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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Jun 20. 2017

엄마는 뭘 좋아해?

잠시라도 좋아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나"에게 집중해요.

딸내미가 물었습니다.

"엄마는 뭘 좋아해?"

생일을 앞두고 뻔한 질문을 하는것이지만, 세상 관심없는 아들놈과는 달리 엄마한테 뭐라도 하나 챙겨주고 싶은 딸이 고마워서 "글쎄..."하고 얼버무리자 답답했던지 "좋아하는거 없어? 음식이라든가 필요한 화장품이라든가... " 그런데 갑자기 생각나는게 없더라구요.

"음 조금 생각해볼께. 갑자기 물어보니까 생각나는게 없네"

"알겠어. 생각하고 말해줘"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난 대체로 음식을 잘먹고, 편식이 없긴 하지만 딱히 두드러지게 무언가를 좋아하는것 같지도 않고, 육류, 채소류 혹은 해산물이라든가 어떤 특정 종류를 유독 좋아하지도 않고... 화장품은 딱히 정해놓고 쓰는 브랜드도 없고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늘 쌩얼로 출근하는 배짱 두둑한 사람이기에 색조화장품을 많이 필요로 하지도 않고.. 그러고 보니 그때서야 로션이 떨어진것도 알았네요.

옷...늘 입을게 없긴한데 아 난 내 옷 취향도 잘 모르는구나. 옷을 잘 입을줄도 모르고... 나한테 뭐가 어울리는지, 혹은 내가 어떤 색이 좋은지,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두루뭉술하게....그렇게 살아왔구나......

문득 내가 나한테 참 못되게 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도 맛있게 먹었던게 있었을텐데...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또 먹고 싶었을텐데.. 나도 예쁜 메이크업을 받고 싶었을때가 있었을텐데.... 아니면 지나가다 어 저옷 예쁘다 했던 것도 있었을텐데....


뭔가 내 자신에게 요구는 무척 많았는데, 내가 나의 요구를 들어준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엄마는 책 말고 좋아하는게 없어?"

"책? 나 책 안좋아하는데??"

"엄만 맨날 책만 사잖아. 엄마 택배는 다 책이잖아"

"그랬나??"

왜 그랬을까? 그러고 보니 인터넷 서점에서 늘 VVIP를 고수하고 있긴 하네요....

안읽고 처박아둔 책도 엄청 많은데, 그렇게 꾸역꾸역 책을 사댄 이유가 뭔지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싶더라구요.

내친김에 안읽은 책을 다 꺼내봤습니다. 육아 심리 문학 경제 다양하기도 합니다.

이걸 왜 샀지? 뭐에 꽂혀서 산거지....읽긴 해야겠는데 시간도 없고....

문득 내가 책을 좋아하는걸 알고 없는 살림에도 없는 책이 없도록 책을 사준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읽은 책중 가장 드라마틱하게 읽은 "소공녀"를 떠올렸습니다.

나는 소공녀를 마치 드라마처럼 보는 듯 느끼고, 내가 세라가 된것처럼 다락방에 깔린 양탄자의 부드러움을 몸소 느끼며 그 책을 읽었습니다.

그 후 책이 주는 매력에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난 왜 그렇게 책에 몰입했을까?

그리고 알았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아니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4학년때부터 극심한 따돌림에 친구가 없었고, 운동장 뒤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습니다.

결국 6학년때서야 엄마가 사태를 알고 그 지옥같은 일이 끝났지만 난 외로웠나봅니다.

친구가 제일 무서웠고, 친구가 제일 그리웠던 나는 책과 놀고 글을 쓰며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봅니다.


그런 나는 커도 그 성격이 별로 달라지지 않아, 인간관계가 넓지 못합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외롭고 심심한 날들이 반복됩니다. 사람한테 다친 마음은 필요이상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없어도 내 마음이 다치지 않을 거리만큼만 다가갑니다.

그러니 마음을 온전히 나누지 못한 관계는 늘 나를 공허하게 합니다.

그래서 난 더 책에 집착했는지도 모릅니다. 결코 책을 좋아한 사람은 아닙니다.

책으로 도망을 간거죠. 제 나름 도피처였던가 봅니다.


결국 난 내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옷이 잘 어울리는지 그런 것들을

하나도 알지 못하는 서른 여덟살의 덜 큰 "어른이"가 되었습니다.

그걸 인식도 못하고 있다가 딸아이의 질문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 생일 선물로 엄마 연극이나 다시 할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누가..."

"엄마는 연극이 그렇게 좋아?"

"응 엄마는 무대가 제일 좋아. 거기 서있어야 행복해"

"대본외우고 한다고 힘들어 했잖아. 엄마 대사도 완전 많아서 그때 무지 힘들었잖아"

"그래도 조명아래 서면 엄마는 숨도 쉬는것 같고, 살아있는것 같아서 좋아"

"다시 할거야?"

"응 다시 할거야. 너희들 다 크면....너희들 다 커서 대학가고 너희 갈길 가면 엄마도...."

"그럼 지금 해야지"

"지금은 안돼지. 공연준비하고 하면 맨날 늦게 들어올텐데 지금은 너희가 어려서 안되지"

"하기 싫은 회사는 끊고 엄마 하고싶은거 해야지. 엄마도 우리한테 그러잖아 하고싶은거 하라고"

그런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꾸 비어져 나오는 울음을 삼킵니다. 아직은 엄마가 아빠가 하고픈걸 미루어두고 현실에 타협하며 돈이라는 것을 놓을수 없는것이 속물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너희 날개를 펴려면 어쩔수 없다고.. 그렇게 나의 비겁함을 애써 자위하며 또 힘을 내어 봅니다.



우리 엄마들은 대부분 엄마가 되는 순간 모든것을 아이 뒤로 미룹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일년이 가고 십년이 가면 어느날 껍데기만 남은 나를 보며 공허해집니다.

관옥같은 새끼들은 알토란같이 커서 자기 갈길을 가고, 자연스레 엄마를 뒤로 미루는데...

나의 세상이었던 아이에게 밀린 나는 갈곳이 없습니다.

저는 엄마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하루에 5분만 나에게 집중하세요.

아이가 자는 동안, 학교간 동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분만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차 한잔을 마시며

그래 나는 이 차가 맛이 제일 좋더라, 나는 이 반찬이 제일 맛이 좋더라, 난 이 음악이 좋더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에 내가 만족하는지 24시간중 5분은 인식하고 살아가라고 합니다.

그러면 일년내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삶이 됩니다.

시간이 뒤로 미루어진다고 해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람은 내 길을 찾아갈수가 있지만...

나를 인식하지 못한 삶은 나중에 기회가 와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몰라 길을 잃게 되지요.


그러니 엄마,

엄마의 삶속에서 엄마의 끈을 놓지 마세요.

아이는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지만 나는 나밖에 안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나를 미루게 되면 나는 크지 못한 시간속에서 슬프게 웅크리고 앉아 나를 기다릴지도 몰라요.

부디 제가 길을 잃고 헤매었던 것처럼,

엄마들은 그 아린 공허의 끈을 잡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중한 우리 아이와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엄마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tip : 이 기회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연습장에 적어보았습니다.

      순정만화, 뉴에이지, 클래식, 판소리 총 망라한 음악들, 연극, 영화배우 김명민(십년덕질중 ㅋㅋ)

      고양이, 강아지, 온갖 해산물, 풀때기 음식,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달지 않은 아이스크림

      책, 글쓰기, 여행 그리고 우리 아이들.....

       아무리 써도 남편이 안나와서 슬퍼요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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