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2018년 5월 19일, 외국을 처음 나오면 해야 할 일들이 많다더니 나 역시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거주지 등록, 핸드폰 개통, 통장 개설 등 살기 위한 필수적 요소들을 해결하다 보니 베를린 땅을 밟은 지 2주나 지나서야 공연을 볼 첫 기회가 생겼다. 베를린 필하모니, 콘체르트하우스, 슈타츠오퍼, 도이체오퍼, 코미셰오퍼 등 많은 공연장 중 당시 지내던 곳과 가장 가까운 콘체르트하우스를 무작정 찾아갔다. 매표소로 가서 제일 저렴한 티켓을 구매했다.
내가 구매한 좌석은 무대가 반쯤 가려진 '시야 장애석'이었다. 가격은 16유로(한화로 약 2만 원). 한국에서 공연장 일을 했던 나에겐 다소 놀라운 가격이었다. 전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는다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한화로 2만 원 남짓한 가격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탄을 연발하며 공연을 기다렸었다.
콘체르트하우스의 역사를 잠깐 이야기하자면, 콘체르트하우스는 원래 극장이었다. 처음 개관할 당시에는 Französisches Komödienhaus (프랑스 코미디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운영이 되었었고 이후에 Nationaltheater (국립극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시기가 1800년 초, 중반이었고 당연히 이 시대에 살았던 작곡가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공연을 선보였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파가니니와 리스트의 리사이틀, 바그너의 오페라 등 당시의 많은 작곡가, 연주가들이 이곳을 거쳤다. 당대뿐 아니라 현재도 최고의 극장이라 자부할만하다.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1952년 BSO (Berliner Sinfonie Orchester)로 처음 활동을 시작했었다.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은 1990년대에 불려지기 시작했다. 콘체르트하우스에서는 1년에 100회 이상의 공연을 진행하고 있고 베를린뿐만 아니라 독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1년 동안 베를린에 지내면서 아마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이 콘체르트하우스일 것이다. 그럼에도 저 샹들리에와 파이프 오르간은 매번 감탄을 자아낸다. 이 공간 안에 있으면 1800년대 그때 당시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보수와 리모델링을 거쳐왔지만 독일은 이런 공연장뿐 아니라 모든 건축물에 현시대에 맞는 어떤 변화를 주기보다 원래의 것을 지키려고 노력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이건 정말 '독일스럽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이 날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루이 랑그레(Louis Langrée)의 지휘 아래 드뷔시와 쇤베르크의 곡을 연주했다. 그중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은 나의 기억에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목신의 오후 전주곡'은 음악사에서의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이다. '인상주의'는 미술사에서도 음악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시기로 분류되며 대표적인 화가는 '마네', '모네', 작곡가로는 '드뷔시', '라벨'이 있다.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어느 여름날의 오후, 시칠리아 해변의 숲에서 잠에 든 목신.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할 수 없는 몽롱한 상태로 호수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님프를 발견한다. 목신은 그녀들에게 달려가 사랑을 표하자마자 꿈에서 깨버린다. 멍하니 꿈을 되뇌던 목신은 다시 잠에 든다.
목신의 꿈, 그 시작은 플루티스트 김유빈의 손에서 시작됐다. 김유빈은 2014년 스위스 제네바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수상하고 2016년 콘체르트하우스 최연소 수석 연주자로 발탁되어 실력을 인정받은, 한국에서도 이미 유명한 연주자이다. 플루트의 몽환적인 선율, 이 선율이 어떻게 연주되느냐에 따라 이 '목신의 오후 전주곡'의 전체가 달라진다. 이 선율 안에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전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관객 모두가 그의 선율을 숨 죽여 기다렸다. 그 어떠한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 관객들의 기대에 부흥하듯 그의 연주는 감탄이었다. 자신의 소리로 공연장을 가득 채웠으며 매력적이고 깊은 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관객 모두가 그의 소리에 매료되었다. 그의 선율은 '몽환' 그 자체였다. 김유빈의 손에서 시작된 선율, 지휘자의 해석, 또한 그에 맞춰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그 모든 것들이 관객들에게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를 온전히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한국에서 '연륜'이 묻어나는 연주를 대부분 들어왔다. 하지만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그들'만의 '색깔'이 있었다. 서툰 표현으로나마 이야기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흐릿한 안개'의 느낌이라면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흐릿하지만 또렷한 보라색 안개 같았다.'라고 말하고 싶다. 녹화나 녹음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보답했다. 지휘자는 본인이 받은 꽃다발을 김유빈에게 전하며 성공적인 연주에 대한 감사를 표했고 관객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플루티스트 김유빈에게 더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 플루티스트 김유빈 Youtube 채널 : https://www.youtube.com/user/kub7665
연주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많은 생각에 잠겼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공연장에서 '일'을 했을 뿐 직접 공연을 보러 다닌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내가 일하는 시간이 곧 공연시간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변명일 뿐, 찾아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혹은 공연을 보는 것 자체가 업무의 연장선 같이 느껴져 찾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은 부끄럽지만 나는 전공자로서도, 업무자로서도 클래식에 관하여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항상 배움의 필요성을 느끼며 스스로 발전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이 곳 독일, 베를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