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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yond eyes May 06. 2020

[에필로그] 아들도 안 가는 아버지의 회사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구분 짓는 조건

※ 이 글은 중소기업을 비하하는 글이 아닙니다. 중소기업이라는 기업 특성상 발생되는 문제 현상을 지극히 개인 경험에 기인해 분석하고 서술한 내용으로 일부 현실과 다를 수 있음을 먼저 밝혀드립니다. 


구원투수였던 아버지

아버지가 사장으로 부임된 시점은 정확히 2007년, 부도 위기의 회사였다.

90년대 게임방송과 트로트 방송, 야구 중계 등 지상파에서 갈증을 느끼던 사람들이 종편과 케이블 채널의 

개막에 앞서 목마름을 해소하던 한 지역 민영 방송사는 승승장구를 펼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부실경영과 노조와의 이슈로 인해 이름을 떨치던 그 방송사는 2005년 부도 선언을 했다. 

TV 방송을 하던 그곳은 2년간 라디오 방송만 진행했고 지상파 인허가를 얻기 위해 수차례 도전을 했지만 

낙방하기 일수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런 회사에 구원 투수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지면의 언어에서 영상의 언어, 소리의 언어를 구사한 다는 것이 아버지 본인에겐 큰 도전이었다.



13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회사는 중소기업이다. 50명 남짓한 직원 수와  100억 안팎의 매출 규모는 몇 년째 변화하지 않고 평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아버지가 부임한 2007년 창사 10년 만에 흑자라는 기록과 4년 만의 법정관리 종료, 2016년까지 연속 흑자, 그리고 방송사 가운데 코바코 광고 수익에 가장 의존도가 적은 방송사라는 타이틀 등 지역 사회와 방송업계에선 적지 않은 파란이었다. 신문 기자만 하던 그가, 경영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그가, 평생 문인으로써 사회 비판만 부르짖던 이가 몸 바쳐 일궈낸 성과였기에 그 누구에게도 내겐 참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가고 싶단 생각을 한 번 도 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다양한 경영 고민과 회사의 현안에 대해 토의하면서 비단 이 회사의 문제가 아닌 

중소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문제들을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을 결정짓는 것, 사람 

아버지가 항상 하시던 말씀 중에 '홍수물에 마실물 없다'라는 말이 있었다. 

난다 긴다 하는 사람이 많지만 정작 내 사람으로 데리고 있을 만한 사람이 회사로 유입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었다. 한 때 아버지의 요청에 따라 약 1년 반 정도 주변을 수소문 해 인재 영입에 힘을 썼다. 하지만 추천을 해 드려도 적응을 하지 못하거나 생각하지도 못한 이슈로 인해 결국 회사와의 연을 오래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1. 비서울의 지역적 한계와 교통 인프라의 부재 

인재 영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1차 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비서울권이라는 이유가 컸다. 대부분 적을 서울에 두고 있거나 경기권에 적을 두고 있어 실제 거리상으로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것과 멀지 않았지만 회사 위치를 들은 사람들은 선뜻 반기는 표정은 아니었다. 

게다가 회사는 지리적으로도 심각하게 외진 곳에 떨어져 있었다. 회사 앞으로 지나가는 지하철은 없었고 그나마 있는 버스 정류장에는 1대의 버스만 다니고 있었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입사를 하려고 해도 사회 초년생이나 차가 없는 사람은 출근 자체가 고행의 길이었다. 회사 셔틀버스 운영을 제안드렸지만 예산 문제와 회사 인원이 적어 지속적으로 운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내부 의견과 대립이 있었다. 젊은 사람일수록 서울이나 대도시에 남고 있는 성향을 고려했을 때, 최소한의 교통 인프라를 회사에서 제공해야 함을 다시 한번 더 역설하지만 그리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다녔던 회사들이 서울 시내 중심지와 지하철 도보 10분 이내로 묶였던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기업의 지리적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2. 인재 양성 프로그램(HRD)이 없다 

방송 업계는 변수가 많다. 프리랜서가 많고 9to6 근무를 하기 어려운 생방송 시스템이며 기술팀과 사무직, 제작 지원팀이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통일되고 직군별 교육을 진행하기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산업적 특성에 고착된 채 직원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이 없다면 회사의 질적 성장이 더디게 된다는 점이다. 개인 개발과 경력개발, 조직개발을 위해 필수적으로 도입되어야 하는 인재 양성 프로그램은 중소기업에선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개인의 성장을 도와 직업적 소명 의식과 강력한 회사 내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를 도울 수 있고, 

기업의 비전과 목표를 수혈받으면서 개인과 팀의 목표와 기업의 목표의 색을 맞춰 함께 성장할 수 있으며, 현 상황에 안주하고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개선하기 위해 스스로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사고 구조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뒤늦게 이런 부분들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셨다. 이전에는 그저 자신의 강한 목표의식과 상명하달식 소통 구조를 통해 충분히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미개척 상태의 기업에서는 일정 부분 이러한 사고를 가진 '강한 리더'가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 경우 대표만 성장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아버지는 간과한 것이다. 


3. 혁신을 꿈꾸지만 퇴보한 기업 문화

앞서도 말했지만, 체계와 매뉴얼이 부족한 상황에서 빠른 성장을 위해선 수직적 구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것이 계속해서 옳다고 믿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문제를 나는 아이를 키우는 문제에 비유하곤 한다. (물론 아이를 키워 본 적은 없지만)

아이를 키울 때, 아이에 대한 기대가 큰 것과 함께 조급한 부모들이 있다. 이런 부모들은 자식들이 어떤 것을 못하고 있는 모습을 견디기가 어렵다. 아이 스스로 배워나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배워 나갈 때까지 기다려주기엔 이미 부모들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걸음마를 짚어나갈 즈음에 아이의 손을 계속해서 잡아주고 옷을 스스로 입을 시기가 되었을 때 어린이집 갈 시간이 촉박해 매 순간 부모가 옷을 입어준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의존적 성향이 강해지고 자립심이 떨어져 무언가에 의욕을 가지기가 어렵게 성장한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상명하달, 수직적 구조에 익숙해진 아래 직원들은 뭔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강하게 리드하는 사람만 믿고 가면 되고 새롭게 뭔가를 제안하고 싶더라도 강한 리더십을 가진 상사에게 까일 우려가 있어 제의를 하기에도 어렵다. 그리고 굳이 제의를 새롭게 하지 않아도 어차피 윗 상사가 알아서 새로운 사업거리와 아이디어를 들고 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수동적인 입장을 취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방송사는 지상파 인허가를 받은 (5년 단위) 기간 동안엔 어지간히 경영을 못하지 않는 이상 배곯을 일이 없기 때문에 직원들 또한 안일하거나 특권 의식 (방송가 사람이라는)에 사로 잡혀 어떤 아이디어를 제안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를 문제 삼을 인사 평가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안일한 직원을 양성하기에 더욱 안성맞춤이다. 


또한 회사는 보상에 둔감하다. 성과와 연결된 부분에 대해선 적극적이지만, 직원들 개인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한 복지는 뒤꼍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며 비일비재하게 발생되는 주말 출근과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되게 되면 '당연히' 기존 업무와 병행을 하면서도 영혼 바쳐 신규 프로젝트에 몰입되길 바라는 경영진과 관리자들의 마인드 속에서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번아웃을 겪곤 한다. <아, 무엇을 위해 내가 지금 일하고 있을까>라고 말이다. 



예순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새로운 도전

13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는 4년 넘게 내가 역설했던 '인력 인프라 부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 시스템 재정비와 컨설팅 의뢰를 준비 중에 있다. 그간 인력관리 시스템의 고도화 없이 이렇게 회사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신기하지만, 그 와중에 회사에서 버텨준 직원들이 내 입장에선 더 

대단하다고 느꼈다. 


결국 문제 해결의 핵심은 밀레니얼 세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 해당 기업 실정에 맞는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밖에 모르는 젊은이들이라 욕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만 존중받으면 자신의 것은 충분히 해내는 젊은이라는 것을, 

허황된 서울 라이프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아니라 최소한의 문화생활과 도시 라이프를 즐기기 위한 그들을 위해 입지와 교통 인프라는 필수라는 것을, 

생각 없고 발전 없는 직원들 뿐이라는 비난보다 직원들의 열린 사고를 함양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스스럼없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소통 구조, 나아가 이것이 반영될 수 있는 인사평가 시스템이 선행되어야 한 다는 것을 아버지는 뒤늦게 깨닫게 되셨다. 


얼마나 아버지께서 회사의 대표로 부임해 계실지는 모른다. 열정이 남아있는 그 순간까지 아들 된 도리로써 젊은 피를 수혈하고 회사 운영의 최신 트렌드를 공급해 드리는 게 또 다른 효도라는 것을 알기에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지기 전까진 계속해서 도와드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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