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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낫현 Oct 29. 2022

혼자의 삶

온전히 나로만 이루어진 공간 속에서 말이다.

자유. 그걸 오랜만에 사무치게 느낄 수 있었다.


혼자의 삶이 시작됐다. 한국에서도 무언가 혼자 하는 걸 좋아했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기숙사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주방, 세면대, 침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스스로 준비해야 했다. 한국에서 다양한 블로그를 봤다. 독일에서의 삶을 미리 준비했다. 덕분에 꽤 많은 것들이 준비되어있었다. 그래도 부족했다. 혼자 시작하는 삶은 그렇게 막막했다. 기분은 좋았다.


독일에서 산 시리얼이다. 뮤즐리(Müsli)라고 불린다. 초콜릿이 들어있어서 바삭하고 달콤하다.

주방에는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이케아에 갔다. 그릇을 고르는데 한참 고민했다. 어떤 세트는 내가 쓸 것 같지 않은 그릇들이 들어있었다. 또 다른 어떤 세트는 그릇 색깔이 마음에 안 들었다. 검은색 그릇이 네 개 들어있는 세트를 구매했다. 수저를 샀다. 파스타 면, 소스를 채워 넣었다. 냉장고에는 채소를 썰어서 차곡차곡 넣었다. 한결 든든해진 기분이었다.


독일 화장실은 건식이다. 물이 흐르면 그때마다 닦아줘야 한다. 이케아에서 산 커다란 수건을 바닥에 깔았다. 세면도구를 놓았다. 샤워커튼은 샤워할 때마다 내 몸쪽으로 들러붙어서 불편했다. 독일 샴푸를 사려다가 린스를 샀다. 습한 곳에 실버피쉬가 등장한다. 양좀이라고 불린다. 벌레 끈끈이를 사서 설치했다. 세면대는 정기적인 청소가 필요한 것 같았다. 귀찮았다.


이불은 시급한 문제였다. 기숙사에 왔는데 매트리스만 있었다. 이불 커버를 사야했지만, 첫날은 지쳤다. 가져온 침낭을 깔고 잤다. 나는 이불과 베개를 사는 것이 복잡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불의 종류가 많았다. 직원에게 물었다. 간신히 나에게 맞는 이불과 베개를 고를 수 있었다. 이불은 두 겹으로, 여름에는 하나를 떼어내어 시원하게 덮을 수 있었다.


유럽의 햇살은 강하게 느껴진다. 여름에는 날씨가 좋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혼자. 나는 지금까지 많은 걸 혼자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많은 것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해결되고 있었다. 한 번도 온 적 없는 공간에 내던져진 나는 일종의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모든 것들이 적응의 대상이었다. 바꿔말하면 자극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곳의 혼자 삶이 나쁘지 않게 느껴진 이유였다. 이 자극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지만.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보켄하이머 란트슈트라쎄(Bockenheimer Landstraße)

자유. 그것을 오랜만에 사무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원할 때 일어나고, 원할 때 먹고, 원할 때 잤다. 내가 나가고 싶을 때 나갔고,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왔다.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다. 한국의 여느 기숙사처럼 유치한 벌점을 부여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나만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온전히 나로만 이루어진 공간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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