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향처럼, 마음의 향기를 나누다

by 정용우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나서야 다시 정원의 고요함이 찾아왔습니다. 손주들이 다녀간 잔디밭에는 아직도 그들의 웃음소리가 맴도는 듯합니다. 뛰놀던 아이들이 불쑥 묻습니다.

“하삐, 이 향기 어디서 오는 것이에요?”


저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오래된 나무 앞에 세웁니다. “이 나무란다.” 하고 말하자, 아이들은 고개를 가까이 대고 향기를 맡습니다. 그리고 이내 환한 얼굴로 감탄사를 쏟아냅니다.

“우와! 무슨 꽃이에요? 너무 좋아요!”


그 나무는 우리 집 정원에 25년째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목서(金桂)입니다. 해마다 10월 초순이면 조용히 꽃을 피웁니다.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작고 소박한 꽃이지만, 그 향기만큼은 만리를 간다 해서 ‘만리향’이라는 이름도 붙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맡으면, 달콤하고 상큼한 향기가 온몸을 감싸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오늘처럼 창문을 활짝 열어 놓은 날이면 그 향이 공부방 안까지 스며듭니다.


저는 문득 사람이 ‘향기롭다’는 말을 가만히 곱씹습니다. 이는 몸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삶의 태도에서 은은히 퍼지는 마음의 향기일 겁니다. 그렇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향기를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에게 작은 기쁨이 되고, 잔잔한 위로가 되는 그런 향기를 가진 사람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향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먼저,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일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경청은 마음의 향기를 나누는 가장 기본적인 예절입니다. 또, 상황이 어떻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괜찮아요”, “고마워요”, “천천히 하세요” 같은 말들이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고 그날의 공기를 바꿉니다.


나아가 작은 친절을 실천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길을 묻는 이에게 웃으며 길을 알려주고,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고, 하루 한 사람에게 칭찬을 건네는 것. 이런 작지만 꾸준한 실천이 바로 사람의 내면에서 퍼져 나오는 향기를 만들어갑니다.


목서는 늦가을, 꽃이 귀할 무렵 홀로 피어납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향기를 세상에 나눕니다. 사랑채 앞에 심겨져 선비의 꽃이라 불렸던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눈에 띄지 않더라도 깊고 향기로운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제 말 한마디, 제 작은 배려 하나가 누군가에게 향기로 기억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향기로운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 세상도 더욱 향기롭게 변해갈 것이라고요. 각박하고 경쟁적인 세상 속에서도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존중하고, 다독이는 마음들이 모이면, 우리 사회 전체가 더 부드럽고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찰 것입니다. 마음의 향기를 나누는 사람이 많은 공동체는 결국 더 평화롭고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저는 목서 향기에 취해 책장을 넘깁니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깊이 다짐합니다. 저부터 향기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