀하셨지만, 그 뜻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당시까지도 할아버지는 병원 한 번 가지 않으셨고, 리어카를 끌며 밭일을 손수 하실 만큼 건강하셨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그 결심이 더욱 무겁고 두려웠다. 가족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누구도 그 말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말씀하신 그대로 식사를 끊으셨고, 처음엔 우유만 드시다가 이후로는 물만 드셨다. 정확히 두 달 반 만에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삶의 마지막 순간마저 스스로 통제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나는 그 시기 성업공사(현 한국자산관리공사) 업무개선실에서 대리로 근무하고 있었고, 틈날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 할아버지를 뵈었다.


가족 중에서는 특히 고모님 네 분이 강하게 반대하셨다. 아무런 조치도 없이 그대로 두는 건 안 된다며, 링거라도 놓자고 강하게 주장하셨고, 어머니는 나에게 할아버지를 설득해 보라고 하셨다. 조심스럽게 말씀을 전하자,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그래, 그년들이 너를 불효자로 만드네.” 하시더니, 주사를 놓게 허락하셨다. 그러나 이미 말라버린 몸에는 주사약조차 제대로 흡수되지 않았다. 그 순간, 할아버지는 나와 고모님들 모두를 살려 주신 셈이었다.


그 시절의 한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밤늦은 마당을 어머니가 불안한 발걸음으로 서성이시던 때, 할아버지는 “아가, 들어가서 자거라. 오늘은 안 간다. 내일 또 일해야제.”라며 오히려 어머니를 달래셨다. 당신이 떠나실 날이 다가오는데도, 걱정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일은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할아버지는 어머니를 데리고 집 근처 밭으로 가셨다. “내가 죽거든 여기 묻히고 싶다. 이 밭을 못 쓰게 되면 수확이 줄 텐데, 혼자 자식들 키우기 힘들 텐데 괜찮겠나?”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남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셨다. 그 말씀이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 있다.


나는 임종의 순간에는 함께하지 못했다. 하지만 돌아가시기 닷새 전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할아버지,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세요.” 나의 간청에, 할아버지는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짐만 남기고 간다. 미안하구나.” 하셨다. 그 한마디가 오랫동안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떠나기 전, 할아버지는 내게 마지막 말을 남기셨다. “잊어버려라. 이 할애비를 잊어버려라. 죽으면 사그라져야 한단다. 애탕애탕 살지 말거라. 가능하면 여행을 많이 하거라.” 그 말은 그 어떤 유언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죽음을 이렇게도 선택하고 준비할 수 있다는 것. 할아버지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셨다. 할머니는 그로부터 3년 뒤, 공교롭게도 할아버지 제삿날에 돌아가셨다. 두 분은 생전에도 깊은 정으로 서로를 보듬으셨지만, 세상을 떠나는 날조차도 함께 맞추신 듯했다.


나는 그 후 25년 동안 크고 작은 병마와 싸우며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생각은 점점 더 분명해졌다. 이렇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으려면 결국 ‘생명의 본래자리’를 찾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처럼 평온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남은 삶은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나는 이제 고향에서 남은 생을 보내려 한다. 단지 조용히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이라는 수수께끼 앞에 서서, 그 본질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자 함이다. 할아버지께서 남긴 그 마지막 눈빛과 말씀은, 내 삶의 이정표로 남아 있다. 이제 내 나이도 일흔을 넘겼다. 해가 갈수록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지는 것은, 아마도 그 마지막 순간의 의지가 내 안에 여전히 너무나 강렬히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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