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하고 나면 흔적이 남지 않는다. 내가 했던 말을 누군가가 걸고넘어지면 아니라고 잡아뗄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어떤 내용의 글인지 읽어보는 모든 사람이 알 수가 있다. 특히 인터넷 공간에 올리는 글은 일파만파 퍼질 수도 있다. 카톡 등 SNS,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신중하게 올려야 한다.내가 올린 글로 인해 누군가가 마음이 상한다면 그 글은 내리는 것이 맞다.
글을 쓰면서 주변 사람들과 얽히게 된 일들을 적어보려 한다. 내가 적는 글이 보통의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적은 글이기에가족, 직장동료, 지인이 등장하는 글들이 있다. 그 글에 나오는 사람이 글을 읽었을 때의 반응은 내 마음과는 달랐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정도는 별 일이 아닌데. 그냥 인터넷상에 올려도 괜찮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나의 기준과 상대방의 기준은 확연히 달랐다. '어떻게 이런 글을 올릴 수가 있어요? 당장 내려요!', '글을 쓰는 건 작가 마음이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네요. 글을 내려주면 좋겠네요.'
처음에는 그런 반응에 대하여 내 마음도 부정적이었다. '그렇게 큰 일도 아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아닌데,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닌가?' 하며 애써 적은 글을 내리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내 생각이 바뀌었다. 그 글을 쓴 나도 글의 주인이고, 그 글에 나오는 인물들도 글의 주인이다. 그렇기에 글에 나오는 인물이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하면 공개를 안 하는 것이 맞다.
'결혼육아지침서'를 초창기 때 썼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결혼과 육아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서이다. 그러한 글들은 자연히 나와 보석 같은 사람, 아이들이 주연급으로 등장한다. 그 글을 읽은 보석 같은 사람은 분개하였다.
"어떻게 이렇게 사적인 내용을 온 세상에 공개할 수 있어요? 우리 둘, 아이들 이야기는 좀 빼주면 좋겠네요."
그 후로 내 글의 큰 흐름이 바뀌었다. 결혼, 육아 관련 주제에서 사십 대 아저씨 이야기, 학교 관련 내용으로.
지금 '사십 대 아저씨의 보통날' 글 중에는 가족 이야기가 조금씩 언급되기도 한다. 여보와 관련된 내용은 최소화하여 적으려 하고, 아이들과의 내용도 최대한 정선하여 긍정적인 내용으로 적으려 한다. 나중에 혹시나 아이들이 커서 나의 브런치 글을 읽게 되면 기분 상하지 않도록. 그리고 어느 정도 장성하여 개인의 주장이 생긴 나의 자녀가, 내 글 중 마음에 안 드는 글이 있으니 내려달라고 하면 내려줄 것이다.
올해 체육전담교사가 되어 6학년 체육수업을 한다. 유독 눈에 띄는 별난 남학생이 있다. 그 반 담임선생님과 그 학생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작년에도 그 선생님의 반이었고, 아이가 별나다 보니 학부모와도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수학여행을 갔는데 그 학생이 놀이동산에서 코피가 나고, 숙소에서 지갑을 분실하는 등의 일들이 생긴다. 그 내용을 소설처럼 적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명을 사용하여 아이의 시선으로, 교사의 시선으로 약간 각색해서 글을 적어 게시하였다.
당시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음을 그 담임선생님은 알고 있었고, 내 글을 보았다. 잠시 연구실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신다.
"글을 쓰는 건 선생님의 자유고, 어떻게 글로 표현하는 것도 자유지만. 이 글은 좀......"
"제 글이 부장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내리도록 할게요."
"공개글 말고 비공개로 해주시면 좋겠네요."
가명으로 내용을 썼지만 글의 내용이 너무나도 사실적이었던것이다. 특히 당사자가 읽으면 부담될 만큼.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내 주변의 일을 글로 쓸 때는 정말 신중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나의 글로 인해 누군가가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안 되니까. 여기 브런치에 '초등교사 계속할 수 있을까'에 적은 사건들도 시간이 꽤 오래되었기에 괜찮은 것이지, 사건 당사자가 보았다면 기분이 상할만한 글도 있는 것 같다. 혹시 제자 중 누군가가 글을 읽고, '선생님, 저기 절도 사건 이야기요. 내 얘기잖아요. 글 삭제 바랍니다.'라는 연락을 해온다면 그 글은 발행 취소를 할 것이다.
교직에서 만난 인연 중 '조부장님'과 관련된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신규 때 만난, 나보다 연배가 있으신 조부장님을 감히 '절친'이라 칭하는 제목을 붙인 글이다. 이 글을 발행 후 조부장님께 링크를 보내드리며, 글을 올려도 되는지, 수정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조부장님께서는 너무 미화해서 적은 것 같다며 겸손의 답문을 보내주셨다. 이렇게 글의 주인공에게 한 번 물어보고 올리면 내 마음이 편하다.
'친구의 아내가 소천했다.'라는 글도 참 조심스러운 내용의 글이다. 친구 아내의 장례식에 다녀온 장면들, 그때의 심경들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다 적고 난 후, 친구에게 링크를 보내주며 올려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친구는 글을 올려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브런치에 올린 글은 다음에서 검색하면 다 뜬다. 이 글은 '소천'을 검색하면 금방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글의 당사자가 부담스러워하면 올리지 않는 것이 맞다.
글은 시간이 지나도 남는다. 특히 인터넷 공간의 글은 몇 년이 흘러도검색만 하면 바로 찾아낼 수 있다.말은 쌍방향 소통이기에 대화하는 즉시 피드백이 온다. 상대방이 하는 말, 표정이나 행동을 살펴보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하지만 글쓰기는 일방향 소통이다. 내가 올린 글을 상대방이 읽은 후에 반응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단어 한 개, 문장 한 줄만 잘못 적어도 나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독자가 그 글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냥 주욱 읽어 내려간다. 하지만 그 글의 당사자라면 한 문장, 한 문장, 유심히 보고 나름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내가 적은 글은 나의 작품이 맞다. 하지만 그 글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것이기도 하다. 소설과 같은 허구의 글이 아닌 이상, 글에 나오는 사람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아니, 신경을 써야만 한다. 상대방이 나의 글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나와는 다른 생각, 다른 마음을 가질 수 있기에.세상에 나와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글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글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