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사행심에서 드러난 사회적 병폐를 돌아보며
며칠 전, 지수에 사는 할머니가 진주 손주들과 함께 동네 마트에 다녀온 이야기를 가족들끼리 나눌 기회가 있었다. 마트 앞에 놓인 뽑기 기계 앞에서 손주들이 눈을 반짝이며 줄을 섰다고 한다. 엄마에게는 안 된다고 거절당했던 그 뽑기 게임을 할머니에게 슬쩍 부탁한 아이들. 귓속말로, 몰래, 살짝. 엄마가 알면 꾸중할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은 자신들의 작고 귀여운 간청을 거절하지 못할 할머니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할머니는 한 번씩 돌아가며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막내 손주 둘이 한 번 더 하고 싶다며 조르자 옆에서 지켜보던 큰 손주(초등학교 1학년)가 조용히 말한다. "사행심 조장." 뜻을 정확히 알았는지 모를지라도, 어린 동생들이 게임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며 던진 말이다. 어른들의 말을 흉내 내듯 툭 던졌지만, 그 말 한마디가 가족 식탁 위에 놓인 화두가 되었다.
식사 도중 이 이야기를 들은 엄마(초등학교 교사)는 요즘 아이들에게도 학교에서 이런 유사 도박, 사행성 게임의 문제점을 교육한다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편으로는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왜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이런 교육이 필요해졌을까? 우리는 어쩌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지고 말았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일확천금’의 유혹에 노출되어 자라왔다. 인형 뽑기 기계, 뽑기 사탕, 제비뽑기부터 시작해서 청소년기엔 스포츠 토토, 성인이 되어서는 복권, 로또, 경마, 카지노 등 그 형태만 달라졌을 뿐 ‘작은 투자로 큰 보상’을 노리는 심리는 여전하다.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영상과 광고들이 넘쳐나는 시대, 수고는 최소화하고 보상은 최대화하려는 사회 분위기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노력 없이 얻는 돈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사회는, 그런 책임보다 ‘빠른 성과’, ‘큰 돈’, ‘인생 역전’의 환상만을 부추긴다. 정직하게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든 시대, 수십 년 직장 생활을 해도 은퇴 후가 불안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당연히 더 쉬운 길, 더 큰 보상을 좇게 된다.
이번 캄보디아 사태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긴 청년들, 부모의 지원 없이는 독립도 어려운 청년들이 ‘고수익 취업’이라는 이름의 유혹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도 ‘일확천금’에 대한 희망과 절박함이 공존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처참했다. 사기와 감금, 강제노동, 인권 유린까지, 그 끝은 우리가 상상하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의 모습이 아니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도 일확천금을 좇는가? 단순한 개인의 욕심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을 그렇게 몰아가는 구조적인 문제와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성실한 노동’에 대한 가치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은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일한 만큼 보상받는 구조가 깨지고, 노력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결국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된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현실, 그것은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사회의 책임이다.
그렇기에 지금이야말로 다시 돌아봐야 한다. ‘정직한 돈벌이’의 의미를, ‘노동의 가치’를, 그리고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큰 손주가 무심코 던진 “사행심 조장”이라는 말은 단순한 아이의 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고, 또 경계해야 할 위험이다.
뽑기 기계 앞에서의 작은 에피소드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가 캄보디아 스캠 조직에 희생된 청년들의 현실까지 이어진 것은 결코 과장된 연결이 아니다. 뿌리는 같고, 문제의 본질 또한 유사하다. 사소한 유혹이 점차 시스템이 되고, 사회적 분위기가 되며, 결국에는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정직하게 일하고, 성실하게 돈을 버는 것이 가장 보람되고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이라는 인식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정책과 제도 속에서 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반드시 전해주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삶의 진리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그 진리를 삶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작은 뽑기 기계 앞에서의 유혹도, 해외 취업 사기의 덫도 모두 ‘쉽게 얻으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길은 언제나 성실한 노동과 책임 있는 삶이다. 이번 캄보디아 사태는 우리가 잊고 있던 그 교훈을 다시 되새기게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