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헌낫현 Dec 16. 2020

군생활 중 아프리카에 갈 줄 누가 알았겠어

대한민국 남수단재건지원단 체험수기(19.05.13.~20.03.24.)

수기를 시작하며

먼저 쉽지 않은 파병 기간을 함께해준 남수단재건지원단 11진 부대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타지에서 모두가 고생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더 많이 챙겨주지 못해 아쉬움이 남고 죄송하기도 하다. 함께할 수 있었기에 더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버틸 수 있었다.


더불어 아프리카 남수단이라는 낯선 땅에서 국가를 위해 복무할 수 있게 평화유지군으로 선발해주신 대한민국 육군 관계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남수단재건지원단의 일원으로 선발되지 않았다면, 9개월간의 값진 경험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 시간 동안 겪은 수많은 경험과 다양한 국적, 직책,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는 나에게 너무나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내가 인식하는 세상이 더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내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이바지할 수도 있겠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육군3사관학교 영상제작병에서 유엔 남수단임무단의 일원이 되는 경험은 그만큼 내 삶에서 커다란 사건이다. 이 글을 통해 누군가가 군 복무 기간 동안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된다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힐 기회를 발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것이다.


준비과정부터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느낀 경험들을 자세히 서술하였으니 국제기구에 관심 있고 군 복무 중 가치 있는 도전을 하고 싶어 하는 모든 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아프리카 남수단의 참혹한 현실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많아져서 더 많은 분의 도움의 손길이 그곳에 닿았으면 한다.


선발절차와 출국

대한민국 육군은 정기적으로 전국에서 간부와 병사를 남수단재건지원단의 일원으로 선발하고 있다. 인트라넷을 통해 선발 공고를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주특기에 맞는 직책에 지원할 수 있고, 선발규모는 병사가 훨씬 적다. 남수단재건지원단의 일원으로 선발되면, 인천에 있는 국제평화지원단으로 소속이 변경되고, 약 두 달간의 교육을 받게 된다.


교육과정에서 체력 측정을 비롯한 기초적인 교육이 시행된다. 평화유지활동, 현지 환경, 주특기와 관련된 교육이 이뤄진다. 아프리카 남수단에는 말라리아 등 전염병이 있어서 예방접종도 받는다. 교육이 끝난 뒤에는 관용여권 발급 등 필요한 절차를 마치고 군 공항을 이용해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향한다.


에티오피아를 거쳐 남수단으로 이동하는데, 험난한 여정이다. 체력적으로 부담될 뿐만 아니라 찌는 듯한 더위가 고통스럽다. 주둔지에 도착한 뒤에는 약 한 달간의 안정 기간을 거친 뒤 임무수행을 시작한다.


유엔의 근무시간을 따른다는 것이 특이하다. 기념일, 휴무일도 모두 유엔의 방식을 따른다. 주둔지 근처에는 다른 나라 파병부대의 주둔지가 있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를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다. 네팔전투경찰대(NFPU) 주둔지에서 경험한 네팔의 전통 명절 더싸인(Dasain)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국제평화지원단에서 다시 만난 유엔

나는 평화유지군으로 선발되면서 국제평화지원단에서 국제기구를 비롯한 유엔의 평화 유지활동(UNPKO) 전반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국제기구는 생소했다. 고등학생 시절 법과정치 과목을 공부할 때 이론적으로만 배운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관심이 있었기에 흥미롭게 수강할 수 있었다.


유엔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평화, 안보, 인권이다. 이 중 인권에 가장 높은 가치를 둔다. 유엔은 193개국이 참여하는 총회, 안전보장 이사회, 사무국, 국제사법재판소와 각종 이사회로 이뤄져 있다. 세계 평화를 위한 넓은 범위의 활동을 추진하기 때문에, 유엔을 구성하고 있는 국제기구도 다양하다.


UNPKO는 최소한 당사국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동의, 공정성, 무력사용금지라는 기본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성공요소로는 적법성, 신뢰성, 당사국과 지방의 주도권 신장이 있다. 교육을 통해 국제기구에 대한 지식수준도 깊어졌지만,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UNPKO의 옳은 방향이라는 것 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까지도 ‘도움을 주는 행위’에 대한 나의 가치관으로 남아있다.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향하다

빛나는 도시의 야경, 자동차들이 뒤엉켜 시끌벅적한 도로. 우리나라와 약 14,000km 떨어진 남수단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밤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오고, 도로는 평탄하지 않아 그 위를 지나가는 소형전술차량은 심하게 흔들린다.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빛, 도로, 통신시설은 이곳에서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이 느려지거나 끊기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빛, 도로, 통신시설은 이곳에서 당연한 것이 아니다. 유엔 남수단임무단 대한민국 한빛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어린 신생독립국가, 아프리카 남수단이다.


남수단은 수십 년 간 지속한 내전 이후 2011년 7월 9일 수단에서 분리 독립했다. 오랜 내전으로 황폐해진 이곳에서 심각한 기근과 전염병 속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 유엔은 남수단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재건을 돕기 위해 유엔 남수단임무단(UNMISS, United Nations Mission In South Sudan)을 설치했다.


남수단을 비추는 환한 큰 빛, 한빛

반기문 前 유엔사무총장은 2011년 7월 26일 대한민국 정부에 파병을 정식 요청했다. 2012년 9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군부대의 국제연합 남수단 임무단 파견 동의안’ 이 최종 통과됐다. 한빛부대는 내전과 기근으로 상처 받은 남수단에 희망의 빛을 전하기 위해 2013년 1월 7일 창설되었다.


스콜성 기후와 50°C를 넘나드는 불볕더위 속 어려운 여건이지만, 한빛부대는 도로재건작전을 통해 종족 간 화합을 증진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대동맥을 건설하고 있다. 더불어 한빛부대는 이곳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국민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며 대민 의료지원, 직업학교, 한국어 교실, 태권도교실 등의 민군작전도 수행하고 있다. 그 결과 유엔으로부터는 ‘최고의 모범부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남수단 주민들로부터는 ‘신이 내린 축복’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 당연한 것들은 남수단에서 감사한 것들이었다

난생처음 가본 아프리카는 꽤 더웠다. 낮에는 온도계의 40도 부근까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9개월간 타지에서 평화유지군으로 임무 수행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아프리카로 향한 것은 2019년 7월이었다.

낮에는 온도계의 40도 부근까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출발하기 전에는 낯선 땅이 주는 새로움과 그곳에서 하게 될 경험에 대해서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직접 가본 남수단은 달랐다. 열악한 여건이 몸소 느껴졌다. 남수단으로 가는 길도 험난했다. 내가 그곳에 도착할 때는 우기였는데, 비가 어찌나 많이 오던지. 힘겹게 매고 가던 배낭과 보조가방이 다 젖었다.


그렇게 저벅저벅 걷다 보니 어느새 주둔지에 도착했는데, 그때의 감격스러운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임무 수행을 위해 마을로 나가면, 위생적이지 못한 환경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땅이었다. 남수단의 토양은 레드머램이라는 재질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비가 오면 배수가 잘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비가 오면 남수단의 마을은 물에 잠긴다. 걷는 와중에도 땅이 푹푹 꺼져 중심을 잡기 어려운 그곳. 남수단이었다. 한국에서 당연한 것들은 남수단에서 감사한 것들이었다.


남수단재건지원단 공보과의 특별한 역할

한빛부대 공보과의 역할은 특별하다. 공보과가 제작한 부대소개영화는 유엔 관계자, 대사 등의 외부 인사 방문 시 한빛부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어 교육 영상은 한빛부대가 운영하는 한국어 교실에 학생으로 참여하는 인접 파병국 부대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나는 유엔남수단임무단 파병국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교실에서 교관으로 활동했다. 한국어교실을 위한 교육영상을 제작하고,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수업을 듣는 부대원들이 언제든 한국어에 대한 궁금한 사항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남수단재건지원단 11진 공보과의 역할은 일반적인 임무에 국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종글레이주 미라야 라디오국을 방문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곳은 유엔 평화유지활동 관련 뉴스를 라디오를 통해 송출하고 있었다.


남수단에는 통신시설을 비롯한 제반시설이 열악해서, 모든 공적인 보도를 라디오로 해결하고 있었다. 미라야 라디오국 내부도 많이 훼손된 탓에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할지 의심되는 상태였다.

한빛부대는 남수단 현지 주민들과 유엔의 소통 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빛부대는 남수단 현지 주민들과 유엔의 소통 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지 주민들이 한국군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유엔남수단임무단의 결정에 따라 필수적인 물품이 지원되는 방식이었다.


유엔 공보과에서 출판한 『A Shared Struggle: The People & Cultures of South Sudan』이라는 제목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유니세프 광고에서 보던 아프리카의 현실을 몸소 느낄 수 있었고, 국제기구의 역할에 대해, 남수단의 현실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남수단 정보소통국

종글레이주 정보소통국(Ministry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을 방문했다. 정보소통국은 남수단에서 언론의 역할을 하는 정부기관이다. 평화협정, 재난경보 등 중요 정보를 라디오를 통해 보도한다.


가는 길은 역시나 거칠었다. 차의 바퀴가 흙바닥에 빠 지는 바람에 근처에 있던 유엔 덤프트럭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회의장처럼 보이는 곳이었는데 놀라웠던 것은 그곳이 큰 나무가 옆에 있는 야외였다는 것이다.


Everyone has right to know everything that happened in the state of Jonglei and South Sudan. That’s why we are here.


정보소통국 관계자는 “남수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두가 아는 것이 평화를 위해 매우 중요하지만, 제반 시설 부족으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과 지속적인 협력을 원한다.”라고 말했다.


전력 공급과 같은 기초적인 여건의 불비로 보도가 지체되는 경우가 많다. 회의장이 야외에 있는 이유도 사무실 내부가 호우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하나의 소식을 모든 구성원과 공유하는 것 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지 문화 이해와 동등한 소통의 중요성

임무수행을 위해 보르 시내에 간 적이 있었다. 부대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부대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현지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는 간이 배수시설, 시장, 낮은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소형전술차량이 지나가면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손을 흔들며 환영해줬지만, 이따금 기관총을 휴대한 사람들이 보여 꽤 위험해보이는 곳이었다. 긴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 방탄복을 입고 촬영을 하기도 했다. 현지 언어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다.


남수단에는 다양한 부족이 있다. 그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부족은 딩카(Dinka)족과 누에르(Nuer)족이다. 나는 부대 내 근무하는 아위르라는 직원을 통해 딩 카 언어를 배울 수 있었다. 딩카 언어로 ‘구돨’은 ‘안녕하세요’라는 뜻이었다.


현지 관계자의 말을 통역하면서 이 말을 써보았다. 그런데 그곳에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 “우리 언어를 써줘서 고맙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현지 문화를 이해하는 것과 동등한 관계로 소통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꼈다. 이해와 소통은 협조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 가운데 더욱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문화의 힘...남수단에서 한국의 위상을 느끼다

새벽에 비상이 걸렸다. 인접 부대에 갑작스러운 화재가 발생했고, 한국군에게 도움 요청이 접수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취침 중에도 지휘통제실로 달려가야 했다. 유엔남수단임무단 부대 중 소화시설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빛부대가 유일했기 때문에, 인접 부대에서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새벽에 비상이 걸렸다. 인접 부대에 갑작스러운 화재가 발생했고, 한국군에게 도움 요청이 접수되었다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통역병들은 유엔 관계자와 통화해 상황을 전달했고, 곧 소방차가 출동했다. 상황은 사상자 없이 무사히 종료됐다. 우수한 장비를 갖추 고 있는 한빛부대는 수시로 이와 같은 도움 요청을 받았다. 덕분에 나는 네팔전투경찰대, 인도대대, 에티오피아대대, 스리랑카 항공대 등 인접 부대에 방문할 수 있었다.


외국군이 말해주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들어볼 수 있었다.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케이팝, 드라마 등 한국 문화의 힘은 이미 아프리카 남수단까지 도달해 있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코로나19로 지연된 귀국...역사적인 장면을 카메라에

한빛부대 11진은 위기를 겪었다. 임무수행을 잘 마치고 귀국일을 기다리던 부대원들은 절망에 빠졌다. 코로나 19 감염병 위기 경보단계 격상으로 인해 남수단 정부는 유엔에 한국군의 교대를 늦춰달라고 요청했고, 유엔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전례 없는 상황에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걱정과 불안 속에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모두가 기다리 던 귀국일. 나에게 한빛부대의 입국 장면을 촬영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뉴스에 보도 될 사진이었기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방역 임무로 땀 흘리 고 있는 육군 관계자분들의 모습, 마스크를 착용한 채 한국 땅을 밟는 부대원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내가 촬영한 사진은 연합뉴스 등 국내 언론에 보도됐다. 신기한 체험이자, 감격스러운 경험이었다. 남수단에 파견된 부대 중 한빛부대만이 유일하게 교대가 승인된 부대였다. 탁월한 방역 성과로 인해 예외적으로 취해진 조치였다. 나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타지에서 낯선 환경과 싸워야 했지만, 자랑스러운 조국 덕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국제기구는 오늘도 누군가의 곁에 있다

유엔 남수단임무단은 나에게 국제기구에 대한 직접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한국 언론과 유엔이 한빛부대의 성과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통역 및 촬영 임무수행을 하면서 유엔 관계자, 현지 마을 주민들, 인접 파병부대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대화하고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다양한 문화 차이를 경험하고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국제기구는 누군가에게는 삶과 밀접 한 연관이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WFP라는 글자가 적힌 헬리콥터가 식량 운송을 위해 목적지로 향하는 것을 자주 보았고, 한빛부대의 재건작전으로 현지 마을 홍수가 일부 해결되는 것을 보았다.


한빛부대의 도로 재건작전은 주민들에게 이동권을 보장했다.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부족 간 교류와 소통이 증진돼 남수단이 평화에 가까워지게 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면서 동등한 소통의 중요성도 느꼈다. 성과중심의 시혜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지원보다, 마을 주민과 나누는 동등한 소통은 더 솔직한 요구를 끌어내기 마련이고, 이 정보는 실질적 지원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국제기구의 공보분야(PIO, Public Information Office)에도 관심이 생겼다. PIO는 유엔 소식 보도뿐만 아니라 현지 미디어 장비 지원, 책 발간 등 다양한 분야에 활동을 이어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연세교육방송국YBS 활동을 통해 언론인의 꿈을 키워온 내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계에 이바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다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미래를 고민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간다. 이전의 일상과 비교해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뉴스에 등장하는 국제기구가 이제는 가깝게 느껴진다 는 것이다. 국제기구는 지구촌 어느 곳에 사는 누군가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한 사 람의 꿈을 찾아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식량을 전해줄 수도 있다, 눈과 귀가 되어 소통의 징검다리를 놓아줄 수도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곧 내게 주어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에도 이 생각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소중한 시간을 함께해준 한빛부대원들에게 다 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 위 글은 외교부 국제기구 인사센터 주최「2020년 제10 회 국제기구 체험수기 공모전」에 당선(우수작)되었습니다




03. 무지한 채로 피렌체 거닐기03. 무지한 채로 피렌체 거닐

작가의 이전글 3차 대유행과 새로운 인류의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