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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Apr 14. 2016

"너는 개나 키워, 네 말 잘 듣는.."

마음에도 흉터가 있어요 - 극복되지 않고 반복되는 상처, 원인을 찾아요


저는 같이 일하는 동료와 조금 특별한 관계입니다.

성별은 남자이고 나이도 동갑이지만 친구로 만난것이 아니라 사제간으로 만난 사이입니다.

제가 공부를 시작했을때 제 상사는 저의 선생님이었고 이후 선생님이 직장을 옮기면서 저에게 같이 일하기를 권했고, 그렇게 그와 전 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서먹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서포트하기 좋았지만 상사이자 스승인 동갑내기 남사친이 늘 편하기만 한건 아니었습니다. 이 친구 딴에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제가 안타까워 종종 한 육아조언이 제 마음에 몇번 날카로운 상처를 낸 일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제 겨우 6개월에 접어든 애기 아빠의 육아훈수는 도저히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수위를 넘어가고 있었고, 제게는 이 친구가 직장동료나 친구라는 위치보다 늘 스승이라는 위치가 더 커서 섣부르게 내 기분을 전달하지 못하고 웃어넘기는 날이 길어지고 있었지요. 그러다보니 그 친구는 제 기분이 어떤지 몰랐을테고, 저는 제 인내심의 수위에 위험신호가 들어오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녀석이 어느날 친구랑 시내에 나갔다 오더니 친구가 당구장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고 합니다. 가보고 싶었지만 그건 아닌거 같아 참았다고 말하는 아들을 보며 아직은 네가 당구장에 출입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하면서 왜 그런지를 이야기했었죠. 그리고 동갑내기 아들을 키우는 언니랑 그 이야기를 회사에서 나누며 사내녀석들이 이렇게 크는가보다 라고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때 이야기를 듣던 이 친구는 말했습니다.

"사내 아이들은 다 해보고 커야지, 왜 애를 병신을 만들어? 그렇게 키우려거든 애 키우지말고 차라리 개를 키워 말 잘듣는 개를...."

머릿속에 싸이렌이 울고 삐뽀삐뽀 경보음이 울더니 결국 제 맘속의 화재 경보기가 울리고 말았습니다. 일전에도 이 친구는 부모자격을 운운하며 제게 육아훈수를 둔 적이 있었기에 이 친구의 말이 제 마음에 불을 당기는 데에는 단 1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심장이 거세게 뛰고, 손이 덜덜 떨리고, 호흡이 가빠지며 공황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겪지 않은 시간 장담하는거 아니야. 나만큼은 애를 키우고 내 아이 나이만큼의 충고를 하도록 해."

하지만 그날 따라 그 친구는 제 말을 못알아들은건지 제가 얼마만큼 화가 났는지 안보였던 건지 니 사고는 시대착오적이라는둥 넌 애를 키우면 안될 사람이라는 둥 계속 절 자극했고 결국 저희는 사무실에서 언성을 올리며 다투고 말았습니다. 과호흡이 제어가 안되서 전 결국 약을 먹어야 했고, 집에 와서도 그 분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화는 그 친구가 미안하다고 나는 이런저런 마음에서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노라고 긴 설명을 하고서야 겨우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유난히도 "부모자격"이 거론되는 이야기를 견뎌하지 못하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우리 큰놈의 사춘기가 초등학생에 어울리지 않는 과도기를 길게 만들었고, 거기에 큰놈이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면서 무수히 쏟아졌던 비난의 시선과 아이 할머니에게 들은 일명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도 엄마탓"인 힐난이 제 마음에 내 탓이라는 자책과 내 탓이 아니라는 억울함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아마 처음엔 저도 웃어 넘기고 참고 또 저를 다독였을테죠. 그런 날이 반복되면서 제 마음의 균형점은 깨졌을 겁니다. 내 탓이 아닌 억울함, 그 억울함이 쌓여 아이가 미워지는 내 자신에 대한 자책은 상처 난 마음을 더 헤집어 놓았고 잊은 듯 시간은 흘러갔어도 잊혀지진 못해 아마 그 흉터가 고스란히 몸과 마음에 세팅되어 있었을테지요. 그러다 누군가가 그 아픈 흉터를 건드리면 세팅되어 있던 프로그램이 돌아가면서 철갑을 두르고 가시를 곤두세웁니다. 난 다시 아프기 싫노라고, 그건 내 탓이 아니었노라고 파르라니 핏대를 올리며 악을 쓰는 마음은 "공황발작"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독 그 이야기만은 견디지 못하고 어떤 상황만큼은 이겨낼수 없는 상처가 있다면 그건 가장 근원에 어떤 최초의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근본적인 원인이 치료되지 않으니 자꾸 상처가 재발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걸 모른척 하다보면 더 작은 일에서, 더 사소한 것에서 치료되지 못한 마음이 악다구니를 칩니다. 땅도 다지지 못하고 기둥을 올려 지은 집처럼 마음의 균형이 자꾸 깨어지니까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하며 캔디처럼 참다가는 종내 거울속의 나하고 이야기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몰라요. 참다 죽는다고 화병이 괜히 생기겠어요?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대다수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알지 못합니다. 내가 얼마나 아파하는지 그말에 얼마나 피 흘리는지는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죠. 거기다 대놓고 내 마음을 알아달라 해 봤자 그들에게 그 소리가 들릴 가능성은 너무 희박하고 알아주지 않는 그 무심함에 우린 또 상처를 받습니다.

자꾸만 재발하는 상처는 내가 돌보아야 해요. 내가 왜 아픈지 어디서 상처가 덧난건지는 사실 본인이 제일 잘 알아요. 그리고 그 소리는 내가 나한테 집중하고 나를 안아주어야 들려요. 견디기 힘들때 억지로 견디려고 악쓰지 말고, 잠시 앉아 쉬어도 되요.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다 포기해도 괜찮아요, 어떤 일 하나가 잘못됐다고 내가 나한테 실패하거나 실망할 필요 없어요. 그러니 자꾸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내 마음에 집중해주세요.

그리고 반복적으로 나에게 상처를 사람과는 되도록 거리를 두는 것도 좋아요.

굳이 나랑 맞지 않는 사람까지 끌어안고 가려고 하지 마세요. 나와 잘 맞고 내 마음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되요. 세상 모두가 날 좋아할 수 없고 내가 세상 모두를 포용할 수도 없어요.

나룻배가 고맙다고 나룻배를 이고 산을 오를순 없죠. 나룻배는 나루터에 두어야 해요. 모든 것들을 내 탓인양 싸안고 날 아프게 하는 것들까지 안으려다가 결국 나를 망가뜨리는 일은 없도록 해야해요.

잊지마세요...

세상 무엇보다 당신은 귀하고도 귀한 사람, 어느 무엇도 당신을 아프게 해도 되는건 없어요. 좋은게 좋은건 없어요. 내가 좋아야 좋은거예요. 그러니 아파하는 우리 마음, 우리가 사랑해주고 우리가 약발라 주고 , 덧나지 않도록 우리가 아껴주도록 해요. 너무나 상투적이지만 너무나 어렵고, 너무나 절실한 일이예요.

그 마음에 고운 햇살처럼 따뜻한 온기를 저도 덧대어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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