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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낫현 Apr 06. 2021

떠나지 않는 여행자에 대하여

하재영,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작가는 떠나지 않는 여행자를 흠모한다.


집은 삶이다.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계급, 역할이, 자유가 스며있다. 작가는 능동적으로 현재의 공간을 구성한다. 과거의 기억이 바탕이 된다. 자신에 대한 질문이 따른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어느 곳에 있길 원하는가. 대답은 공간이 됐다. 영원히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글의 이유는 연결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은 위로가 됐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나의 어린 시절은 갑자기 찾아온 폭력으로 얼룩져있다. 우리 동네는 넓었다. 실컷 뛰어놀다가 들어오면 새까만 밤이 되었다. 추위로 손이 빨개져도 계속 달렸다. 중학교에 입학했다. 동네는 좁아졌다. 학교폭력이 만연했다. 공간은 계급이 지배했다. 불의를 보고도 침묵했다. 모두가 그랬다. 좁아진 동네가 싫었다. 성경을 읽었다. 오늘은 별일 없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서울시 도봉구 창동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달려야 했다. 유년기와는 다른 의미였지만. 은행사거리에는 학원이 많았다. 추억은 많지 않았다. 마지막 학년, 가끔 이어지는 관계 이외에는 스스로를 닫고 살았다. 버스를 좋아했다. 창밖 풍경을 보는 것이 좋았다. 안전하면서도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때는 학교가, 학원이, 버스가 내 집이었다. 집에서 좀비처럼 일어나 그 세 곳으로 향했다.


서울시 구로구 대림동

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기록을 보는 것이었다. 내 방에는 큰 서랍장이 있었다. 상장, 사진, 편지 따위의 기억할 만한 것들을 넣어두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편지를 가장 좋아했다. 서랍장 1층에는 초등학교 시절, 2층에는 중학교 시절, 3층에는 고등학교 시절, 4층에는 대학 시절 물건들이 있었다. 항상 4층이 넘쳐서 정리가 필요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처음 서울을 벗어났다.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됐다. 전역 후에 회사를 다니게 됐다. 나는 더 간절하게 나만의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방문을 닫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공간을 비우는 것은 중요했다. 안 쓰는 물건들을 팔았다. 프로젝터를 놓고 영화를 봤다. 모든 물건을 있어야 할 곳에 뒀다. 책상에 성경이 다시 등장했다.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집들은 나를 말해준다. 동네의 기억과 생활은 나를 만들었다. 물리적인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정신적 자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물리적 이동은 정신적 자유의 필수조건이 아니다. 이 책은 말한다. 저자는 떠나지 않는 여행자를 흠모한다. 방문을 닫으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타인의 영향 아래에서도 기꺼이 혼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현재 집에서 그런 내가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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