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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Oct 15. 2024

선생님, 우리 애 짝지 좀 바꿔주세요!

짝지가 되어 한 달 함께 지냄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와 학부모

  교실에는 책상과 의자가 있다.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한다. 담임은 자신이 의도한 수업에 맞게 책상을 배치한다. 짝 활동을 할 때는 책상 두 개를 옆으로 붙이거나 마주 보게 붙여 수업을 한다. 모둠활동을 할 때에는 네 명이나 다섯 명이 책상을 모아 한 모둠을 구성하여 수업을 진행한다. 전체 책상을 디귿 자 모양으로 만들어 무대처럼 공간을 만들어 수업을 하기도 한다. 교실 안에서 책상 배치, 짝활동, 모둠활동 등은 담임의 고유 권한이고, 효과적인 교육활동을 위해 고심한 흔적이다.


출처: 블로그, 아결방

  보통은 두 개의 책상을 옆으로 붙여 짝지를 만들고, 세 분단 정도로 평소 책상을 구성한다. 그때 자신의 짝이 누가 될지가 아이들에게는 큰 관심사항이다. 담임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에 한 번 짝을 정하고 자리를 바꾼다. 새로운 달이 시작하는 첫날, 아이들은 나에게 꼭 묻는 말이 있다.

  "선생님, 자리 언제 바꿔요?"

  사실 새로운 짝과 자리가 정해졌을 때, 만족스러워하는 아이는 전체 24명 중 2~3명 정도이다. 자신의 짝, 자기 자리의 위치 모두가 마음에 들 확률은 극히 낮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자리 바꾸는 것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갖는다.


  자리를 바꾸는 방법은 담임마다 다양하다. 제비 뽑기,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랜덤 뽑기, 순번을 정해 원하는 자리에 앉기 등 이번 달에 어떤 흥미로운 방법으로 자리를 뽑는지 아이들에게 안내한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인다.

  "바뀐 자리로 앉은 상태에서 선생님이 보고 수정할 부분은 수정 후에 최종 자리가 정해지면 자기 책상을 가지고 이동합니다."

  너무 별난 아이들이 붙게 되는 경우, 시력이 나쁜 아이가 뒤쪽에 있는 경우, 덩치 큰 아이가 앞에 있어 시야를 가리는 경우 등이 발생하면 약간의 수정을 담임이 해줄 필요가 있다.


  드디어 자리 바꾸기가 시작된다. 제비 뽑기를 하면 아이들이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한 명씩 나와서 뽑는다. 또는 컴퓨터로 자리 뽑기 프로그램을 돌리면 결과 발표 전 카운트다운 때 아이들은 두근거리며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바뀐 자리로 몸만 이동해 보세요."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자기가 앉게 될 자리로 이동한다. 새로운 자리에서 친한 친구가 어디에 있나 둘러보며 눈인사를 하고 있다.


  담임은 앞에서 전체적인 배치를 주욱 확인한다. 덩치가 큰 학생이 앞쪽에 앉아 뒷 친구들 시야가 가린다. 복도 쪽이나 창문 쪽 분단 앞쪽 인원의 동의를 얻어 자리를 수정한다. 가운데 선생님을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시야가 형성되기에 큰 친구들을 양쪽 끝 앞으로 보내면 앞에 앉아도 뒤를 가리지 않는다. 많이 떠드는 두 친구가 붙어 있다. 거리를 두도록 살짝 자리를 바꾼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네. 이번 달은 이렇게 앉도록 하자. 다들 자기 책상을 옮겨서 이동하세요."


  그렇게 이번 달의 자리가 정해지면 누군가는 행복해하고, 누군가는 울상이 된다. 자기랑 친한 친구와 가까이 앉거나 같은 모둠이 된 학생은 '룰루랄라'를 외치며 책상을 옮긴다. 평소 안 친하거나 싫어하던 아이와 짝이 된 학생의 표정은 완전 썩어 있다.

  "우리가 교실에 모여서 공부하는 가장 큰 목적은 '사람공부'입니다. 살면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 지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지요. 이번 한 달, 안 좋아하는 사람과 짝이 된 사람은 그 친구와 친해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친구의 장점을 찾아보세요."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 자리의 위치가, 내 옆의 짝지가, 우리 모둠의 모둠원이 싫든 좋든, 그렇게 부대끼며 교실에서 생활한다. 사람이 살면서 어찌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것인가! 주어진 상황에 맞게 내 마음과 기분을 잘 조절하면서 어울려 사는 것이다. 담임이라고 뾰족한 해답도 없다. 자리가 정해지면 한 달 동안은 그렇게 지내고, 다음 달에 마음에 드는 자리, 마음에 드는 짝이 되기를 바라며 또 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지내면서 '사람공부'를 한다 생각하고 한 달을 살아내는 것이다.


출처: 블로그, 소행성

  아이들은 집에 가서 오늘 자리 바꾼 것에 대하여 부모에게 이야기를 한다.

  "오늘 자리를 바꿨는데,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애랑 짝이 되었어!"

  라고 말하면서 행복한 표정을 보이면 부모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아이가 말을 한다.

  "오늘 자리를 바꿨는데, 정말 싫어하는 애랑 짝이 되었어.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내! 선생님한테 말해서 나 짝 좀 바꿔죠. 제발!"


  이 말을 들은 부모의 속마음도 아이와 같이 좋지 않다. 부모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선생님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부모의 반응.

  "우리 000, 짝이 마음에 안 들어서 속상한가 보구나. 아마 선생님이 그렇게 자리를 정한 의도가 있을 거야. 한 달 동안 싫더라도 참고 잘 지내봐. 시간은 금방 흘러갈 거야."

  마음이 안 좋은 아이를 위로하고 담임의 자리 배치 방침에 힘을 실어준다.


  번째로, 선생님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없는 부모의 반응이다.

  "너희 담임이 자리 배치를 어떻게 했길래, 우리 000이랑 그 못된 애랑 짝이 되었대. 내일 당장 담임한테 연락해서 자리 바꿔 줄게!"

  이렇게 처신하는 것이 과연 자신의 자녀에게 득이 될까? 아이의 편에서, 한 치 앞만 내다보고 아이를 망치는 발언은 아닐까? 교사에게 민원을 넣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것일까?


  다음날 그 학부모는 담임에게 전화를 한다.

  "선생님, 어제 자리를 바꾸면서 우리 000의 짝을 다들 싫어하는 그 아이와 해주시면 어떻게 해요?"

  "그럼, 그 아이는 누구랑 짝이 되나요?"

  "우리 애 말고 다른 애랑 짝을 시켜주면 되잖아요!"

  "다 안 하려고 하면 누구랑 짝을 해요?"

  "그런 모르겠고. 아무튼 우리 애 짝지를 바꿔주세요."

  막무가내이다. 사실 모두가 꺼리는 학생이 교실에 있으면 담임도 참 난감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함께 안고 갈 수밖에.


  "이번 달 자리 정한 대로 앉고, 한 달 지나면 또 자리 바꾸거든요. 그때 000의 자리와 짝을 좀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달에 이렇게 앉자고 해놓고, 한 사람 바꿔주면 또 누구도 바꿔 달라고 하고, 평형성에 안 맞아서요. 죄송하지만, 000에게 이번 달은 좀 힘들어도 그 짝과 지내고 다음 달에는 짝을 신경 써주겠다고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전해주세요."

  참 이런 전화를 받으면 기분이 별로다. 학부모의 요구대로 짝을 바꿔주면 다른 아이들을 또 바꿔야 하나? 그럼 결국 자리 배치를 다시 하는 것과 다름없다.


  담임의 입장에서도 모든 학생이 꺼리는 그 친구가 우리 반에 없으면 좋겠다 싶다. 그리고 방금 전화를 해서 자리를 바꿔 달라고 한 그 학생도 우리 반에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부모가 짝이 마음에 안 드니 바꾸어 달라고 요구한 것처럼, 담임도 모든 학생이 꺼리는 친구와 민원을 넣은 그 학생을 우리 반 말고 다른 반으로 보내고 싶다. 그러면 이런 학부모의 전화를 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기에 한 교실에서 일 년을 함께 살아간다.


  담임은 자리 배치 시, 신경을 많이 쓴다. 이 전화로 인해 신경 쓸 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다음번부터 자리 바꿀 때는 000은 짝이 누가 되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000의 표정을 살펴야 한다. 또 집에 가서 학부모에게 말하면, 또 담임에게 자리 관련 민원을 넣을 테니. 그렇게 보면 000의 전략은 성공한 것이다. 담임이 000의 짝을 모두가 싫어하는 애랑은 시키지 않을 테니. 담임은 속으로 생각한다.

  '000의 짝이 누가 되는지, 이런 것까지 신경 써서 자리를 정해야 해? 참 짜증 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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