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은 정확히 365일로 나눌 수 없다.
그래서 4년에 한 번, 윤년을 만든다.
이 작은 오차는 단순한 달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가 본래 정확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그 안에서 인간은 완전을 꿈꾼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해지려 해도, 그 시도는 언제나 불완전한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어쩌면 불가능이란, 애초부터 근본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이런 과정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불완전한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인간은 기억하고 기록한다.
우리는 기념일을 정하고, 매년 같은 날을 반복해 축하한다.
사실 1년이라는 주기 자체가 정확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달력이라는 기록을 기준 삼아 약속된 날을 기념일로 받아들인다.
정확한 시간을 계산할 수 없다는 불완전에, 우리는 기억과 기록으로 완전의 의미를 대신 만든다.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완전의 의미는 그렇게 불가능처럼 유지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주 자체가 본래 불완전한 구조라면, 그 불완전을 인식하는 인간은 오히려 완전한 존재에 가까운 것 아닐까.
하지만 인간이 여전히 경외를 느끼는 대상이 자연과 우주 자체라는 점에서, 그 생각은 다시 잠시 접어 둔다.
아래 사진은 나 혼자 둔 오목이다. 흑이 이겼다. 그러면 내가 이긴 걸까?
세상이 신이 혼자 두는 바둑이라면, 그리고 우리는 그 바둑알 한 개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집착하는 승리는 신에게는 어떤 의미도 아닐 수 있는 이 세상.
그러면 이제 우리는 승부의 의미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쉽게 깨닫는다.
결국 모든 의미는 과정에 있을 수밖에 없는 걸.
사진 속 오목을 혼자 둔 나는 순간 백이었고, 순간 흑이었다.
그리고 흑이 이겼지만 그렇다고 백이 졌다고 좌절하지 않는다.
매 공격과 방어를 하며 혼자 아슬아슬했던 그 순간순간.
그리고 내가 흑이었는지 백이었는지 상관없이, 매번 바둑알을 놓는 데 집중해 한 수 한 수 두어 간 기억.
먼저 두면 유리할 수도 있고, 바둑판 끝에 닿으면 더 나갈 수 없게 되고, 눈금 위에 정확하게 두지 않으면 애매해지는 등 불완전한 조건은 뒤로하고, 5개를 먼저 일렬로 놓는 사람이 이긴다는 단 하나의 룰 아래 완전한 승리를 추구한다.
목적은 이기고 지는 그 끝이 아니라, 이기든 지든 그 과정에 있다.
그리고 바로 그걸 깨달아야 불완전을 인정하고, 완전을 추구하게 되는데,
역시나 얇고 아슬아슬한 이론과 생각들 사이에서
그렇게 과정과 결과를 삶의 기준에서 확실히 정하지 못한다.
여전히 좋은 것, 갖게 되는 것, 얻는 것 등 다시 또 결과만 좋다면 금방 스스로에게 유리하게 생각해 버리게 된다.
사는 것 자체가 과정인데,
자꾸 목적을 결과로 잡는다.
불완전이 불러오는 완전할 수 없는 생각.
다시, 목표는 결과가 아니다.
목표는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다.
달성은 결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과정으로 판단된다.
이렇듯 불완전을 인정할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완전을 추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