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한제 행복

그 소중함을 위해 지불해야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by 헌낫현
선 하나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기한제 행복이라면.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도착해 행복을 느낀 것도 잠시, 나는 곧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교환학생 기간에서 느끼는 건 기한제 행복이다.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지만, 시간에 제한이 있다.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다가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이 시간 안에 최대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한다. 6개월이 아닌 1년을 이곳에서 보낸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이 사진으로 베를린다움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주일에 한번은 여행을 간다. 한국에서 같은 장소로 여행을 떠나려면 훨씬 큰 비용이 든다. 이곳에서의 여행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들었다. 여러 어른들이 빚내서라도 이 기간에 여행을 가라고 했던 이유였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 소중하다. 더 많은 곳에서 행복해지고 싶다. 그건 철저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이건 충분한 시간을 요구한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베를린 장벽은 평화의 상징이 됐다. 한국의 군사분계선도 훗날 평화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본도 부족했다. 기숙사 월세, 보험료 등 필수 비용을 제외하고 한 달에 100유로 정도의 여행 비용을 책정할 수 있었다. 온라인 과외를 이어가고, 최대한 아껴 쓴다. 그런데도 이 비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2박 3일 여행을 떠나면 가장 저렴한 호스텔 비용이 50유로 정도 된다. 결국 생활비에서 절약해야 하는데, 일상에서는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들이 많다.

이때 함께 베를린 여행을 갔던 친구들은 모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나만 독일에 남는 상황은 상상하지 못했는데.

나에게 중요한 것을 생각해야 했다. 한 가지를 얻으려면 다른 한 가지를 과감히 포기해야 했다. 어정쩡하게 포기하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다.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얻어내는 데에 노하우가 생기는 듯하다. 행복은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해낸 것에 대하여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시간은 끝이 있어 더 소중하다.

와인을 마시려면 비싼 돈을 지불해야한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독일에서는 저렴하게 와인을 구매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해외에서 학생으로 생활하고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한 적이 있다. 그때는 자유로운 삶의 매력에 푹 빠진 나머지, 교환학생 기간 동안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기한제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난생처음 보는 것들을 차례로 혼자 해내면서, 그 소중함을 위해 지불해야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는 보다 더 입체적인 감정을 느낀다.

IMG_7739 copy.heic
IMG_6397 copy.jpg
유럽 여느 도시가 그렇듯이 베를린도 밤에 특히 아름답다.

원하는 것을 생각한다. 나의 삶은 내가 그린다. 그런데 붓을 들고 나의 삶을 그려 나갈 때 각각의 선이 마지막으로 긋는 것이라면, 강박이 찾아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선 하나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기한제 행복이라면. 1년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그려야 하는 단 하나의 그림이라면. 그 그림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후회가 남지 않는 색채와 모양은 어떤 것일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