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참 듣기 좋은 말이다. 듣기 좋을 뿐만 아니라 매사에 감사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몇 번 감사한 일을 적거나 그런 경험에 대해 대화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의도적으로라도 감사가 마음속에서 솟구치게 하라는 가르침에 공감한다. 이토록 ‘감사’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와서 훌륭한 생활 방편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어느 날 책을 읽다가 ‘감사한 죄’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다. 감사한 것에도 ‘죄’가 있다니... 그 책명은 박노해 시인이 지은 시들을 모아 출간한 책이다. 책 제목은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다. 아래는 그 책 중 ‘감사한 죄’라는 시에서 발췌한 몇 구절이다.
- 내 나이 팔십이 넘으니 오늘에야/내 숨은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중략)
다른 사람들이 단속반에 끌려가 벌금을 물고/일거리를 못 얻어 힘없이 돌아설 때도,/민주화 운동 하던 다른 어머니 아들딸들은/정권 교체가 돼서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도/사형을 받고도 몸 성히 살아서 돌아온/불쌍하고 장한 내 새끼 내 새끼하면서/나는 바보처럼 감사기도만 바치고 살았구나/나는 감사한 죄를 짓고 살아왔구나
박노해 시인의 시 '감사한 죄'에서 어머니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깊은 성찰을 한다. 그녀는 자식이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았지만, 그 감사 속에 간과했던 진실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감사한 죄를 짓고 살아왔구나’라는 고백은 단순히 감사의 의미를 넘어, 우리가 너무 쉽게 지나쳤던 '죄'를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는 공기처럼 당연하게 주어진 삶을 살지만, 그 안에서 나 자신만을 중요시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와 ‘내 가족’의 안녕만을 기도하며, 그 외의 사람들의 아픔이나 고통은 외면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나 어려움은 그저 멀리 있는 이야기일 뿐, 나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기 쉽다. 그러나 나이 들어 인생을 돌아보면, 감사 속에는 알게 모르게 저지른 죄와 무관심이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세상은 '나'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로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결코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나누려는 노력 속에서, 진정한 감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성찰이 바로 '감사한 죄'의 깊은 의미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감사한 죄’라는 표현은 단순히 자기반성을 넘어서, 우리가 얼마나 무심코 살아왔는지, 얼마나 다른 이들의 고통을 외면했는지를 상기시키는 메시지이다. '감사한 죄'는 우리가 그동안 놓쳤던 부분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감사한 죄'는 그저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의미를 넘어서,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이끄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진정한 감사란 무심코 지나친 순간들이나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고, 그 아픔을 함께 느끼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온다. 이러한 성찰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세상을 향한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되고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감사에 도달할 수 있다.
시인 박노해의 어머니는 자식이 살아 돌아온 것에 감사하며 살았으나, 그 감사 속에 알게 모르게 죄를 짓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죄는 자신과 가족만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온 이기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시구를 읽고, 나는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나 역시 나와 내 가족만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고, 타인의 고통이나 어려움에는 무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되든지 간에 나만, 내 자식만 무사하고 잘 되면 그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다. ‘나’밖에 모르는 이기심의 발로였다.
이제 ‘감사한 죄’를 통해 나만의 안락한 삶에 감사하며,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는 무관심했던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제는 그 감사 속에서 나도 알게 모르게 지은 죄들을 마주하고, 그것들을 성찰하며 참회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더 나아가 내가 지은 ‘감사한 죄’를 인정하고, 그것을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감사한 죄'의 성찰 속에서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터이니.., 우리가 지은 죄를 참회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감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성숙을 이루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