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의 동티모르 시절 이야기]
앞으로 전개될 모든 이야기들은 제 핸드폰 or 드라이브에 담긴 사진의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처음 동티모르로 떠났던 게 2016년이니 기억들이 많이 미화됐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지난 사진들을 보고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니 여전히 저한테는 특별한 기억들인가 봐요.
앞으로 전할 이야기들도 재밌게 봐주세요:-)
딜리 출장을 다녀오고 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기본 하루 일정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07:00 기상
08:00 출근
08:00 ~ 12:00 오전 근무
12:00 ~ 14:00 점심 시간
14:00 ~ 18:00 오후 근무
18:00 ~ 퇴근 후 개인 정비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거의 위 일정대로 하루가 흘러간다. 이날도 오전 업무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I 간사님과 다시 출근해서 업무를 보았다.
원래 간사님은 내가 오기 전까지 주로 걸어서 출퇴근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같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다. 퇴근 후에도 종종 같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 드라이브를 다니기도 했다.
내가 있던 로스팔로스에는 현지 청년들을 위한 한글 학교가 있었다. 동티모르 청년들이 외국인 근로자로 한국에 오는 경우가 있는데, TOPIK 시험을 꼭 통과해야지만, 한국에서 일을 할 수 있어서 한국어 공부는 필수이다. 당시 이곳에는 한국어 선생님이 있었는데, 내가 일했던 NGO의 선배 간사님이자 훗날 다음 회사에서 같이 일하게 된 K누나이다.
아무튼 처음 로스팔로스에 갔을 때 친숙한 한글 표지판이 있어서 사진으로도 남겨 놓았었다.
오후 근무가 끝나면 늘 갈림길까지 소장님과 간사님과 함께 퇴근을 했었다. 가끔 특별한 날에는 소장님 집이나 우리 집에서 같이 요리를 해먹는 경우도 있었다.
퇴근 후에는 특별한 일과는 없었다. 그냥 혼자 집 앞 구멍 가게에서 50센트 주고 산 사이다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타고 초원에 놀러가서 혼자 풍경을 즐기고 온다거나가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런 순간들이야말로 내 인생에 특별한 시간들이 아니었나 생각되지만 말이다.
당시 동티모르는 지금과 다르게 우기 건기가 확실했었는데, 당시는 우기를 지나는 시기여서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비가 왔었다. 신기하게 비슷한 시간대에 비가 왔었는데, 후에 에피소드에서 소개될 일이 있겠지만, 2주씩 비가 안 그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주중 업무를 마치고, 주말에 소장님, 간사님들과 현지직원인 코스토디오 아저씨네에 가서 옥수수 수확하는 걸 도와드리기로 했다. 원래는 옥수수 따는 것까지가 계획이었으나, 이날도 비가 온 관계로 이미 따놓으신 옥수수 알을 터는 작업을 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동티모르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라 동티모르어(테툼어)도 거의 못하고 못알아듣던 시기여서 그냥 열심히 옥수수 알만 털었다.
처음엔 신나서 열심히 했는데 열정이 과했는지, 나중에는 손에 물집이 잡혀서 고생을 했다. 코스토디오 아저씨네 마을에는 전기도 물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해가 떨어지면 자야하고, 물은 마을에서 물통을 들고 우물에서 길어와야한다.
(실제로 아저씨네 집에서 1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침에 직접 물을 길어와서 세수 했던 기억이 있다.)
말라이(동티모르어로 외국인이라는 뜻) 4명이 와서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겠냐만은 그래도 꾸역꾸역 열심히 옥수수도 털고 입도 털어주었더니 어느새 생각보다 많은 옥수수 포대가 나왔다.
사실 이날 옥수수를 털러간 것도 맞지만, 큰 목표가 있어서 갔었다.
함께 지내던 간사님들이 뜬금없이 돼지를 키워보고 싶으시다고 다같이 돈을 모아서 돼지 한마리를 사자는 게 아닌가..? 막내가 무슨 힘이 있나..그냥 좋아요 하고 따를 뿐이지.
그래서 우리는 각출을 해서 500불?인가를 주고 돼지 한마리를 데리고 왔다. 이름하여 봉주르.
처음엔 돼지라길래 귀여운 핑크색 돼지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멧돼지... 심지어 길도 안들여져서 물고 들이 받고 난리도 아니었다. 공포 그 자체...
봉주르의 에피소드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