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이런 표현을 쓴다. 선생님이 아이를 바른 자세로 앉혀서 열심히 공부하게 만드는 것을 '잘 잡는다.'라 말한다. 표현이 좀 무섭기도 하다. 사람이 가축이나 짐승도 아닌데 잡다니! 여기서 '잡는다.'는 아마 '각을 잡는다.', '질서를 잡는다.', '분위기를 잡는다.' 정도 표현의 줄임말이 아닐까.
교실에서 아이들이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바른 자세로 앉아 공부하게 하려면 교사는 학생을 좀 엄하게 지도해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활발한 분자운동과 수많은 잡담을 좋아하기에, 그러한 충동을 억제시키려면 담임은 분위기를 잡기 위해 허용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꽉 다문 입, 웃지 않는 표정, 무게감 있는 말투로 아이들을 통제한다. 부드럽고 좋게 말해도 말을 잘 듣는 학생은 손에 꼽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선생님의 포스에 기가 꺾여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물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공부도 하면서, 놀기도 잘하는 반도 있다. 그 반은 담임선생님의 역량이 뛰어나고, 아이들도 담임과의 합이 잘 맞아서 놀 땐 놀고, 공부할 때는 공부하는 반이다. 십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인연이 아닐까. 선생님들 중에는 능력이 탁월하여 즐겁게 공부를 잘 시키는 선생님도 있다. 그러한 선생님은 백 명 중에 한두 명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학급경영과 수업을 잘하여 강의를 다니는 선생님들이 그렇지 않을까. 대부분의 담임은 전반적인 분위기가'엄하거나 부드럽거나' 둘 중 하나이다.
이것은 흡사 밤에 야식과 함께 음주를 하면서도 체중이 늘지 않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체질상 신진대사 능력이 탁월하고 아주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은 가능할 것이다. 백 명 중 한두 명 정도가 그렇게 밤에 먹어도 살이 안 찌고 건강한 체형을 유지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없다. 야식을 먹으면 살이 찌고, 야식을 안 먹어야 살이 안 찐다. 야식과 건강 둘 다 손에 쥘 수는 없다.
학급 분위기가 자유롭고 허용적이면 아이들은 담임을 편하게 생각하고, 담임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쉽다. 그 반 아이들은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편하게 잘 지낸다. 다만 담임이 그런 아이들을 대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학급 분위기가 엄하고 질서가 잡혀 있는 반은 수업 분위기도 좋다. 담임이 의도하는 대로 수업도 잘 진행된다. 하지만 그런 엄한 분위기를 싫어하는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입맛을 다 맞출 수는 없다.
출처: 블로그, 함께하는 묵상,교회,공간
내가 학부모라면 우리 아이가 어떤 담임선생님을 만나길 원할까? 엄하게 질서와 규칙을 강조하여 공부를 힘들게 시키는, 소위 말하는 '잘 잡는 담임'을 원할까? 아이들이 학교에서 편안하게 잘 지내도록 허용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아이들을 잘 못 잡는 담임'을 원할까? 선택지가 이 두 가지뿐이라면 과연 나의 아이가 어떤 담임을 만나서 학교생활하기를 바랄까? 스트레스를 좀 받으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기를 바랄까?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면서 공부를 적게 하더라도 맘 편히 학교생활하기를 바랄까?
예전에는 '우리 애를 때려서라도 공부를 잘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공부를 엄하게 가르치는 선생님을 학부모들은 원했었다. 나의 자녀가 공부를 잘하여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돈을 잘 벌고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요즘은 좀 다르다. 공부는 학원에서 많이 하니까 학교에서는 공부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다가 오기를 바라는 학부모들이 많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을 만나서 놀다가 점심 급식을 먹고, 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으로 간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과연 교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학부모의 요구에 따라 숙제도 적게 내어주고, 학교에서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대충 가르쳐야 하나? 선생님이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다 보면 욕심이 생기고, 아이들은 더 많은 학습지와 문제 풀이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변해가는 학부모의 요구와 학교 현장의 상황 속에서 엄하지 않게, 적당히 공부를 가르치는 교사로 사는 것이 맞을까?
교사 본인의 기본적인 스타일도 사실 크게 작용한다. 기본적인 것을 모르는 아이들을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알 때까지 붙잡고 공부를 시키는 선생님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봐주고, 수업 마치고 남겨서도 공부를 시키는 선생님도 있다. 반면에 수업시간에 가르쳤으니 그 뒤에 학생이 알거나 모르는 것은 본인의 몫이라고 나 몰라라 하는 선생님도 있다. 사실 후자가 더 편하기는 편하다. 시간도 안 빼앗기고 애도 덜 쓰인다.
그날 배운 내용을 잘 모르는 학생을 남겨서 공부를 더 가르치려고 하면 학부모에게 연락해야 한다. 어떤 학부모는 고맙다고 말하고, 어떤 학부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애 학원 가야 하니까 그냥 보내주시면 안 되나요?"
"예.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보낼게요."
그날 배운 것을 몰라 학교에서 더 가르쳐 주려 하나, 학원을 가야 하기에 더 가르칠 수 없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지 않은가. 과연 그 학생은 학원에서 뭘 배울까? 오늘 배운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우는가 보다.
아이들을 엄하게 잘 잡아서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일까? 나쁜 선생님일까? 학부모와 아이들은 어떤 선생님을 원할까? 나는 어떤 스타일의 선생님 모습을 연출해야 할까? 변하는 세상에 발맞추어 나의 교사 스타일을 바꾸어서 살아야 하나? 내 소신껏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은 나의 자기만족인가? 대충 가르치고 그냥 몰라도 지나쳐 버리는 것이 맞나? 그럼 그것은 직무유기가 아닌가?
출처: 블로그, 행복닥터
교직 경력 20년이 다 되어가는 나도 아직 모르겠다. 내가 좋은 선생님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즐겁고 마음 편하게 잘 지내다가 집에 가는 것이 제일 좋을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남겨서라도 그날 배운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하면 안 되는 교육활동인가? 학교는 보육기관이고, 학원이 교육기관인가?
나는 보육 말고 교육을 하고 싶은데, 세상은 나에게 교육 말고 보육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다. 그럼 나는 카멜레온처럼 색을 바꾸어서 보육을 중점적으로 하는 초등교사가 되어야 하나? 아이들을 잘 잡아서 잘 가르치는 선생님 말고,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적당히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하나? 나는 교육자인가, 보육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