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바람은 독일보다 거셌다.
그 문화는 ‘논다’라는 개념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바람은 독일보다 거셌다. 5월인데도 추웠다. 암스테르담 중심가에 갔다. 엄마 친구분, 남편분과 함께했다. 운하 주변의 집은 폭이 좁았다. 폭이 넓은 집에는 많은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의 홍등가. 남편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게 되자, 아내들은 돈을 벌어야 했다. 외모의 결점을 가리기 위해 빨간 불빛을 사용했다. 많은 걸 알게 됐다.
A는 엄마의 대학 친구분이다. B는 A와 결혼한 네덜란드인이다.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궂은 날씨에도 해변에서 스포츠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A가 내게 말했다. “여기 젊은이들은 이런 걸 해야 하기 때문에 넷플릭스 볼 시간이 없어.”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향유하는 문화라는 것이, 특정한 지역의 상황 때문에 형성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 문화는 ‘논다’라는 개념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국을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이 한국에서 친구들과 놀 때는 피시방에 가거나, 노래방에 가는 것 등을 생각했을 것이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밤거리를 걷는 것도 대학생 이후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평일과 휴일, 노는 데에 있어서 특별히 그런 구분은 없었다. 항상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유럽에서는 상황이 다소 다르다. 일단 평일에도 오후 9시 이후에는 장소 대부분이 문을 닫는다. 독일에서 일요일에는 심지어 슈퍼마켓도 닫는다. 길거리가 조용해진다. 피시방? 그런 것이 어디 있나. PC 게임은 기대도 하지 않고, 종이를 인쇄할 수 있는 곳을 찾기만 해도 감사하다. 프랑크푸르트에는 노래방이 하나 있지만,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삶이란 부딪히는 것 아닐까. 한껏 멋을 부리고 나가도 바람 때문에 소용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한국에서의 나는 그리 도전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바깥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에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 대유행도 이런 태도에 영향을 미쳤을 거다. 유럽에서의 나는 더 오랜 시간을 바깥에서 보낸다. 사람들을 만나고, 지금껏 보지 못한 것들을 본다.
오늘도 나는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하는 중에는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기억을 얻는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한다. 네덜란드는 거센 바람이 기억에 남는 곳이다. 그 바람과 함께 내가 삶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네덜란드어는 독일어와 비슷하다. 누군가 내 앞에서 네덜란드어로 말하고 있으면, 나는 그 의미를 추측할 수 있었다.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