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묻지 못할 이야기들
궁금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들의 젊고 멋지고 아름다웠을 그 시절이.
가끔씩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아가시절을 이야기해주면서 언급되곤 하던 동네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제천 어느 시골 산골짜기였다.
나는 가본적도 없거니와 기억은 당연히 나지 않을 하지만 분명 그 시간 속에 아빠 엄마와 함께 했을 그 장소.
내겐 그저 그들의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상상 속의 추상적인 공간일 뿐인데 엄마 아빠에겐 아련한 추억이 함께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3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를 마치 얼마 전 이야기처럼 복기하며 그렇게 열변을 토할 리가 없다. 두 눈을 반짝거리며 그 시절로 타임슬립 하는 얼굴에는 풋풋한 새 신랑 새댁의 순수함이 엿보인다.
사실 내가 듣기에는 그렇게 특별하거나 재미있거나 낭만적인 이야기는 아닐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빠져 죽을뻔했는데 엄마가 나를 구했다는 저수지가 있던 동네, 과수원에 사과가 주렁 주렁 달렸다는 동네, 끓는 가마솥에 어린 내가 맨발로 올라가서 큰 일이 날 뻔했다는 이야기, 어린 내가 마당에 나타난 뱀을 보고 두꺼비라고 두르며 다가가 아빠가 삽으로 뱀을 찍어 죽였다는 이야기하며 크고 작은 스토리가 즐비한 신비한 그곳.
"아니, 거기 아는 사람이 남아있겠니 그때의 흔적이 남아있겠니''가서 볼일도 없고 전혀 갈 이유가 없는데 거길 가자고 하는 내가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눈치였지만 아무튼 나의 강력한 추진으로 결국 갔다.
반대를 무릎서고 간 것이 무색하게 가장 좋아하고 들뜬 것은 아빠와 엄마임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사실 주소도 모르는 그곳을 기억을 더듬 더듬어 찾아간다는 것은 모험이었는데 아빠와 엄마가 서로의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어 가며 인근까지 도착했다.
근처에서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길을 묻고는 행인은 묻지도 않은 사실 궁금하지도 않을 이야기를 고백적으로 꺼내는 엄마가 귀여웠다. "저희 여기 수십 년 전에 살던 곳인데 수십 년 만에 처음 오게 되었어요. 저기 타 있는 애가 아주 많이 어릴 때 여기서 살았는데 과수원 나무가 아주 많고 깊은 산길 따라 가면 있는 곳인데" 등등 등
행인은 마치 제일처럼 기뻐하며 제천에 온 걸 환영한다고 하며 길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속으로 엄마의 말에 맞장구를 쳐준 그 행인에게 매우 고마웠다.
수십 년 만에 신혼의 추억이 담겨 있는 그곳에 도착한 남자와 여자는 감상에 젖기에 충분했나 보다.
생각 이상으로 들떠 보이는 소년 소녀 같은 모습. 수십 년 만에 신혼의 추억이 담겨 있는 그곳에 도착한 남자와 여자는 감상에 젖기에 충분했나 보다.
로 시작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 동네에 살던 할머니 이야기 나를 예뻐했다는 이웃 아저씨 이야기 당시에 다니던 작은 개척교회 이야기 등등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가 정신없이 이어졌고 그때 그 곳에서의 이야기를 그 장소에서 듣는다는 것은 생각 보다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나와 내가 모르는 아빠와 엄마의 시간은 철없고 어리고 순수한 그들만의 시간이지 않았을까'
지나간 세월이 말해주듯이 당연하게도 도시화되고 정말로 많이 변한 동네의 모습과 쇄락한 가옥과 집터 흉물스럽고 을씨년스럽기 까지 한 그곳에서 나는 아빠가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고 아빠와 엄마는 흐려진 추억 속에 회상이라는 채색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장소를 그 장소로만 바라보고 시큰둥했던 건 그 곳과 전혀 상관이 없는 오직 동생뿐이었다.
내게는 묘하고 묘했던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그곳. 그렇지만 아빠와 엄마가 너무나도 설레고 좋아하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특별한 경험.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뭐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했는데 아빠라는 이름의 남자와 엄마라는 이름의 여자에 대해서 조금은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P.s : 언젠가 어른이 되어서 유년기를 보냈던 그 동네로 혼자 찾아가 본 적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퍼즐을 맞춰가 듯 찾아간 그곳에서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 시절의 흔적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시간.
당시에 대단하고 크게 느껴졌던 것들이 학교도 골목도 운동장도 시장도 기억보다 훨씬 작고 아담하게 다가와 훌쩍 커버린 저를 실감했지요. 모든 것이 변하고 내가 백 원짜리 들고 불량식품을 늘상 사먹으러 갔던 그 작은 구멍가게만이 그때의 추억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당시 나는 먹지도 않을 불량식품을 사러 들어가서 주인 아주머니께 내가 이 동네를 찾은 이유와 한때 단골 브이아이피 어린이 손님이었음을 어필했던 기억이 나네요. 나는 당시 예쁘장했던 아주머니의 딸이 기억나 근황을 물어보기도 하고 결혼해서 엄마가 되어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는~
저는 아마 그 때의 제가 느꼈던 감정을 아빠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어릴적 나를 만났듯이 아빠도 청춘의 자신을 다시 만나보기를 하는 마음에서 딸의 신분의 맞지 않게 월권을 한 것일지도...