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_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사람에게 집이 주는 의미란
경기도 어느 지역에 있는 오래된 구축 아파트를 샀다.
지난 10개월간 8개 지역의 수많은 매물을 보고 또 보았다.
월급을 아끼고 각종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벌어둔 쌈짓돈을 모아 갭으로 구매한 나의 첫 아파트였다.
(세입자가 사느라 실 입주는 2년뒤에 하겠지만)
직장생활과 부동산 지식 공부, 세법과 임장을 다니느라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사실 부동산을 매수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집값 잡기'는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상 유래 없는 유동성과 코로나 사태로 인한 변수 증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앞둔 전 세계 경제 전망과 누구의 예상도 하지 못했던 임대차 3 법 등의 이슈로 아파트 값은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30년간 부동산 투자만 해왔던 이모할머니 또한 '살면서 한 번도 못 본 상황이기 때문에 아파트 매수는 최대한 관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는 말까지 남겼으니 불나방처럼 부동산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맞을지 수없이 의심을 했다.
하지만 내가 부동산을 매수한 목적은 투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집에 대한 관심과 욕심은 비단 이번 부동산 광풍 열품에 휩쓸려 갑자기 생겨난 유행이 내겐 아니었다는 뜻이다. 어렸을 적, 적지 않은 이사를 하고 전세와 임대아파트를 전전하는 가까운 친척을 보면서 집이 가져다주는
안정감과 행복이 사람의 삶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게 되었다. 즉, 집은 인생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 자유를 누리기 위해 가장 먼저 달성해야 할 '최초의 목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때문에 입사 3-4년 차에 반드시 회사 근거리 (50분 내외)에 있는 곳에 내 명의로 된 구축 아파트 하나쯤은 가져야겠다는 목표를 대학생 때부터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집을 막상 매수하고 나니, 기존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은 명백히 필수재이다. 사람의 기본 필수재인 의식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동시에 모든 사람의 기반이 되는 공공재의 성격을 동시에 띤다. 따라서 집 한 채는 투자수단이 아닌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명의로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심리적 위안을 얻게 된다.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올 때마다 계약갱신을 위한 집주인과의 논쟁을 할 필요도 없다. 다시금 이사를 가기 위해 여러 지역을 다니고 낯선 부동산과 집주인의 비위를 맞혀 적정가를 협의할 필요도 없다. 부수적인 자산으로서의 안정성은 물론 주거 이동의 불완전성을 없애준다는 점이 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매수를 하건 청약이 되건 간에 집은 모든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이자 인생의 최종 목표가 되곤 한다. 그러한 목표 달성을 하고 난 이후 얻게 되는 안정감은 곧 '속박되지 않을 권리,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지게 된다. 최근 청약에 당첨된 지인은 이렇게 말했었다. 말을 빌리면 이러하다.
"추첨제로 진행되는 40평대 아파트 청약에 우연히 지원했는데 그게 되더라고.
너도 알다시피 나는 부동산을 통한 자산 증식에 큰 관심은 없었어.
하지만 이게 되고 나니 막상 기분이 묘한 거야.
회사 생활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나답게 살기 위한 선택에 힘을 실어줘도 된다는 그 기분이... 너무 좋더라."
아이러니한 건 집을 매수하기 전에 했던 공부보다 매수 후 공부하는 양이 급격하게 늘었다.
마치 대학시절 간절히 바라던 대외활동과 공모전, 얼떨결에 합격한 인턴 등을 이루고 나면 그 전과 후의
행동이 달라지는 모습 같기도 하다.
지방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을 내기 위해 세금을 자세히 공부하고, 갭 투자와 은행 대출을 활용해 매수를 했다면 금리 인상을 헷징 시키기 위해 추가 현금흐름 창출 방법에 대해 더 알아보게 되며, 세입자를 받았다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고 추가 매수/매도 포지션을 정하기 위한 시드머니 확보 연구에 열을 올리게 된다.
그래서 매수는 경제지식을 쌓기 위한 경제 지식 창출의 촉매제가 된다. TMI지만... 최근 구매한 서적이 근 3년 동안 구매한 서적보다 많은 것을 보며 깊이 반성하게 된다.
부동산 커뮤니티 모임에 기웃거린 것은 약 2년 전이었다. 거기에 나가서 이미 부동산을 통해 큰 자산증식을 한 사람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미라클 모닝'이었다. 이는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와 온라인 스터디 모임을 가보면 손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떼를 지어 매일 같이 기상 시각과 하루의 루틴을 기재하고 달성 여부에 대해 서로 피드백을 주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우리와 같이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한정된 시간을 최대화하기 위해 자기만의 효율을 찾아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다시 본인 블로그에 기록한다. 자기만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부동산 투자는 투기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모습들이었다. 이들은 부동산을 투자한다기보다 루틴 생성에 투자하고 있었고, 투기를 하는 것이 아닌 인생을 바꾸기 위한 다양한 투자 방법과 머니 파이프 증설 방법에 대해 그 누구보다 고민하고 있었다. 부동산 투자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발견하기란 여간 어려울 것 같았다.
고작 10개월밖에 공부를 안 한 부린이가 무엇을 안다고 이런 글을 쓰냐고 비난할 수 있다.
나 또한 짧은 식견으로 인해 내가 매수한 아파트가 정말 옳은 선택이었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며
나 조차도 공부를 계속 이어 나가면서 내가 매수한 지역과 아파트의 문제점이 이제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실물자산을 매입함으로써 이제부터 내겐 '지켜야 할 대상'이 생겼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죽으나 사나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는 것이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다. 자식을 낳는다는 행위가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하는 의무'를 의미한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미우나 고우나 내 집은 매도하기 전까지 애지중지 다뤄야 할 자산이기 때문이다.
피하지 않고 맞서 싸워야 하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독립을 한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