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중함을 위해 지불해야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선 하나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기한제 행복이라면.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도착해 행복을 느낀 것도 잠시, 나는 곧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교환학생 기간에서 느끼는 건 기한제 행복이다.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지만, 시간에 제한이 있다.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다가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이 시간 안에 최대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한다. 6개월이 아닌 1년을 이곳에서 보낸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일주일에 한번은 여행을 간다. 한국에서 같은 장소로 여행을 떠나려면 훨씬 큰 비용이 든다. 이곳에서의 여행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들었다. 여러 어른들이 빚내서라도 이 기간에 여행을 가라고 했던 이유였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 소중하다. 더 많은 곳에서 행복해지고 싶다. 그건 철저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이건 충분한 시간을 요구한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자본도 부족했다. 기숙사 월세, 보험료 등 필수 비용을 제외하고 한 달에 100유로 정도의 여행 비용을 책정할 수 있었다. 온라인 과외를 이어가고, 최대한 아껴 쓴다. 그런데도 이 비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2박 3일 여행을 떠나면 가장 저렴한 호스텔 비용이 50유로 정도 된다. 결국 생활비에서 절약해야 하는데, 일상에서는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들이 많다.
나에게 중요한 것을 생각해야 했다. 한 가지를 얻으려면 다른 한 가지를 과감히 포기해야 했다. 어정쩡하게 포기하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다.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얻어내는 데에 노하우가 생기는 듯하다. 행복은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해낸 것에 대하여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시간은 끝이 있어 더 소중하다.
고등학교 때 해외에서 학생으로 생활하고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한 적이 있다. 그때는 자유로운 삶의 매력에 푹 빠진 나머지, 교환학생 기간 동안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기한제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난생처음 보는 것들을 차례로 혼자 해내면서, 그 소중함을 위해 지불해야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는 보다 더 입체적인 감정을 느낀다.
원하는 것을 생각한다. 나의 삶은 내가 그린다. 그런데 붓을 들고 나의 삶을 그려 나갈 때 각각의 선이 마지막으로 긋는 것이라면, 강박이 찾아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선 하나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기한제 행복이라면. 1년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그려야 하는 단 하나의 그림이라면. 그 그림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후회가 남지 않는 색채와 모양은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