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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May 30. 2016

HAPPY Birthday to me~!

태어나길 잘했어~ 태어나줘서 고마워~


음력생일은 엄마 생일 3일뒤라서 잘 잊혀졌고, 양력생일은 현충일이라 대놓고 놀긴 뭐한 날이었다. 생일날 국가가 틀어주는 싸이렌을 들어야 하다니.. 장점이라면 현충일이라는 특수함 때문에 사람들이 잘 잊지 않는다는 것 정도였다. 음력이 익숙치 않던 학생때는 친구들과 양력생일을 챙겼지만 엄마도 그랬고, 시집을 와서도 어른들은 굳건히 음력 생일을 고수하신다.

본의 아니게 음력 양력 생일을 다 챙겨먹게 되었다.

어제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목소리가 듣고싶은 것도 있었지만 종종 엄마 생일 3일뒤인 내 생일을 까먹는 엄마를 떠보고 싶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내 목소리를 들은 엄마는 얘, 내일 니 생일 아니니? 하길래... 멋적은 마음에 응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얄팍한 수를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이노무 가시나, 내가 니 생일 아나 모르나 볼라꼬 전화한거 다 안다!!"

"아니그등!! 그냥 엄마 목소리 들을라고 한거거등"

엄마가 내 생일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꼭 생일 파티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가슴이 몽글몽글해진다. 우리 엄마가 내 존재를 잊지 않았다는 안도감....그리고 내 자리가 있다는 것에 대한 소속감, 아무튼 뭐라 형용할수 없는 가슴이 간질간질한 감정이었다.



난 아침을 먹지 않는다. 이미 오래된 습관이라 이제 고칠수 없는 습관이 되었다.

아침을 먹으면 하루종일 소화도 안되고, 속이 쓰려서 꽤나 곤욕을 치른다. 우리집 남자는 나의 서른 일곱번째 생일상을 차려 나를 깨웠다. 한번도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던 무심한 남자가(나부터도 별로 기념일 따위에 의미를 두는 성격이 아니라서) 작년부터 3분 미역국으로 생일상을 차려주기 시작했다.

선물을 사주마해도 보석도 심드렁, 옷도 심드렁, 심지어 그걸 고르러 다닐 생각만 해도 피곤해지는 나는.. 시간이 날때마다 나랑 산책을 해줄것을 부탁했다. 한 이틀 남편과 산책을 하며 종알종알 떠드는 것만으로도 나는 꽤 스트레스가 풀리는걸 느꼈다. 책 두어권 정도면 난 생일선물로 족하다.

아침을 안먹는 내가 받은 생일상....넘어가지 않는 밥을 꾸역꾸역 먹은 덕에 난 지금도 속이 계속 쓰리다.

점심먹은것 마저 소화가 안되서 더부룩한데도 마음은 한껏 부르다. 짜디짠 3분 미역국, 기름이 줄줄 흘렀던 햄구이와 반숙도 아닌 소화도 잘 안되는 완숙 계란 후라이...그런데도 12첩 반상보다 더 감동이었다. 야근하고 아침에 들어와 잠든 나몰래 이걸 차렸을 아무것도 할줄 모르는 남편의 노력이 눈물겹다. 내가 굉장히 가치 있는 사람이 된것 같아 어깨가 한껏 펴졌다.



엄마에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는 했지만 내가 내 생일을, 나의 탄생을 축하해준적은 없다.

왜 태어났을까 싶었던 날은 많은데, 태어나주어 감사한 날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서른 일곱번째 생일을 맞은 나는 처음으로,

태어남에 감사했다.

험난한 세상, 마음다친 일도 많고 상처받은 것도 많은데 굳건히 살아낸 나에게 나는 오늘 참 많이 고맙고, 이런 내가 기특하고 장하다. 하루 하루 숨쉬기도 전쟁같던 날을 다 잘 견뎌내고 오늘을 살아내는 내가 참으로 대견하다.

두 아이의 엄마임이 감사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도록 이만큼 잘 키워준 부모님께 감사하고, 특히 아버지 돌아가시고 고생 많았던 우리 엄마, 그 기세고 무서운 우리 엄마가 술에 얼큰하게 취한 채 전화가 와서 우리 딸 엄마가 용돈주까? 이쁜 옷좀 사입으라 가시나야...맨날 그지같이 입고다니노 직장댕기는기... (실제로 그지같이 다닌적 없다 ㅋㅋ 난 늘 청바지에 유니폼을 입어서 그지같고 말고가 없다 ㅋㅋ) 하고 내 마음을 헤아려준 날이라 더 감사하다. 투닥거리던 신랑이 어설프게 차려준 생일상도 감사하고, 멘탈이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아내를 위해 애써주는 남편이 기특하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고마운 나....태어나줘서 고맙다...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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