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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님이 Jun 28. 2019

꼬꼬와 토토가 만난다면?

니시 가나코, 원탁(자포니카 자유공책)

나오키 상 수상 작가 니시 가나코의 《자포니카 자유공책》을 읽었다. 지금은 원제인 《원탁》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된다. 6년 전 내가 읽었을 때는 제목이 《자포니카 자유공책》이었다.


《자포니카 자유공책》을 읽고 나니 주인공인 꼬꼬와 《창가의 토토》의 토토가 싸우면, 아니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불현듯 궁금해졌다. 토토 못지않게 특별한 아이, 꼬꼬를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초등학교 3학년인 꼬꼬는 평범함을 경멸하고 색다름을 동경하는 아이다. 눈 다래끼가 나서 안대를 하고 등교한 친구를 보자, 하얗고 근사한 안대로 한쪽 눈을 가리고는 “가까이 오면 병이 옮을 지도 모르니까 혼자 있게 해줘.”라고 말한 뒤 외톨이가 되는 자신을 상상한다. 또 혼혈 친구를 질투하며 ‘엄마가 러시아인이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고 마음속으로 그려 본다. 심지어 특별한 리듬이 느껴지는 폿상의 말투를 따라 하고 싶어서 일부러 말을 더듬기도 한다.


꼬꼬는 색다른 단어를 접하면 ‘자포니카’라는 브랜드의 자유(민무늬) 공책에 고딕체 글씨로 꾹꾹 눌러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안대, 눈 다래끼, 맥립종, 부정맥, 패닉……. 꼬꼬의 최대 소원인 ‘고독’이라는 단어는 당연히 자유 공책 첫 페이지에 적혀 있다. 그밖에 눈물 콧물 흘려가며 웃을 수밖에 없는 사랑스러운 메모가 자유 공책에 가득하다.


헬랜캐러 삼중구

눈 안 보이고 귀 안 들리고 또 뭐 한 가지


사춘기는 누구에게나 차자옵니다.

너한테도 너한테도 너는 누구냐.

사춘기입니다.


이처럼 깨물어주고 싶도록 앙증맞은 습관이 있는 꼬꼬. 그런데 그만 자유 공책이 사라진다. 꼬꼬가 유일하게 고독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자유 공책이 사라진 뒤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부정맥으로 패닉 상태에 빠진 친구를 흉내 냈다가 담임선생님의 심상치 않은 눈빛에 혼쭐이 나고, 평소와 달리 폿상이 곁에 없는 날에 꼬꼬 앞에 쥐 인간이 나타나면서 꼬꼬는 거북스러운 일을 겪는다. 게다가 머지않아 꼬꼬에게 동생이 생긴다고 엄마와 아빠가 폭탄선언을 했다.


늘 고독하길 바랐던 꼬꼬는 쥐 인간 사건으로 홀로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깨닫는다. 또 평소 흐리멍덩하던 담임선생님이 그때 왜 그렇게 무서운 분위기를 풍겼는지 꼬꼬 혼자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른스러운 폿상은 꼬꼬가 알아듣도록 참을성 있게 설명해 준다. 그 결과 “시끄러워, 바보야!”를 외치며 남을 배려할 줄 모르던 꼬꼬가 자유 공책을 활용해서 친구에게 웃음을 되찾아준다. 꼬꼬는 여름방학 동안 훌쩍 성장한 것이다.


꼬꼬의 곁에는 늘 든든하게 도움말을 해주는 폿상이 있다. 꼬꼬의 몸짓 하나하나에 호들갑스레 반응하는 세쌍둥이 언니들이 있다. 꼬꼬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해주는 할아버지도, 꼬꼬를 눈에 넣고 싶다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할머니도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꼬꼬에게 남겨줄 순수함을 간직한 엄마와 아빠가 있다.


동생이 태어나면 꼬꼬는 또 다시 성장할 것이다. 달큼한 향기가 나는 고 하얗고 보드라운 존재를 쓰다듬으며, 언니 혹은 누나로서 동생을 보살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리라. ‘고독’만큼 소중한 단어 ‘책임감’을 그리고 계속해서 새롭고 값진 단어들을 맛볼 것이다. 동시에 시끌벅적한 대가족 속에서 꼬꼬는 더 이상 고독을 외치지 않을 것이다.


서점에서 《자포니카 자유 공책》을 가슴에 안은 독자들을 보고 니시 가나코는 ‘내가 쓴 이야기에 나 자신이 구원받는 것처럼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 내가 쓴 이야기를 읽고 무언가를 느끼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느낀 무언가가 이토록 나를 따뜻하게 어루만질 줄은 몰랐다’고 고백했다. 엉뚱하지만 착한 아이 토토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장 선생님 덕분에 《창가의 토토》는 오랜 세월 변함없이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자포니카 자유 공책》도 이에 못지않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전 독자층에게 사랑받기에 충분하다. 내가 그러했듯, 《자포니카 자유 공책》을 읽은 당신도 꼬꼬의 담담한 배려에 눈물 섞인 웃음을 지을 것이다.


꼬꼬와 토토가 한 교실에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창밖을 내다보며 소리치는 토토.

“친동야 아저씨—.”

꼬꼬는 이렇게 받아친다.

“시끄러워,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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