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여행지보다 함께하는 사람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
나는 이미 자극의 역치가 높아져,
웬만한 장소로는 놀라움을 느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닐까.
대화의 조각들. 멋진 풍경을 봐도 함께 감탄할 사람이 없으면 그저 그렇다. 주로 유럽 여행 커뮤니티에서 동행을 구한다. 새로운 사람과 꽃피우는 대화가 소중했다. 스페인 그라나다. 갑작스럽게 여행이 시작됐다. 우연히 숙소를 무료양도 받았다. 트윈룸이었다. 동행을 구하지 못했다. 혼자 여행하게 됐다. 그저 그런 풍경이 이어졌다. 별다른 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삶은 시간에 상상만큼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지난한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알함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 언덕을 올라가며 생각했다. 같은 풍경을 봐도 어린아이와 중년의 반응은 다를 것이다. 나는 이미 자극의 역치가 높아져, 웬만한 장소로는 놀라움을 느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마지막이다. 현재의 느낌은 마지막이다.
여행 막바지에 동행이 생겼다. 건축학 전공 B다. 그는 미국에 절을 짓고 싶다고 했다. 건축물은 시퀀스를 고려하여 설계된다. 시퀀스는 건물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보게 되는 모든 풍경이다. 성당은 공중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이고, 십자가는 후광이 비출 수 있도록 동쪽에 배치된다. 사찰은 경외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정상에 다다를 즈음에 나타난다. 이런것이 시퀀스다.
여행의 중심에는 대화가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영화에 관하여 질문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B는 매그놀리아와 맨프롬어스, 다크나이트 2를 추천했다. 안도 다다오라는 건축가를 좋아한다고 했다. 물의 절이라는 건축물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눈앞의 풍경을 의도적으로 가린다. 그렇게 함으로써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장소에서 집중해야 할 것은 경치가 아니라 신이다.
글을 쓰는 건 삶에서 중요한 것을 가려내는 작업이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친구와는 다르다. 주제에 제한이 없는 대화를 할 수 있다. 신선하다. 그래서 대화를 남긴다. 여행지에서 본 풍경보다 동행 분과 나눈 대화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다녀온 여행지가 많아질수록, 기억에 남는 대화도 많아진다. 이 대화들은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생각했다. 때로는 여행지보다 함께하는 사람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 삶도 그렇다. 어떤 성취를 거두는지보다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가까운 사람을 생각한다. 나는 그 사람들로부터 그라나다에서 느낀 감정들을 느끼고 있나. 나는 그들에게 인상적인 대화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일까. 삶과 사람에 관하여 생각하게 되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