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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May 25. 2016

한번은 말하고팠던 상처

미안해, 그때 온전히 네 편이지 못해서 - 학교폭력과 교사의 역할

자식 맡긴 죄인이라고, 농담처럼 학교를 보낸 엄마들은 말한다.

가슴에만 담아두긴 너무나 아팠던 큰아이의 6년...초등학교생활....차마 이 글에도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많지만 생명이 위험할만큼 지독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아이와, 미흡한 대처로 아이를 더 아프게 한 엄마의 이야기를 여기서나마 풀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나같은 시행착오가 적어지길 바래본다.

어느밤 문득 생각나 펼친 앨범에는 스물네살 어린 아가씨의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엄마가 된 불안함과 아이를 지켜야한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흰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 지리도 몰라서 혼자 최대한 회사에서 머~~얼리 떨어진 병원을 찾아 간 불친절한 여의사에게 "지울거면 빨리 지우는게..." 블라블라 떠드는 소리를 차마 다 듣지 못하고 "낳을거예요!!!! 낳을거라구요!! 그러니 내 아이에게 그런 말 마세요!"라고 절규했던 어린 아가씨는 어느새 서른 일곱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다.

아이를 키운다는건 마치 빈독에 물을 붓는것과 같았다. 아이를 낳고 완전히 바껴버린 내 생활은 결코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갓난 아기 시절만 넘기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차라리 말못하던 그 시절이 수월하다는걸...선배 맘들이 아이는 클수록 힘 들다는 말이 무엇인지 요즘 나는 뼈아프게 겪어내는 중이다. 친구들중엔 젤 빠르다시피한 선배 맘이라서 어디다 말할 곳도 없었다.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긴 했지만 공감해주진 못했다. 사람이란게 원래 자기가 겪거나 경험한 일이 아닌 일에 대한 공감이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큰아이를 입학시키고 난 공교육에 대한 모든 신뢰가 무너졌다. 무슨 일인지 살면서 참 인복은 없구나 했던 나였다. 사주팔자에 인복만 빠졌는지 끊임없이 사람에게 다치던 내가 나쁜 선택을 할까 신도 걱정이 되셨던지 내게 넘치도록 주신 복이 바로 "선생복"이었다. 국민학교 6년,(국민학교세대라니;;;;) 중고등학교 6년 심지어 대학까지 내 옆엔 어떤 방황을 해도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스승이 계셨다. 부모에게도 할수 없는 말을 선생님에게는 할수 있었다. 누군가 나를 온전히 믿으니 나는 삐뚤어질수가 없었다. 믿음을 배신한다는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헌데 이 자식은 사주팔자에 "선생복"만 빠진 놈 같았다. 입학시킨지 3일만에 손바닥을 열대 맞고 왔다. 그 작은 손에 죽죽 그인 매자국이며 눈가에 얼룩진 눈물자국이 마음을 시큰하게 했다. 선생님께 연락을 받고 아이가 맞은 이유를 알았다. 유치원은 화장실이 남,여 구분이 없었다. 그런데 학교는 그렇지가 않았다. 소변이 급한 아이가 다급하게 들어간 곳이 여자 화장실이었고, 놀란 아이가 돌아서 나오자 그걸 보신 선생님은 앞뒤도 없이 아이를 친구들 앞으로 끌고가 손바닥을 열대 때렸다. 억울한 마음과 무안함이 뒤섞였을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생각하는 의자에 앉혀두었고, 계속 울면 엄마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너 자꾸 울면 호랑이가 물어간다~ 이런 으름장이셨겠지만 억울했던 아이는 미끼를 덥썩 물었다. 엄마 불러주세요.. 결국 아이는 더 혼이 났다. 그게 교사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서곡이 될줄 그땐 나도 몰랐고 저도 몰랐을테고, 선생님도 모르셨을거다. 난 유치원과 학교의 차이점을 설명하며 선생님께 주의를 주겠다고 이야기 했고, 아이의 입장을 설명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반응은 의외였다.

"어머니께서 이렇게 아이를 어리게만 보시니 원...."

8살.....입학한지 3일된 만 6세의 아이를 어리게 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하나....내 아이가 화장실에 가서 그 옛날 남자아이들의 흔한 장난이었지만 요즘은 절대 해선 안된다던 여자아이 치마자락이라도 들추었던가, 아니면 여학생을 추행이라도 했다는 건가....왜 사내아이는 잠재된 성범죄자가 되어야 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 불쾌한 시선과 편견에 지지 않으리라 했던 내 결심은 한학기만에 꺾였다. 교사는 고의적으로 아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의도가 보이는 비아냥거림이 아이를 버겁게 했다. 파마를 하고 학교를 가서 한껏 들뜬 8살에게 선생님은 "머리만 예쁘면 뭐하냐, 공부를 잘하고 말을 잘들어야지" 라고 말해 기어코 울려야 하루를 마무리하셨다. 내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난 그렇게 경멸하고 이를 갈며 싫어하던 "촌지"의 물결에 발을 담궈야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겨우 10만원 남짓이었다. 그 돈이 아이에게 평화를 주었으니 난 그걸로 족하다. 아이앞에 내 교육관, 정의 이딴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2학년때 아이는 놀이터에서 같은 반 급우에게 맞아 전치 6주의 상흔을 입었다. 집에 들어서는 아이를 보고 내가 살떨리게 느꼈던 그 공포를 난 어제 일처럼 똑똑하게 기억한다.
목부터 얼굴까지 속살이 다 드러나게 죽죽 그어진 손톱자국마다 새빨간 피가 맺혀있었다. 온 목과 얼굴은 턱밑까지 피멍과 손톱자국으로 만신창이였고, 성급히 옷을 벗기니 몸은 더 참담했다. 옷은 미처 털어내지 못한 신발자국이 그대로 남았고, 흉부까지 멍이 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심한 곳은 눈이었는데 눈의 흰자위 부분에까지 멍이 차오르고 있었다. 누가...대체 누가 겨우 9살난 아이를 이렇게 때릴수 있을까? 난 앞뒤 가릴거 없이 아이를 안고 뛰었다. 병원에서는 안구까지 타박상을 입었고 자칫했으면 시신경을 다칠수도 있었다는 말을 전했다. 큰 아이들이 때렸을 수도 있으니 상해 진단서를 첨부하는게 좋겠다고 하셨고, 그 말을 따랐다.

허나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아이를 때린 건 같은 반 급우였다. 어떻게 9살이 9살을 때려 이런 일을 만들수 있을까.....천번 만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약을 바를때마다 따가움과 쓰림에 아이는 진저리를 치는데 내가 학교에 그 이야기를 했을때 선생님의 반응은 의외였다.

"걔가 얌전해서 그럴애가 아닌데....이유없이 사람을 때릴 아이가 아니거든요"

그때 차라리 내가 이성을 잃었다면....나도 정말 무식하게 학교를 뒤짚어 엎을수 있었다면 내 아이가 그렇게 억울하진 않았을텐데...빌어먹을....빌어먹을...왜 난 교사에게 두 아이의 화해를 부탁했을까...억울한 내 아이 어쩌라고 난 교사에게 이 어이없는 상황을 힘주어 항변하지 못했을까....사람이 사람을 때릴수 있는 이유가 어딨냐고 왜 악을 쓰지 못했을까....아이는 얼마나 억울했을까.......그 부모에게조차 사과를 받지 못하고....점점 우리 아이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혀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이른 사춘기를 맞이했다. 2학년때 담임의 무심한 처사는 3학년때 참사를 낳았다. 우리 아이를 무참히 때린 녀석과 같은 반을 만들어버린 담임은 반을 떨어뜨려달란 내 말을 뭘로 들은건지, 이 자식의 상습폭행은 세차례가 더 이어졌고, 어느날 겨울 잠바 뒤쪽이 무언가에 찍혀 찢긴 자국을 보고 아이 목을 보니 단단히 부어 올라 내가 다그치자 아이가 말했다. 그녀석이 샤프로 찔렀다고... 내가 이 개자식을 죽여버리고 말리라....차라리 이 개자식을 죽이고 내가 그자리에서 칼을 물고 죽더라도 내 오늘 이자식을 찢어죽이리라 참고 참았던 내 분노가 폭팔했다. 이 아이 집으로 가서야 난 알수 있었다. 이 아이의 반복된 폭력이 어떤건지.... 항변을 하러 간 엄마앞에 나타난건 아이가 아니라 아빠였다. 트렁크 팬티에 런닝 차림으로 현관에 짝다리를 짚고 선 아빠라....난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를 보고싶다고 말했다. 그 아빠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사내애들이 그럴수도 있지 어디 여자가 이밤에 남의집을 찾아오냐고 발악했다. 그리고 자기 아이를 가해자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 더는 참을수 없는 나는 아이를 향해 말했다.

"내일 학교에 가거든, 벽돌을 하나 집어들어. 저 개자식 머리를 후려치는거야. 한번 말고 저 자식도 옷이 찢어지고 머리가 부어오르도록. 그리고 아버님도 그때 저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사내 녀석들 그럴수도 있으니까"

아이들 보는 앞에서 어른들 싸움을 보인게 떳떳하진 않았지만 더이상 아이를 때리지 않았다. 난 그래서 이 선택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일찍 강경하게 대처하지 못한게 그저 후회스러울 뿐이다.


내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사상 최악의 담임을 만난건 5학년때였다. 원래도 평판이 좋은 선생은 아니었다. 아이가 어느날 전교 어린이 부회장에 입후보 했다고 했다. 대체 왜? 반장도 한번 안해본 놈이 의기양양하게 포스터 사진을 찍고 사전선거운동을 했다. 학교에 적응도 못하고 말썽이 잦아지던 차여서 자리가 사람만든다고 이런 기회가 오히려 좋은 터닝포인트가 되겠구나도 싶었다. 늘 임원을 하는 동생을 보며 느낀 열등감도 씻어지길 바랬다. 아이는 단독후보로 당선이 되었다. 무투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문의 영광이네, 우리집에 인재가 났네, 장원급제 하고 금의환향한 이몽룡마냥 환대하길 아끼지 않았다. 샐쭉 여동생이 토라졌지만 이 순간만큼은 승리감에 도취된 아이가 그 기분을 만끽하길 바랬다.

학기초 상담을 갔다. 선생님께서 아이의 학교생활을 일러주실줄 알고 갔는데 아이를 위해 자신이 아이를 단독후보로 만들었으며 그것이 아이에게 어떤 성취감을 줄것인지, 자기가 아이에게 얼마나 애정을 쏟고 있는지를 어필하셨다. 남선생님이 처음이라 어렵기도 어려운데, 본인의 공치사가 이어지니 이 자리가 부담스러웠다. 사들고온 음료수 상자가 부끄러웠다. 선생님께서 나오려는 내게 한마디를 하셨다. "언제 현이 아버님께 소주나 한잔 하자고 전해주세요" 그저 인사치례려니 하고 "예, 선생님"하며 교실을 나섰다.

스승의 날도 소풍도 반에 반장부반장 어머니들이 있으니 전교회장단은 딱히 할일이 없다. 학교의 공식적인 큰 행사가 아니라면 나설일도 그다지 많지 않다. 더욱이 학기중에 개인적인 선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었다. 아이와 선생님이 아무 관계가 아닌 학기말에 학년을 마치면서 드리는 선물은 감사의 선물이 되지만, 학기중에 주는 선물은 그야말로 내 아이 잘봐주세요 하는 "촌지"가 된다. 주는 나도 받는 교사도 부담이다. 그저 상담갈때 음료수 정도 사가는게 다였다. 그런지라 이번 스승의 날도 그렇게 지나갔다. 그렇게 1학기가 지나고 아이의 임기가 끝났다. 속이 다 시원해지는 순간이었다. 두 아이가 임원직을 가지니 워킹맘은 정말 힘들었다.

2학기 상담을 갔다. 그래도 내딴엔 신경써서 홍삼드링크를 들고 갔는데 선생님이 받아들며 말했다.

"이런거 안사오셔도 됩니다"

하긴 남자선생님들 음료도 처치 곤란이겠구나 싶었다. 나는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정말 빈손으로 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건은 얼마 안있다 벌어졌다. 학교에서 급히 전화가 걸려왔다. 워킹맘인걸 알면서 당장 학교로 들어오라고 했을땐 대체 얼마나 다급한 일일까? 급한 마음에 부랴부랴 학교로 달려갔을때 내가 들은 이야기는 청천벽락과 같았다. 아이가 일방적으로 반 친구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이에 따라 징계 위원회가 소집될 걸 겨우 선생님이 무마를 했다고 하셨다. 아이가 공격성이 두드러진게 4학년 후반부여서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일방적 폭력이라는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먼저 선빵(?)을 날릴만한 두둑한 배짱이 없다는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다급한 마음에 선생님이 그래도 무마를 하셨다니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와 죄송함을 표했다. 집에 돌아와 들은 이야기는 선생님이 말해준 이야기와 너무나도 달랐다.

뒤에 앉은 아이가(이 아이는 부반장이었다) 선생님이 안계실때 우리 아이가 다른아이와 이야기를 하자 시끄럽다며 조용히 하지 않는다고 꽝꽝 언 생수병으로 뒤통수를 내리쳤다. 실제로 아이 머리엔 어른 주먹만한 혹이 있었고, 두 녀석이 뒤엉켜 싸우는 통에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런.데!!!!!!!!!!

이 선생이 아무런 이야기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 애들이 다 보는 앞에서 우리 아이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올려 복도 벽에 밀쳤다고 한다.(반 아이들이 다보고 내게 해준 이야기다) 참고로 우리 애 담임은 유도를 전공한 체육선생이다. 키는 180이 넘는다. 그런 장정이 열두살짜리를 번쩍 들어올렸을때 아이가 느낀 공포와 수치는 어땠을까....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난 3일을 물한모금 못먹고 앓아누워 머리를 싸맸다. 다행이 아이는 금방 평정을 되찾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니놈 보는 앞에서 니새끼 한번 해보자!! 할수 없는 현실이 날 미쳐날뛰게 했다. 공연히 애꿎은 우리 애만 쥐잡듯이 잡을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난 평정심을 되찾고서야 이 선생이 내게 원했던게 무엇인지 알수 있었다.

3월 상담부터 선생님은 끊임없이 내게 원하는걸 이야기 했고, 난 알아듣지 못했을뿐.

"아버님과 식사한번"

"아이를 제가 단독후보로 당선시키고, 아이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어머니 이런건 가져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눈치없는 융통성없는 엄마덕에 아이는 얼마나 억울하고 힘겨웠을까? 난 두말도 하지 않고 달려가 선생님께 드릴 선물과 "촌지 봉투"를 준비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아이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고 아이의 편에 서주었다. 빌어먹을 이럴거면 내가 3월에 거하게 상납해드리고 아이에게 강같은 평화가 깃든 1년을 주었을것이다. 대놓고 말을 하라고!!!!!!!


아이는 지독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였고, 그 폭력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다시 누군가에게 그 분노를 표출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공교육의 선생답지 못함이 아이에게는 교사에 대한 신뢰가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했고, 그걸 용납하기엔 엄마가 너무 무지하고 융통성이 없고 어리석었다. 그래도 엄마가 학교다닐때 만난 "선생님"이 계실거라 믿었던 무지함이 아이를 더 상처받게 만들었다.

이제서야 말해주고 싶다.

미안해, 온전히 네 편이지 못해서.... 그 와중에도 나는 무식한 엄마가 아니야. 함부로 학교에 가서 언성을 올릴수는 없어. 상담기관을 알아보고 애꿎은 너를 문제아 취급한건 선생이 아니라 나였어. 차라리 무식하게 니까짓게 뭔데 내 아이에게 이따위로 하느냐 따졌으면 네가 억울하고 분하진 않았을텐데......미안해 아가......

걱정마, 이제 정말 오로지 네 편이 될께. 일의 진실은 우선 너를 살핀 다음 따질께. 정말이지 다시는 너를 뒤로 미루어 놓지 않을께.....아가 그땐 정말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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