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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Nov 28. 2021

삶속에 잃어버린 나

가스라이팅-무서운 정서적 학대

전남편은 회피형 인간유형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자신과 다른 문제는 모두 틀린것인 그래서 의견이 부딪히면 사정없이 상대를 비난하고 정죄해서 반드시 자신이 옳다는 것을 관철시키거나 철저하게 문제를 외면해 버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돌파형 인간유형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직면한 문제를 단계별로 해결해야하며, 발생된 일의 문제점을 파고들어 과연 이것의 시발점이 무엇인가부터 꼬치꼬치 따지는 사람이었다.

우린 너무나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날이었다.

유난스러운 사춘기를 보낸 큰 아이의 파란만장한 날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또래보다 빠른 사춘기를 겪게 된 아이는 학교에서 잘 이해받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맘때의 아이들보다 산만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가 학폭 피해자가 되고, 더 어려워진 학교생활을 겨우겨우 이어가 속을 다 태우던 날들이 이어질 무렵 학교에서는 아이가 ADHD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위센터에 상담을 연계해주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난 공교육의 상담센터를 신뢰하지 않는다.

위센터에서 한 모든 상담이 거침없이 담임선생님께 모두 통지되어버려 되려 곤란해진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며 오히려 내담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상담교사의 언행에 상처받은 경우가 한두번이 아닌탓이다.

하지만 ADHD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는 나를 두렵게 했다.

언제일지 알수 없는 기간내내 아이에게 약을 먹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 아이가 정상이 아닐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동안 매체에서 봐왔던 아이들의 증상들 그 모든것이 혼합되어 가뜩이나 불안기재가 높은 나에게 산처럼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아이아빠에게 아이에게 이러한 일이 있을수 있다는 것을 알렸을때 가장 먼저 내게 다가온 것은 비난이었다.

대체 아이를 어떻게 양육했길래 그런 소릴 듣냐는 비난의 화살과 함께 그는 나를 정죄하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것이 내 탓으로 돌아왔다.

시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이 문제를 의논하고 해결점을 찾는데는 초점을 맞춰주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이 문제를 책임지우고 빠져나가기 바쁘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뒤로 나는 아이아빠에게 아이 문제를 이야기 할수가 없었다.

가슴이 납덩이로 짓누르는거 같이 무거웠다. 끊임없이 나의 모성을 의심하고 나의 모성을 성찰하는 동안 나는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가 미웠다.

죽이고싶도록 미웠다.

아이의 탓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아이로 인해 끊임없이 화살을 맞아야 하는 나는 아이가 미웠다.

왜 하필 저런 아이를 내게 주셨나 하는 마음과 함께 아이의 손을 놓고 도망치고 싶었다.

문제행동이 불거질때마다 학교와 가족은 나를 비난하기 바빴다.

학교는 모든 문제를 내 손에 넘겼고, 가족은 내 손을 놓기에 바빴다.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단 하나, 내가 손을 놓아버리면 세상 아무도 아이의 편이 되어주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버티게 했다. 다행히 아이는 사춘기에 오는 단순한 산만함이 오인된 것이라는 결과를 낳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나에게 사과를 하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내 병든 마음, 상처받은 마음은 갈 곳이 없었다.

남도 나를 비난하고, 나도 나를 비난하는 동안 아이와 나의 사이는 급격히 멀어졌다.

그 사이를 다잡기 위해 대한민국에 내놓으라는 스타강사의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그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울며불며 몇년의 세월을 보냈으며, 1년여의 새벽기도를 다녀도 내 병든 마음은 갈곳을 찾지 못했다.


나의 구원은 나밖에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나를 찾아왔다.

나부터 내게 원죄가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신도 나를 구제하지 못하리라는 마음은 병원에 가서야 찾아왔다. 극도의 불안과 우울로 기인한 나의 죄의식은 약물과 상담을 통해 아무에게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슬픈 내 마음을 내보일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경제적 문제 이외의 아이의 그 어떤 문제도 아이아빠와 상의하지 않는다.

그는 아이의 진로도 자신의 가치와 맞지 않으면 회피하거나 폄하하거나 또는 극단적으로 학비를 지원하지 않겠다거나 하는 식의 방식을 취한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수도 없이 들었던 내돈 쓰지마 내 카드 쓰지마 니가 벌어서 학원보내 라는 그 협박아닌 협박이 끝도 없이 내 불안지수를 높였다.

돈을 벌지 않으면 내 생명이 끝날것 같던 그 지옥같은 순간을 나는 지칠줄도 모른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뛰어 결국 십여년이 지난 지금 번아웃이 되어버린 현실과 맞바꾸고 말았다.


나의 불안기재와 우울은 약으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천성이 그런 사람이니 약이 성격을 고쳐줄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나의 세팅된 우울과 불안을 유지하도록 도와줄 뿐이었다.

나의 원죄의 부인은 결국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 말곤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나 스스로의 죄의식에 이미 길들여 있었다. 무수한 시간 네 탓이라는 수도없는 부정적 피드백이 어느새 나를 "그런 사람"으로 규정짓고 있었다.

나는 모성이 부족한 내 스스로가 중요한 그럼으로 아이를 곤경에 빠뜨린 그런 엄마라고 이미 스스로도 규정짓고 있었기에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기란 마치 늪에서 헤어나오는 것 같이 어려운 일이었다.


이혼을 하고야 알았다.

그것이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을.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그 부정적 피드백에서 벗어나고서야 이혼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를 알았다.

특히 나는 시어머니의 부정적 피드백에 많이 시달렸기 때문에, 이혼 후 나의 원죄없음을 빠르게 인정해 나갈수 있었다.

모두가 말렸던 이혼이 어쩌면 내 목숨을 구했는지도 모른다.


가스라이팅은 정서적 학대다.

그것도 자신이 학대를 당하는지도 모르고 그 학대에 길들여져 버리는 무서운 학대다.

그것이 학대라는것을 깨달을 즈음엔 자신도 이미 길을 잃어 어느곳으로 가야하는지 방향조차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잊지말자.

그들이 규정지어놓은 나는 절대 내가 아니다.

그들이 규정지어 놓은 원죄는 절대 나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고개를 들어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자. 

어딘가 웅크려 손을 잡아주길 원하는 나를 찾아보자.

내 손은 내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잡아주지 못한다.


나의 구원에 손을 내밀어 내가 내 손을 잡아야, 타인도 나의 구원에 손을 내밀수 있다.


기억해야한다. 아니 기억해 내야만 한다.

어느 순간에도 당신은 소중하다.

당신이 원죄가 있든 없든, 당신이 성공을 했든 실패를 했든, 돈이 많든 가난하든 그런것들과 아무런 상관없이 당신은 당신의 존재로 충분히 소중하다.

진부하지만 진부함이 가장 큰 진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느날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울고 있는 당신의 손을 잡고 응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의 어느날이 나의 어느날처럼 힘들지 않도록 당신의 순간순간에 응원을 전한다.

당신의 소중함을 당신의 값짐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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