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 센스쟁이

아이의 눈으로 본 삶의 지혜

by 정용우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센스쟁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였지만, 그 말은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어린 손녀의 맑은 눈동자에 비친 삶의 한 장면.

부부가 나란히 서서 함께하는 모습에서, 아이는 ‘센스’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날은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손녀 둘이 할머니를 따라 시골집에 왔습니다.

며칠 전 금요일, 하룻밤만 자고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오래, 더 즐겁게 머물렀습니다.

놀이기구를 꺼내어주자 마당은 아이들의 세상으로 바뀌었고, 잔디밭은 웃음과 땀이 뒤섞인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할머니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옆에서 그동안 밀린 식기들을 씻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특별히 누굴 도우려는 마음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함께라는 이유로 손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부엌으로 들어온 큰 손녀가 저를 향해 외쳤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센스쟁이!”


식기 거품이 가득한 손이 멈췄습니다.

아내와 저는 얼굴을 마주 보며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러고는 마음속 어딘가가 따뜻하게 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은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걷는지, 어떻게 말하는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이들은 느낍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소리 없이 손을 내미는 따뜻함,

말없이도 전해지는 ‘함께 있음’의 가치.


그리고 아이들은 배웁니다.

세상을 대하는 자세, 사람을 대하는 마음,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가족은 삶의 작은 거울입니다.

특별한 무언가를 보여주려 애쓰지 않아도,

그저 함께 살아가는 모습 안에 진실이 담깁니다.


아이에게 ‘센스쟁이’로 보인 그 순간은,

사실 거창한 의미가 담긴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큼 대단한 행동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소박한 순간에, 아이는 진심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마음을 닮는 시간.

서로를 위해 기꺼이 손을 움직이는 장면.


그것이 진짜 ‘센스’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합니다.

글을, 말을, 예절을, 지식을.

그러나 정작 아이들이 가장 깊이 배우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책이 아니라,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들려줍니다.


나란히 서서 그릇을 씻는 두 사람.

놀다 지친 손녀를 안아주는 할머니.

입을 맞추듯 나눠 먹는 간식.

말 없이 눈빛으로 건네는 “고맙다”는 마음.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자랍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우리 아빠, 센스쟁이야”

“우리 엄마, 진짜 멋져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작은 칭찬 하나가 우리를 멈춰 세웁니다.

하루의 분주함 속에서도,

그 아이의 말 한마디는

마음 깊은 곳에 ‘이 길이 맞다’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그러니 오늘도 묵묵히, 조용히, 따뜻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에게

좋은 눈길로 기억되는 삶,

어린 눈동자에 기쁨으로 남는 하루가 되도록 말입니다.


그날의 그 한마디는

지금도 제 마음 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센스쟁이.”


그 말이 제게 건넨 명상은,

삶이란 결국

‘누군가의 좋은 기억으로 남는 일’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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