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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May 25. 2016

엄마는 왜 돈을 조금밖에 못벌어?

커리어보다도 중요했던 건 "너희"들이었어..

"엄마! 엄마가 하는 일은, 아무나 못하는 거라며. 어렵고 공부도 많이 해야한다며.  근데 왜 돈은 쪼금 벌어?"

열두살짜리 딸이 내게 한 말이다. 순간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중소기업 "경리"다. 경리에 대한 이미지가 썩 사회적으로 좋진 않아서, 회사에서 커피타고 전화받고 영수증정리나 하며 잡일이나 거드는 사람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사실 내가 처음 경리를 시작할때 아예 그런 일부터 시작했다면 이 일을 10년 넘게 해오는 불상사는 없었을텐데....첫직장에 들어가 현금시제 30만원도 못맞춰서 울던 시절... 전무이사는 어느날 갑자기 내게 자체기장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학교다닐때 겨우 알아듣던 어설픈 계정과목들, 낯선 전표작성, 입력, 프로그램을 다루는 법부터.. 우리 나라는 세금신고도 왜이렇게 많은지....월급주면 원천신고를 해야하고, 직원들이 퇴사하면 4대보험 상실, 입사하면 취득, 그밖에 보수총액 신고 등등 이건 뭐 일년 내내 세금신고만 하다가 날이 가고 달이 갈거 같았다.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회계는 인사 총무팀 업무까지 맡으며 배는 커졌고, 세무 업무가 더해지며 바야흐로 멘붕의 왕국에 살게 되었다.

그런데...그 짓을 정확히 13년째 하고 있다. 너무 너무 싫었는데 그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제는 그걸로 노후 보험을 만들어 볼거라고 경영학 공부를 하고 있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며 나아진 나를 생각했었다.

쌓인 커리어가 티비에 나오는 멋진 커리어 우먼처럼 날 만들어줄거라는 환상은 입사한지 얼마 안돼 깨졌다.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직업이라는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겨우 차변대변 계정과목 그리고 어설픈 제무재표나 학교에서 보고 들어온 나로서는 이 조직에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결코 살아남을수 없으리라는 위기가 닥쳐왔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벗어날수 없었던 것은 정작 육아였다. 내가 결코 승진을 하지 못할거라는것을 직감하게 만든건 부족한 내 커리어가 아니라 야근을 할수 없는 워킹맘이라는 조건이었다. 부른 배를 해서도 남자직원들과 동등하게 일하려고 애썼다. 심지어 결혼식을 앞두고 밀어닥친 세무조사때문에 난 결혼식 이틀전까지 내 웨딩드레스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그저 시어머니가 골라놓은 드레스를 바쁘게 가봉만 하고 돌아왔을뿐이었다.



승진은 내 몫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도 나는 그저 "경리"일 뿐이었다. 재무제표를 능수능란하게 보게 되었을때도, 눈감고도 총계정 원장의 오류를 찾아낼때도, 급여 그까짓거 라는 말이 나올때도 난 경리였다.  그 뒤에 직함이 달려도 조직이 나를 대우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고 급여폭도 남자사원들에 비하면 턱도 없이 낮았다.

아이를 키우며 그 갭은 더 심해졌다. 경력이 쌓이니 급여를 더 주겠다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아이를 키우며 나는 급여나 조건을 볼수 없었다. 그것보다는 어린이집이 쉬는 날과 내가 함께 쉴수 있는지가 중요했고, 어린이집이 마치는 시간과 나의 퇴근시간이 맞을것인가가 중요했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달라지리라. 내 커리어에 맞는 일을 할수 있으리라...하지만 아이는 크면 클수록 손이 더 간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차라리 유치원에 다닐때는 나은 편이었다. 그땐 종일반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종일 유치원이 아이를 돌보아 주었으니까...학교에 보내니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침나절만 지나면 아이가 돌아왔다. 준비물이며 과제는 죄다 엄마 몫이었다. 워킹맘에 대한 배려따윈 없는지 무슨 재량휴일은 그렇게도 많은가.... 주5일 수업은 누굴 위한 것인가... 한달간의 방학은 악몽이었다. 결국 난 일을 잠시 쉬어야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을 데리고 일반 회사를 다니며 근무를 한다는건 불가능했다. 나처럼 양육을 도와줄 사람이 전혀 없는 경우는 말이다.


그러다 두 아이가 사춘기가 되었다. 그래도 남자아이가 클땐 덜 했는데 딸아이가 크니 불안이 더 커졌다. 해가 일찍 지는 겨울에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야무진 녀석이라지만 그래봐야 열두살 열네살 어린아이들일 뿐이었다. 직장을 출퇴근이 일정하며 급여는 좀 작더라도 휴일이 보장되는 주5일제 직장을 다니고 있다. 급여는 여전히 작다. 야근을 할수 없어 집에 일을 싸들고 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회사는 내가 일을 자꾸 해내니 할만 하구나 싶은지 일을 얹어줄뿐 어쩜 내가 계산하는 내 급여는 1원한푼 변동이 없다.

모르면 모를까 급여를 산정하는 사람은 사내의 모든 사람들 급여의 인상폭을 알고 있다.

이 직업은 그래서 더 서글프다.

상반기의 전쟁같은 신고철이 지나고 있다. 법인과 개인이 함께 있는 우리 회사는 결산과 종합소득세를 다 해야한다. 사이사이 부가가치세 신고에 급여와 원천신고, 그리고 보수총액 신고까지 해놓고 나면 매월 돌아오는 급여와 월 마감, 외상대 산정, 그밖에 행정업무들이 수두룩하다.



"너희랑 같이 쉬어야 하니까, 너희가 조금 더 크면 엄마도 엄마가 원하는 일을 할거야"

힘없이 말한 내 말을 아이는 알아들었을까?

승진을 하면 기쁠줄 알았다.. 급여가 오르면 성취감이 있을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승진을 하면 그만큼 업무는 늘어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커졌다. 급여가 오르면 조직은 돈을 더 주는 만큼 나의 노동력을 원한다.

나에겐 나의 커리어보다 "아이들"이 중요했다.

나는 직장인이기 전에 "엄마"여야 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지금 쓸쓸하게 하고 있다. 곧 나는 프리랜서가 된다. 그것은 내가 몸 재게 놀려 내 밥그릇을 챙기지 않으면 "백수"가 된다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큰 용기를 낸 나의 마음은 조금 불안하다.

아이는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당장의 수익을 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엄마로 생각할까?

꿈을 향해 도전하는 멋진 엄마로 생각해줄까?

아이들의 생각이 어떻든 나는 내 꿈을 향해 도전할 것이다. 그 안에 이녀석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든 늘 이녀석들을 사랑할 "내"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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