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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Oct 13. 2017

똑부러지는 아이, 마음이 똑! 하고 부러질지도..

부족한 아이의 장점을, 잘하는 아이의 상처를 돌아봐주세요

작은 아이는 크는 내내 큰 속 썩인적 없는 "모범적인" 아이입니다.

숙제해라, 공부해라 잔소리 할일 없이 스스로 알아서 잘했고, 학교에서도 늘 임원을 도맡아 하는 착실한 학생이었으며, 학원에서도 늘 잘한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살게 하는 아이이지요.

하지만 집에서 제가 겪은 이 아이는 공부 안하는 큰애보다 훨씬 걱정거리입니다.

성격이 예민해서 시험 기간이 되면 늘 몸이 좋지 않습니다.

타고나길 약한 아이가 욕심이 많아서 자꾸 자길 지치게 만드는 유형이거든요.

이런건 닮아지지 않았음 했는데, 엄마 기질을 많이 닮아 예민하고 승부욕이 강하며,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유형에 많이 나타나는 자기학대형 유형이지요.

남이 보긴 너무 잘 하고 있는데, 아이는 스스로에게 만족이나 자존을 잘 얻지 못합니다.

늘 조금더 조금더 하다가 스스로 힘들어지곤 하는 아이를 보며, 저러다 롱런하지 못하고 지례 포기하게 될까봐 늘 걱정입니다.


드러나는 성향으로 보자면 반항적이고 공부도 하위권인 우리집 큰 아이...오로지 영어에만 인생을 건거마냥 영어만 좋아하는 그 아이가 훨씬 걱정이어야 하는데.. 큰 애는 속마음이 여리고 순한 녀석입니다.

드러나는 기질이 모든것을 말하지 않는다는걸 두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되었습니다.

큰 아이는 마음에 맺힌것도 어지간하면 잘 풀어버리는 스타일이라 앙금이 오래 남지 않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조급해하지도, 또 쫓기지도 않습니다.

세월은 유수와도 같으니 흘러라, 흘러..하는 아이가 너무 답답해서 오히려 제가 안달이지요.

그래서인지 뭐 하나에 꽂히면 꾸준하게 성과를 냅니다.

학원한번 보내본적 없는 영어가 그아이의 가장 큰 성과입니다.


한편 어른에게 반항적이지 않은 작은 아이는 마음의 생채기를 오래 앓습니다.

외할머니와 큰 충돌이 있었던게 작년 추석이니 일년전 일인데도 아이는 외할머니께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외가집에 가는것도 싫어하고, 할머니 앞에서 내색은 안해도 말을 섞거나 함께 밥을 먹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한번 싫은건 대쪽같이 싫어하는 "엄마닮은" 성격이 얼마나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만드는지 알고 있는 저로서는 이 아이의 모난 성격이 늘 걱정입니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장점아래 인간관계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단점들이 속출할테니 말입니다.

때론 둥글둥글 굴러갈 줄도 알아야 할텐데, 아이는 뭐든 옳고 그름을 가려내어 똑부러지는 결론이 도출되어야

성이 풀립니다. 그러니 스스로는 얼마나 피곤할까요...


공부를 잘하고 칭찬받는 아이를 바라지 않을 부모는 없습니다.

저도 그래서 큰 애를 더 많이 뭐라 그러고 화내고 잔소리하며 키웠지요.

하지만 실상 상처는 야무진 둘째가 더 많이 받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엄마아빠한테 입찬 소리를 할때는 콱 쥐어박고 싶기도 하거든요.

그 시시비비의 잣대를 부모라고 피해가지 못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사람과 더 많이 부딪히고 깨지고 피흘린건, 모난 성격을 가진 둘째였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마음을 다치고, 거기에 달려들고, 깨지고 했을 아이가 문득 안쓰러워집니다.


또래 아이보다 몸집도 작고 키도 작은 우리 둘째는,

닮지 않았음 소원했던 엄마의 많은 부분을 닮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녀석에게 참 많이 의지했던 것 같습니다.

워낙 엄마와 떨어질줄 모르는 아이여서, 애착관계가 유난히 도타웠던 아이여서 그랬는지,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고 엄마와 거리가 생기며 오히려 서운함이 커진것은 엄마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의 서운한 말 한마디에도 팩 토라지기 일쑤였지요..

특히 아빠와 다투기라도 할때 대차게 아빠편을 들때의 얄미움이란;;;;;


그럴때마다 둘째가 말했습니다.

"저렇게 질투가 많아서야 원..."


오히려 덜 자란것은 엄마였는지도 모릅니다.


첫아이의 사춘기는 유난히도 혹독합니다. 정말 질풍노도가 뭔지 안겪은게 없이 다 겪게 만든 큰아이.

그럼에도 아이의 기질은 보드랍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아이와의 충돌은 그 당시의 상황에 화를 낼뿐

앙금이 남지 않는데 둘째 아이는 딸아이라 그런지 유난히 감정적으로 많이 부딪히게 됩니다.

얄미운 말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생채기가 크게 남습니다.

그러다보니 엄마가 오히려 더 얄밉게 대응합니다.

이러다 애랑 꼬집어 뜯고 싸우는건 아닐까 싶게 어른답지 못합니다.


둘째는 엄마의 좋은 친구였습니다.

태어나서 열두살까지 주말마다 엄마와 놀아주고, 엄마와 영화보고, 엄마랑 나들이 가고,

엄마와 재잘재잘 수다도 떨고 이보다 좋은 친구가 없었지요.

아이는 어른이 되기 위한 초입에서 엄마와 친구를 잘해 주고 이제 제 친구들을 향해 조금씩 엄마손을

놓는데 정작 엄마는 그 손을 놓지 못해 나 말고 다른 친구가 생긴 아이를 질투합니다.

첫애를 놓는데 그렇게 가슴앓이를 해봐놓고도, 또 둘째를 내 품에서 내어놓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아이가 크며 사춘기가 오고, 엄마 아빠와 제 2의 탯줄끊기를 합니다.

내 품에서 내려놓고, 엄마 아빠는 좀더 울타리를 넓혀 아이가 조금 더 넓은 세상에서 커나가는걸

조금 멀리서 지켜보아야 한다고 수없는 육아 전문가들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십이 다 되어가는 나를 보고도 엄마가 아가~ 하고 부르며 친정가서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는

내게 아서라 아서 그릇깨다 손다친다 하는 것처럼.. 내게도 아직은 미숙한 이 아이들이 청소년으로 비춰질리가 없습니다. 불안하고 아슬아슬하고, 아직은 내 손이 더 가야만 하는... 아기와도 같습니다.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은 엄마가 품에서 내려놓을 준비를 하지 못하니 끝도 없는 잔소리가 이어집니다.


하물며 나의 살같던 딸이 멀어지는 일이니....그 과정이 참으로 아팠습니다.

꼭 너같은거 낳아서 키워봐라. 지금 니가 한말 똑같이 들으면서 이년아!

혼자 으름장을 놓아보지만 금방 해실해실 웃으며 안겨드는 녀석을 뿌리칠 방법은 없습니다.


늘 똑소리 나는 딸아이라 든든했습니다.

그런데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니 똑소리 나기 위해 애쓴건 아닐지 아이가 안쓰럽습니다.

늘 잘한다 잘한다 한 칭찬이 어느날 아이에게 감당치 못할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공부 못해도 된다. 아프지만 마라...했던 약한 둘째를 보다가 공부하면 헌법에 걸리는줄 아는 첫애를 보면

그건 또 아닌것 같고;; 엄마의 마음이 참 간사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성취하는 성취감을 느끼는건 좋지만

잘해야하는 압박에 시달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되도록 결과를 칭찬하지 않았던 이유가 저와 성향이 비슷한 둘째가 과정을 즐길줄 모르는 엄마처럼은

안되길 바래서였는데, 유전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이는 결과중심적인 성취를 놓지는 못합니다.


부족한 아이는 부족한 면만 보여 잘하는걸 보지 못했는데,

잘하는 아이는 잘하는 것만 보여 아이의 노력이 어느날 짐이 될걸 생각지 못했습니다.


부디 노력의 과정을 즐기고, 그 노력의 과정이 정당하고 최선을 다한것이라면,

결과가 어떻듯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으로 충분하다는 자존을 길러주고 싶습니다.

너무 잘하는 것 대비 자존이 낮은 둘째 아이가 가장 걱정되는 건 낮은 자존입니다.


그리고 간사한 엄마는...

제발 노력이라는걸 좀 해보길 바라는 첫애를 보며 한숨을 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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