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더 더워질 지구에서 살 아이들을 생각하며
2024년 10월 30일 오전 10시 7분. 꿈제가 세상에 나왔다. 꿈동이(첫째)때도 응애응애 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터져나왔는데, 이번에도 같았다.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이 때다. 난 이걸 두번이나 겪었으니 더 없는 행운아다. 정말 생애 다시 없을 축복이다.
2024년의 임신 생활은 더 나은 배려 속에서 시작됐다. 출퇴근 시 악명 높은 9호선 급행을 이용해야 했는데, 임산부 배려석이 비워져 있을 때가 꿈동이 때보다 더 많았다. 10번 중 5~6번은 비어 있었고, 2번은 양보 받았고 2번은 서서 갔다. 출근 시 급행이 오는 역까지 빨리 가기 위해 72번의 따릉이를 이용했다. 따릉이를 타고 가도 될 정도로 건강해서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출산예정일 20일 전까지 출근을 했다.
그러나 복병은 다른 데 있었다. 올해 임신 생활은 '더위'와의 싸움이었다. 더위를 안 타는 체질인지라 본가에서 선풍기도 안 틀고 살던 나인데, 5월부터 말 그대로 '너무 더웠다'. 산부인과 쌤은 38도의 물주머니(양수)를 안고 사는 셈이니 더울 만하다고 하셨는데 지나고보니 복선이었다. 그게 아니라도 올해는 엄청 더울겁니다, 같은.
꿈동이가 "엄마, 에어컨 틀어주세요"할 정도의 더위가 이어졌다. 배에 커지는 물주머니를 가진 나 또한 너무 더웠다. 그간 에어컨을 거의 극혐하던 나조차도 두손두발들 더위였다. 지구를 위해 에어컨을 가능한 적게 틀자, 생각했다가도 꿈동이가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에 내가 먼저 켜주는 날이 이어졌다. 마음이 이상했다. 죄책감일까? 보다 솔직하게 죄책감 속에 '시원해서 좋다'는 마음도 있는데. 이런 마음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얼마 전 본 류은숙의 <아무튼 휘트니스>에서 명확한 문장을 찾았다.
'난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는 초탈의식과
'하지만 심미안은 있다구' 하는우월의식이
머릿속에서 맞부딪쳐 요란스럽게 깨진다
올해 더위는 '너무 더워 흐믈흐물 에어컨 틀자 얼른'하는 초탈의식이 '난 에어컨 안 틀어'하는 우월의식을 가뿐하게 물리치게 했다. 더 무서운 건 앞으로 우월의식이 더 커질 날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2024년 서울의 폭염주의보는 9월 18일까지 이어졌다. 역대 가장 늦은 폭염주의보였다. 2024년 9월 18일이 앞으로 올 9월 18일 중 가장 시원할 것이라는 사실이 소름끼쳤다. 그러나 에어컨을 끌 수는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9월 7일 강남에서 펼쳐진 '기후정의행진'에 후원금을 보내는 일, 10번 중 9번은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가는 일, 봤던 신문을 재활용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러한 불과함을 안은 채 나보다 훨씬 더 길게 이 지구에서 살아가야 하는 21년, 24년생 생명체들을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그러한 질문을 안고 아기를 바라본다. 사람의 형상으로 온전히 태어났으나 아직 온전하지 않은 생명체들을 보며. 내가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이 세상을 볼 아이들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